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원 기업인수는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일이다. 더구나 ‘종업원이 제대로 경영할 수 있을까?’란 것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우리나라는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부도기업이 속출하고 일자리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삶의 터전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종업원들의 기업인수가 시작됐다. 3년이 지난 지금 부도기업에서만이 아니라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도 경영악화 기업에서 종업원의 기업인수는 하나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최근엔 종업원의 소유·경영참여, 고용안정, 기업구조조정 등 당면한 문제에 도 종업원 기업인수의 원리를 응용한 다양한 대안이 시도되기까지 한다.종업원 기업소유에 사업주 저항 커그러나 종업원 기업인수가 무조건 환영을 받고 순탄하게 진행되는 건 아니다. 가장 커다란 장벽은 종업원이 기업을 소유한다는 것에 대한 사업주의 저항감이다. 부도위기에 처해 있던 한 부품제조업체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기업의 생산직 직원들이 퇴직금과 체불임금으로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제안하자 사업주가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당시 사업주는 자기가 고용하고 있던 직원들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은 것을 모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망하면 망했지 종업원들한테는 결코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이다. 결국 그 회사는 부도처리됐고 종업원 기업인수도 이뤄지지 않았다. 기업주들의 지나친 권위의식의 단면을 보여준 것으로 종업원들이 기업 인수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겪는 것이기도 하다.또다른 장벽은 법·제도적 측면의 부재로 인한 어려움이다. 종업원 기업인수는 단순히 종업원들이 기업 M&A에서 매수 주체로 등장했다는 이변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고용안정과 실업예방이라는 종업원의 자구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이는 노동정책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부도기업이나 부실 기업에서 종업원 기업인수가 이뤄질 경우 해당 기업 종업원들에 대한 직접적인 고용효과 외에도 거래회사 종업원의 고용안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부도로 방치되거나 폐기되는 기계설비를 재가동하면 사회적 손실을 예방하는 경제 효과가 있다. 그러나 정부입장에선 종업원 기업인수에 의한 사회적 효과보다는 부실기업이 더 늘어나거나, 망할 기업을 종업원들이 무리하게 연명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간주하는 것 같다.외국의 경우 종업원주식소유제도(ESOP)를 이용해 종업원소유기업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경영위기에 처한 기업의 종업원들이 임금 삭감, 동결 등의 양보에 상응하는 대가로 주식을 취득하거나 개인출자를 통해 종업원이 최대주주가 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유나이티드에어라인(UA), 위어튼철강, 폴라로이드 등이 그런 경우다. 미국의 ESOP는 종업원 기업인수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는 아니지만 종업원주식소유를 지원하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주식인수에 의한 기업인수에 종업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실업정책 차원에서 정부가 저소득계층을 위해 종업원협동기업을 장려하는 경우도 있다. 인도의 케라라(Kerala)주의 디네시 비디(Dinesh Beedi) 종업원협동조합(beedi는 인도에서 빈민의 담배라고 알려진 작은 궐련이다), 이탈리아의 종업원협동기업 등이 그런 예다. 이외에도 종업원들의 소유 참가나 기업 소유는 기업의 소유구조를 재편하고 기업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돼 세계적으로 보편화돼 있다.반면에 아직 종업원 기업인수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이뤄졌던 부도기업의 종업원 기업인수 방식은 일반적인 기업 M&A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인수 자금이 종업원들의 퇴직금과 체불임금 등 임금채권에 기초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리고 자금 제약으로 기업인수가 일괄적으로 이뤄지기보다는 자산과 영업에 대한 부분적 인수로 시작해 해당 공장의 경매가 이뤄지는 시점에서 경락을 받는 단계적인 자산인수 과정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다.이 과정은 짧으면 1년에서 길면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런 종업원 기업인수 방식은 기업 M&A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주식인수나 자산부채인수 방식과는 다르다. 전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종업원 기업인수 방식인 셈이다. 최근엔 주식인수나 자산부채인수방식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도 특별한 경우다.종업원 경매 물건 우선권 부여돼야우리나라의 종업원 기업인수방식은 제조업의 중요한 생산수단인 공장을 경매를 통해 취득해야 해 그만큼 확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매에 참가했다가 공장을 취득하지 못해 중도에 사업을 접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를 해소하려면 종업원들에게 경매 대상 물건에 대해 우선권을 부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부도 후 잠적했던 전 사업주가 3자를 내세워 공장을 경락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대한 법률적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종업원들이 기업을 인수한 후엔 기업 운영의 안정성 문제가 대두된다.종업원의 기업인수를 발전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도 종업원들의 경영능력에 대한 우려는 크다. 종업원들의 경영능력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경영에서 사업주의 독점적 영역으로 경영권이 고집되고 있는 기업풍토에서 종업원들이 경영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고 안목을 갖는 훈련은 당연히 이뤄질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종업원들이 인수한 기업들이 경영상 실패를 원인으로 문을 닫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비록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취약한 자본조달과 마케팅 능력의 한계를 효율적 생산관리, 생산성 향상, 비용절감 등의 노력으로 상쇄시켜 왔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경영을 통한 기업의 급성장은 없었지만 꾸준한 성장을 하는 기업들도 많다. 전문경영인을 찾기도 어려운 데다 마땅한 전문경영인이 있다 해도 지불능력 한계로 영입을 주저하게 된다. 근본적으로 종업원소유기업의 의미성을 깊이 이해하고 종업원들과 정서적 일체감을 가질 수 있는 전문경영인이 아직 없는 것도 사실이다.종업원의 기업인수는 정책 문제로 고려해야 될 사안이며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