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추심 분야처럼 월급을 두고 희비가 엇갈리는 곳도 없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단 1%만이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을 뿐, 월 1백만원도 챙겨가지 못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아서다. 또 이들 대부분이 계약직이기 때문에 퇴직금이나 국민연금 등 복지혜택을 받지 못한다. 반면 3%의 세금만 월급에서 뗀다는 장점도 있다. 연봉이 높을수록 혜택을 보는 셈이다. 따라서 고액 연봉자들은 엄청난 이익을 향유하지만 그렇지 않은 직원들은 열악한 일터에서 생활하는 셈이다.채권 추심 분야에서 국내 수위를 달리고 있는 업체들은 서울신용평가정보 고려신용정보 미래신용정보 솔로몬신용정보 등이다. 각 업체별로 채권 추심부의 직원들은 2백~3백명 정도.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27개의 신용정보회사에서 채권자를 대신해 돈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은 대략 1만명쯤으로 추산한다. 이중 1백명만이 한 달에 1천만원 이상의 현금을 챙겨 가는 억대 연봉자들이다. 이들은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기 때문에 실적이 저조하면 박봉의 기본급만 가져가야 한다.업계에서 가장 먼저 신용정보사업을 시작한 서울신용평가사는 전국 17개 지점을 두고 있다. 이 회사 채권추심 인력은 총 4백명. 이들이 연간 가져오는 부실채권은 3조원 규모지만 실제 회수하는 액수는 3천억원 미만이다. 회수금액이 원금의 10%도 안되는 셈이다. 대부분 악성 채권이기 때문이다.김동명 서울신용평가 채권추심본부 이사는 “채권자들이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포기한 채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회수율이 저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법적으로 제한이 많아 설득 수단도 주로 말에 의존해야 한다.한푼이라도 더 받아내는 순발력 필수이렇듯 열악한 영업 환경에서도 나름대로 비법을 갖고 성공하는 직장인들이 있다. 지난해 1억1천만원의 수익을 올린 박동지씨(47)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억원이 넘는 수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의 영업비밀은 평소 ‘텃밭’을 잘 일궈놓는다는 것. 미래 고객이 될 사람들을 자신의 영업 네트워크로 끌어들이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다. 특히 그가 타깃으로 삼은 미래 고객은 다름 아닌 그가 현재 상대하고 있는 채무자들이다.“지금 채무자라고 해서 영원히 채무자로 남지는 않습니다. 언젠가는 채권자가 될 수 있는 거죠. 저는 빚을 갚은 채무자를 그냥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꾸준히 관리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이 채무자가 채권을 들고 저를 찾아옵니다.”실제 최근 대구에서 사업을 하던 K씨가 그를 찾아왔다. K씨는 예전에 채무자로 박씨를 만났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박씨를 만나러 온 이유는 부실채권을 맡기기 위해서다. 박씨의 돈 받아내는 능력을 눈여겨보던 K씨는 이제 채권자로서 그를 만나 수임계약을 맺은 것이다.“또 저는 수시로 무작정 여러 회사를 방문합니다. 그곳에서 채권을 관리하는 직원을 만나 제 소개를 합니다. 나에게 맡겨주면 최선을 다해서 돈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렇게 부지런하게 다니면 그중 한 곳에서 연락이 옵니다. 평소에 미래 고객들을 만들어 놓는 거죠.”그의 평균 회수율은 건수 기준으로 70%에 이른다. 1백건의 부실채권 중 70건은 어떤 형태로든 해결한다는 얘기다. 금액기준으로 봐도 그는 20%의 회수율을 기록한다. 이 업종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평균 회수율이 10%가 안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많은 돈을 받아내는 것이다.21개 전국 지점을 갖춘 고려신용정보는 2백50명의 채권추심 인력이 뛰고 있다. 고려신용정보는 지난 상반기 흑자를 기록했다. 대부분 적자상태의 영업구조를 갖고 있는 경쟁사와 비교해 영업실적이 좋은 셈이다. 실적이 좋아도 억대 연봉자들은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 다른 회사와 사정이 비슷한 이유는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비슷하고 대부분 돈을 받아내기 힘든 악성채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직업의 성패는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는 능력과 순발력을 갖췄느냐는 점이다.빚 받기 위해 아예 업체에 상주하기도경기북부지점에서 근무하는 차재익(37) 대리는 회사에서 손꼽히는 실적맨이다. 매월 1천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면서 전 지점을 통틀어 5위 안에 항상 진입한다. 그가 이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지 불과 3년밖에 안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놀라운 실력이다. 특히 이 분야는 법적인 지식과 사람을 다루는 솜씨를 요구하기 때문에 경력이 중요시된다. 그런 점에서도 차대리의 짧은 경력은 눈에 띈다.“비결이요? 당연한 얘기 같지만 열심히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 번 찾아가서 계속 설득하다보면 상대방도 지쳐서 돈을 내놓고는 합니다.”그는 주로 기업들간 부실채권인 상사채권을 전담해서 영업한다. 그러다보니 주로 그가 만나는 채무자들은 기업주들이다. 이들중 대부분은 악덕 채무자들이 많다고 한다.“10명 중 7명은 재산을 은닉해 놓고 돈을 갚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집에 가보면 휘황찬란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갚을 돈은 산더미 같은 데 어떻게 그런 집에서 살겠습니까. 어떤 형태로든 돈을 숨겨놓는 거죠. 이럴 때 채무자의 회사를 자주 방문해 정보를 수집합니다. 거래상들에게 질문도 하고 그들에게 거래처 사장이 빚더미에 있다는 사실도 알려 줍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채무자 사장이 손을 들죠.”채권추심 전문가들은 “이 분야에서 고액의 연봉자들이 많이 나오려면 시장이 커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동명 서울신용평가 이사는 “미국은 상사채권뿐 아니라 법원 확정판결이 끝난 개인채권도 신용정보사들이 받아낼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국내는 이를 못하도록 법으로 막아놓았다”며 “개인채권 시장이 열려야 신용평가사들의 영업실적과 고액 연봉자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이들이 추산하는 개인채권시장 규모는 수백조원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용평가사들에게 이런 영업제한을 준 이유로 개인간의 거래관계에서 누가 채권자이고 채무자인지 애매할 때가 많고, 불법적으로 쓴 계약서일 때가 많다는 점을 꼽고 있다. 말하자면 불법 영업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미국처럼 법원에서 판결을 낸 개인채권으로 한정해 영업을 허가해 준다면 이런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개인채권 시장이 활성화된다면 이른바 ‘조폭’으로 불리는 해결사들이 사라질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인터뷰김진열 솔로몬신용정보 수원지사 채권관리팀장“채무부담 더는 데 주력 … 성과로 이어져”김진열 솔로몬신용정보 수원지사 채권관리팀장은 회사내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수원지사에서 근무하는 그는 키도 크고(1백80cm) 훤칠하게 생겼다. 말은 좀 어눌하지만 신뢰가 가는 인상이다. 보통 돈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은 우락부락한 인상의 소유자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데도 그는 돈을 받아내는실력이 탁월하다.“채권자와 채무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돈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의 처지에서 무슨 누울 자리가 필요할까 싶지만 실제 현장은 그렇지 않아요. 돈을 전혀 갚지 못할 실업자도 있고 보증 때문에 할 수 없이 돈을 갚아야 하는 억울한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때론 실직자에게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돈을 갚게 하거나 채권자를 설득시켜 변제액을 늘려 채무자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합니다. 채권자에겐 더 많은 돈을, 채무자에겐 신용불량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죠.”회사에서 공개한 월급 내역서를 보면 그는 지난 3월 2천7백만원을, 지난 9월엔 1천만원을 받았다. 월별로 차이는 있지만 그는 지난 1년간 총 1억원이 넘는 월급을 받았다. 그가 더욱 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예감이 드는 이유는 그가 일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김팀장은 “부지런할수록 성과가 나오는 분야가 이곳”이라며 “강남대학교에서 부동산 경매 야간과정을 다니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간다”고 활짝 웃었다.그는 또 이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팀간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이유로 솔로몬 수원지사는 지점장과 법률팀장, 그리고 직원들이 유기적으로 서로를 도와가며 팀 플레이를 다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