월프레드 호리에. 하와이 태생의 미국인으로 지난 2000년 1월 제일은행장으로 취임했던 우리나라 ‘제1호 외국인 은행장’이다. 한국금융산업에 새바람을 일으킬 것이란 기대 속에 새로운 대주주로 등장한 미국계 금융회사 뉴브리지캐피털의 천거로 제일은행의 지휘봉을 잡았었다. 그런 그가 3년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두고 지난 10월23일 갑작스레 사퇴했다. 중도 하차한 셈이다. 퇴진의 배경을 놓고 ‘자의냐, 타의냐’에 대한 논란도 없지 않지만 어쨌든 본인은 물론 우리 금융계로서는 결코 반길 일만은 아닌성 싶다. ‘이웃집 아저씨’같은 그의 포근한 인상 때문이 아니라 제1호 외국인 행장에 대한 실험이 미완성으로 끝난 데 대한 아쉬움 탓이다. 그러나 미완이긴 하지만 호리에 행장이 보여준 그간의 은행경영 내용과 이번 퇴진은 우리 정부나 금융계가 여러가지 면에서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될 화두를 남겼다.우선 사실 여부를 떠나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경영성과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게 정설이다. 문책사유에 대해서는 대주주인 뉴브리지측이 입을 다물고 있어 시중에 알려진대로 부실여신 증가 때문인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신속한 문책이 이뤄진 데는 뉴브리지라는 확실한 주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평가다. 은행소유 지분제한으로 경영자의 경영책임을 물을 대주주가 없는 우리 현실에서 책임경영체제를 확립시키려면 어떤 조치가 뒤따라야 하는 지를 암시해주는 대목이다.다음으로 호리에 행장 퇴임의 사유가 정당한가에 대한 평가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지나치게 단기간에 큰 수익을 기대하고, 그 기대치에 못미친다 해서 중도 하차시킨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털의 제일은행 인수가 외국인투자라기보다 금융자산 운용차원에서 단기투자 과실을 노렸기 때문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경제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은행의 공공적 성격을 감안할 때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어떤 자본이 은행의 주인 자리에 앉아야 되는 지는 신중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또 직접적인 문책사유로 거론되고 있는 하이닉스에 대한 여신제공은 과연 잘못된 것인가. 호리에 행장의 해명처럼 의사결정의 잘못이라기보다 반도체산업의 특성과 경기침체에 기인한 것이라면 또 다른 판단도 있을수 있다. 만에 하나 반도체 경기가 되살아나 하이닉스의 경영성과가 호전된다면 여신지원은 무척 좋은 성과로 평가받을 것이다.호리에 행장은 퇴임결정 후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에 대해 언론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주목거리가 됐다는 점과 본인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 부담스러웠다는 점을 지적했다. 금융당국과 마찰을 빚었던 점에 대해서는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밝혔고, 금융구조조정이 너무 단기적인 관점에서 이뤄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금리결정문제에 대해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내리면 시중은행들도 일제히 금리를 내리는 행태는 깊이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금리하락은 경기침체를 의미하고 이는 대출자산의 부실화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은행은 어떤 상황하에서도 일정한 순이자 마진을 유지해야 하는 데 은행들이 금리를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는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라는 얘기다. 어쨌든 곰곰 생각해 볼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