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건은 어느 정도 성숙됐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산다고 코리아 타운이라는 이름이 절로 붙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일본 땅인만큼 지역 사회와의 융화, 토착 일본인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선행돼야 합니다.”도쿄에서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산다는 신주쿠 오쿠보 일대에서 한인 사회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지난 5월 태동한 재일본한국인연합회의 김희석(50) 회장. 그는 신주쿠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에 한국인들이 기여하는 경제적 효과가 엄청나지만 역할을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 선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부터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지켜 나가면서 일본 사회가 요구하는 공통의 룰과 기준을 앞장서 충족시켜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도쿄 신주쿠 역에서 도보로 15분이면 닿는 오쿠보도리(도리는 ‘거리’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와 쇼쿠안도리 일대는 한집 건너 하나씩 한국어 간판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코리안 상점이 밀집해 있으며 업종도 식당 미용실 부동산 여행사 병원 등 없는 게 거의 없다.“일본인들의 장점은 질서와 청결 아닙니까? 우선은 일차 작업으로 오쿠보 일대 한국 상점들의 간판을 자발적으로 정비하고 거리를 정화하는 데 역점을 둘 생각입니다. 일본 사회가 한국, 한국인을 보는 시각을 교정하도록 만드는 길은 멀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김회장은 일본인들이 오쿠보 일대의 ‘코리안 소사이어티’를 보는 눈이 긍정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일본 사회 특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생활공동 규범이 한국인들과 다르다 보니 심리적 거리감이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따라서 빗질 한번이라도 더 하고 간판을 깨끗이 닦으며 모양새를 바로 잡는 정성만으로도 일본인들의 막연한 질시와 배타적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한국인들의 수준 높은 매너와 끈끈한 지역 사랑이 뒷받침될 경우 일본 사회도 한국인 파워를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할 것이며 담을 허물고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한국인연합회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한국인, 그중에서도 80년대 이후 건너온 신한국인(뉴 커머)들의 권익보호와 정착과정에서의 상호부조입니다. 시작은 성에 차지 않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한일간 교류에서도 상당한 가교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합니다.”18만여명에 이르는 신한국인들이 법을 모르고 정보에 어두워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안타까워 연합회 결성을 구상하게 됐다고 김회장은 말했다. 출범 후 10월28일로 꼭 5개월을 맞은 연합회는 회원이 약 1천5백명에 이르지만 외부 지원없이 회장단과 집행부 총 27명이 내는 자발적 성금과 평회원 회비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조직 문화예술 국제협력 등 11개 부서를 두고 있으며 교육, 생활상담실을 상설 운영, 교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시간과 돈을 쪼개 쓰고 있다. 연말이나 내년쯤에는 일본 사회에서 뉴 커머들이 차지하는 현주소와 앞으로의 진로 등에 대한 한일 공동심포지엄 등 학술 행사도 검토하고 있다.연합회가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 중 하나는 2세 자녀 교육. 민족교육을 담당하는 한국학교(초·중·고)가 일본 전역에 4개밖에 없고 도쿄에는 1개뿐인데 그중 1개가 폐교 위기에 처할 정도로 재정난과 씨름하고 있다. 김회장은 “민족교육의 장래를 위해서 시급히 해결방안을 찾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쿄한국학교의 교사, 학부모협의체(PTA) 회장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