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이 휩쓸고 지나간 일본 먹거리 시장에서 한국 음식은 그야말로 ‘대수난’이다. 일본인들에게 한국음식의 상징처럼 인식돼 온 야키니쿠(일본식으로 구워 먹는 쇠고기)는 완전 찬밥 신세고 야키니쿠를 파는 식당은 한창 바쁠 시각에도 인적을 찾아 보기 힘들 정도다. 야키니쿠가 기피 대상이 되면서 다른 한국 음식들도 덩달아 푸대접을 받긴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도쿄의 유명 한국 식당들도 매출이 30~40%씩 줄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대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상품이 하나 등장, 시선을 끌고 있다. 김치찌개용 조미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김치찌개는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뿌리 내린 또 다른 한국 음식 중 하나다. 편의점, 수퍼마켓 진열대에는 집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김치찌개와 각종 부재료가 약방의 감초처럼 놓여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들리는 이자카야(식당 스타일의 선술집)는 거의 대부분 김치찌개를 인기 메뉴로 올려 놓고 있다. 김치찌개 붐을 타고 선보인 전용 조미료는 일부 중소형회사들에 이어 이제는 유명업체들까지 가세, 인기 다툼이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때문에 일본 언론은 뜨거운 음식이 제격인 겨울철을 맞아 김치찌개용 조미료가 올 연말에 가장 주목받는 상품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미츠캉’ ‘기코망’ 신제품 내며 선전김치찌개용 조미료에 최근 가장 관심을 보이고 있는 업체는 조리용 술로 유명한 ‘미츠캉’과 간장회사 ‘기코망’.미츠캉은 한국산 고춧가루와 고추장 등을 넣어 만든 액상 형태 제품을 개발, ‘김치찌개 쯔유 스트레이트’라는 브랜드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물을 타서 희석식으로 찌개를 만들어 먹는 제품이 소비자 반응이 좋자 신제품을 추가로 발매한 것. 미츠캉의 다카구치 유에키 마케팅본부 조미료과장은 “한국산 재료를 넣어 본고장 맛을 최대한 살렸다”고 품질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일본 식품업계는 미츠캉이 김치찌개용 조미료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를 유망한 시장성에서 찾고 있다. 식생활 습관 변화로 일본 전통식 조미료 수요가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하는데 반해 김치찌개용은 한국 붐에 힘입어 눈부시게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춧가루가 다이어트 등 미용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김치찌개용 조미료는 올 한햇 동안 시장규모가 35억엔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일본 최고의 간장 메이커인 기코망이 김치찌개용 조미료 사업에 뛰어든 것은 그야말로 ‘사건’이다. 간장에 관한 한 ‘전세계 넘버 원’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 회사가 김치찌개에 눈을 돌린 것이야말로 한국 음식의 우수성을 대변해 주는 증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기코망은 지난해 말 시험적으로 김치찌개용 조미료 판매를 시작한데 이어 최근 고추장을 종전보다 1.5배 더 넣은 농축형 제품을 내놓고 인기 몰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김치찌개용 조미료의 선발 주자로는 다이쇼 및 에바라식품 두 회사가 꼽히고 있다. 제품을 가장 먼저 선보인 것은 다이쇼(94년)지만 수요에 불을 붙인 것은 에바라식품이다. 고추장과 해물 엑기스를 넣어 만든 제품을 ‘김치찌개의 참맛’이라는 브랜드로 99년 등장시킨 에바라는 과감한 광고, 판촉활동을 앞세워 본격적인 붐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식품 및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김치찌개용 조미료의 인기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들의 신규참여가 줄을 이으면서 제품도 다양해지고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광고활동도 다채로워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독신자를 겨냥한 1인분용 초소형 사이즈 제품에 맞춰 조미료 양을 최소화한 ‘스몰’ 제품이 앞으로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