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설계사 조직·판매방식 다양화로 업계 구조조정 … 여성, ‘업그레이드 아니면 토사구팽’ 위기

보험설계사는 특별한 학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출퇴근도 자유로와 주부들이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었던 직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부들의 손을 떠나고 있다. 98년 3월 39만6천명이던 설계사는 올 3월말 28만4천명이 됐다.3년만에 11만명이 줄어든 것이다. 생명보험사들은 자연 감소를 방치하는 형태로 감원을 하고 있다. 보험영업에서 새로운 설계사를 데려오는 ‘증원’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졌던 일이었고 설계사의 수입은 이같은 증원수당이 상당부분을 차지했다.이제는 이런 증원을 재촉하지 않을 뿐더러 현직 설계사들도 실적이 좋지 않으면 압력을 받고 있다. ‘방치’라고 하지만 보험영업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강도높은 구조조정인 셈이다.“이젠 정말 일하기 힘들어.”12년째 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이민자씨(50)는 ‘고능률 설계사가 돼라, 아니면 그만 둬라’는 얘기를 매일 듣는다. 반복해 들으니 신경증에 걸릴 지경이다. 더구나 회사에서 요구하는 ‘고능률 설계사’의 목표치가 갈수록 높아져 많은 동료들이 허덕이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다. 보통 두달간 40만원 이상을 못하면 퇴출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명의만 달리해 자신이 보험료를 쏟아 부어 무리한 신계약을 하거나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또한 보험료 수금 실적이 저조하고 보험 해약률이 유지율보다 높다고 해 지점장에게 욕설을 듣거나 내던진 서류로 얻어 맞는 등 인간적인 모욕을 당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보험사들 자연감소 통한 감원또 정당한 기준 없이 일방적으로 ‘해촉’(설계사는 본사 소속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해고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로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제 시대가 바뀌어 쓸모가 없어지니까 ‘토사구팽’ 당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김미영(40) 설계사는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다. 설계사 경력은 6년. 요즘 김씨가 소속한 생명보험사에서 설계사들에게 주로 판매하라고 ‘미는’ 상품은 종신보험과 연금보험이다. 종신보험을 판매하려면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소위 ‘재정 안정 설계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고객의 재무 계획을 총체적으로 컨설팅해줘야 한다. 처음 김씨는 컴퓨터도 잘 모르고 금융 분야에 박학한 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벅차다고 생각했다.그나마도 처음에는 ‘고학력 남성 설계사’들만이 종신보험을 취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상품을 판매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가 일반 여성 설계사들에게도 판매를 할 수 있게 해줬다.김씨는 “그동안 열심히 잘 해 왔는 데 이젠 ‘변신 아니면 퇴출’ 임을 뼈져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종신보험을 팔지 않고서는 설계사로서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해 그럭 저럭 회사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출 수 있었다. 지금 김씨는 한달 수입이 3백만원 이상 될 정도로 안정적인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대학 나온 젊은 설계사들을 볼 때면 자신감이 사라진다.고학력 남성 설계사에도 자리 밀려이같이 어려워하면서도 설계사들이 웬만해선 쉽게 손을 털고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수당 체계 때문이다. 설계사가 한 건의 보험 계약을 유치해 받을 수당의 총액이 1백20만원이라면 이 금액을 10으로 나눠 매달 12만원씩 지급된다. 그만 두면 남은 금액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니 만약 첫 두 달분만 받고 그만둔다면 나머지 여덟 달분은 ‘떼인다’고 생각되는 것이다.보험사들도 고민이다. 이제 성장기와는 달리 규모의 성장보다는 수익성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고비용 구조의 설계사 조직이지만 섣불리 정리한다고 나설 수도 없다. 여전히 보험사의 근간을 이루는 거대 조직 여성 설계사 조직을 함부로 자극할 수 없는 것이다.판매 방식을 전화나 인터넷 등으로 다양화하고 남성 설계사 조직을 구축하는 등 조용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아줌마부대의 퇴조는 구조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국내 보험산업의 현재를 상징하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