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일을 당한 사람들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운다면 악덕 상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장례업자들의 부도덕한 폭리행위는 추방돼야 합니다.”지난 94년 어느 날. 도쿄 지하철 전차 안에는 승객들의 눈길을 끄는 이색 광고문이 하나 걸리기 시작했다. 광고에는 인상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화를 내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한쪽 구석에는 이제껏 접하지 못했던 내용의 문구가 게재돼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광고는 ‘고에키샤’라는 장례업자가 내건 것이었다. 업자가 매단 광고였으니 잘 하는 것, 잘 만드는 상품을 선전하는 내용으로 채워졌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고에키샤는 정반대였다. 본업인 장례업과 관련, 업체들의 횡포와 못된 관행을 고발하고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는 독설과 비판으로 일관했다. 지하철에 걸린 광고는 오사카에 본사를 두고 칸토지방 일대에서 활동해 온 고에키샤가 증시 상장을 계기로 도쿄에 진출하면서 시작한 것이었다. 무명의 지방 중소업체가 중앙무대에 뛰어 들면서 던진 인사말이니 단기간에 주위 시선을 끌어 보기 위한 깜짝 카드로 평가될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하지만 고에키샤의 본심은 ‘쇼’가 아니었다. 이 회사는 장례에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를 원가에서 판매가격까지 구체적 내역을 조목조목 소비자들에게 공개하는 파격 조치를 단행했다. 신문에 끼워 넣는 전단 광고를 통해서도 지하철에 걸린 것과 유사한 내용을 과감하게 내보냈다. 자연 동업자들로부터는 ‘업계를 망치려느냐’는 비난과 욕설이 빗발쳤다.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고에키샤의 돌출 행동은 양심선언으로 칭찬받고 있으며 고에키샤의 입장에 동조하는 경쟁사가 늘어나면서 장례업계의 부당횡포는 상당수 사라지고 있다.신용과 신뢰를 기본 축으로 하는 일본의 상거래 문화는 어디서나 세계 정상급 수준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고객에게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그에 상응하는 합당한 가격을 받을 뿐 터무니 없는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게 일본 상인사회의 불문율이었다.가격 폭리 횡포 사례 잇따라 ‘원성’그렇지만 일본이 자랑하는 선진 상거래 문화에도 사각지대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관행과 담합, 행정 관청의 보호막을 배경으로 엉터리 대가를 요구해 온 분야는 부동산, 교통 서비스에서 장례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뿌리박고 있다. 불황으로 상당수 물가가 내리막길을 걷는 최근에도 바로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아 일본 국민들의 원성을 자초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바가지 요금의 대표로 첫 손가락에 꼽는 것은 단연 부동산 수수료다. 일본 택지건물거래업법은 중개업소가 집주인과 세입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수수료의 상한선을 집세 1개월치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도쿄를 중심으로 한 동일본 지역과 큐슈의 경우 이 룰이 지켜지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주인들의 비난과 진정이 수십년 째 계속되자 당국은 보다 못해 징계의 칼을 빼들었다. 대형 부동산 중개회사인 ‘에이블’에 대해 법률위반으로 지난해 한때 행정처분을 내렸던 것.71개 점포를 열어 놓고 있는 에이블은 한 군데만 단속에 걸려도 전체가 영업을 못하게 되므로 수수료를 법률이 정한 상한선 이내로 내렸다. 그러자 다른 중개업자들의 견제와 비난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큐슈에서는 수수료 인하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어겼다며 중개업자들이 에이블을 공개 규탄하는 모임을 갖기도 했다. 자의반 타의반 격으로 떠밀리긴 했지만 대형사가 앞장서 수수료를 합법적 수준까지 낮췄음에도 불구, 나머지 절대 다수는 행정관청을 비웃으며 바가지 요금을 고수하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일본 언론은 세입자를 울리는 부동산업계의 관행은 수수료 뿐만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시키킹(보증금) 레이킹(사례금) 등 월세의 수개월치에 해당하는 웃돈이 근거도 없이 세입자들을 괴롭히며 부동산거래 선진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IT(정보기술)문화의 꽃으로 각광받는 휴대폰에도 엉터리 요금은 있다. 전체 휴대폰 가입자의 59%를 차지하고 있는 NTT도코모의 경우 불청객 e메일을 받는 쪽에도 요금을 부과해 집단 민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NTT도코모는 무선 인터넷 서비스(i 모드) 이용자들로부터 메일 수신료로 1통 1백자까지 1.2엔을 받고 있다. 하루 5통만 들어온다 해도 가입자들은 6엔을 억울하게 뺏기는 셈이다. 1개월이면 1백80엔이 부당하게 날아간다. NTT도코모는 휴대폰 번호를 e메일 주소로 쓰는 사람들이 전체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며 광고성 메일 발신자들은 이 점을 악용해 무차별로 메일을 날리고 있다. 따라서 NTT도코모는 1천만명이 넘는 가입자들을 광고성 e메일 앞에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한편 한달에 수십억엔의 돈을 가만히 앉아서 챙기고 있다. NTT도코모측은 “인터넷이라는 공통의 인프라에 접속하는 과정에서 수신자들도 일정한 통신코스트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렇지만 일본 소비자들의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경쟁 휴대폰 회사들은 일정수의 문자까지 e메일을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반해 NTT도코모는 그같은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독과점 기업의 횡포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NTT도코모는 한꺼번에 대량 발송되는 메일은 가입자들이 거부할 수 있도록 지난 11월13일부터 안전 장치를 마련했지만 업자들이 이를 피해 나눠 띄울 경우에도 차단이 가능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일본 언론과 소비자들이 뒷맛이 개운치 않다고 지적하는 교통 요금의 대표적 사례는 공항 리무진버스다. 나리타 공항과 도쿄 도심을 잇는 리무진 버스는 신주쿠, 시부야 노선의 경우 1인당 3천엔, 하코자키 에어 터미널노선의 경우 2천9백엔 씩을 받고 있다. 일본 언론은 리무진 버스 요금이 모든 노선에 걸쳐 비싸다고 할순 없어도 책정 과정을 보면 납득하기 힘든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니라고 꼬집고 있다. 90년 이후 도쿄 일대 수도권을 운행하는 고속버스 요금이 인상된 사례는 단 한번도 없었던 데 반해 리무진 버스는 92년과 97년 두차례나 2백엔씩 뛰었다는 것이다.리무진 버스는 JAL 등 일본의 3대 항공사와 국토교통성 출신 전직관료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공항빌딩관리회사, 그리고 게이세이전철 등이 공동으로 설립한 도쿄공항교통이 맡고 있다. 도쿄공항교통은 인상 이유로 철도와의 고객확보 경쟁 격화에 따른 수지 악화 및 조조, 심야 운행으로 인한 코스트 상승 등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은 이같은 주장에 수긍할 수 없다는 눈치다. 독점 운영과 전직 관료 출신들의 보이지 않는 보호막에서 비롯된 폐해가 소비자들에게 불이익을 안겨 주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합리화 등 자구 노력을 외면한 채 고객 수가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요금을 올리는 안일한 자세로는 고객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게 언론의 지적이다.재일교포 MK그룹 공항노선 참여 새바람 기대이들은 2002년 2월부터 개정 도로운송법이 발효되면서 공항노선이 다른 사업자들에게도 개방되는 것을 계기로 리무진 버스의 경쟁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리무진 버스의 가격 경쟁력과 서비스에 대해 첫 심판을 내릴 도전자로 재일교포 실업인 유봉식씨가 운영하는 MK그룹을 꼽고 있다.유봉식씨는 공항노선 신규참여를 위해 ‘MK스카이게이트 셔틀’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놓고 있으며 9인승 웨곤을 7인승으로 개조한 차량을 투입시킨다는 계획이다. 고객의 집과 공항을 편안하게 이어주는 획기적 서비스를 구상 중인 그는 4천엔만 받아도 수요가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일본 언론은 유봉식씨가 일본 운수업계에 가격, 서비스 혁명을 몰고 온 주인공이라는 점을 주목, 무사안일의 리무진 버스가 어떻게 시련을 이겨낼 지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