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컨설팅 코리아가 한국경제신문과 공동으로 지난 10월10일부터 11월5일까지 25일간 금융기관 실무자 1백35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여신심사, 부실채권, 여신영업, 그리고 여신전략 담당자들에게 설문지를 돌린 목적은 외국계 컨설팅사로부터 받은 조언이 실제 은행 개혁에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그 결과 은행이 선진 금융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적절했지만 이를 적용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개인고객과 법인고객의 신용을 심사하는데 문제점이 많아 수조원대의 유망시장을 카드사나 신용금고 등에 내줬다고 리스크컨설팅사는 분석했다.외국계 컨설팅사가 은행 개혁 주도국내 은행들은 IMF 이후 주로 외국계 컨설팅사로부터 경영 조언을 들은 것으로 설문결과 나타났다. 반면 신용평가회사를 포함, 국내 컨설팅사를 선택한 은행 실무자들은 21%에 불과했다. 대부분 외국계 컨설턴트가 은행 개혁을 주도했다는 얘기다.은행 실무자들은 외국사나 국내사를 통틀어 컨설팅 내용에는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1%만이 ‘매우 만족한다’로 응답했을 뿐이다. 41%는 어느 정도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반면 38%는 보통, 16%는 다소 불만족, 그리고 4%는 매우 불만족에 표시했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 사장은 “수억원에서 수백억원을 들여 컨설팅을 해놓고, 그 결과가 보통이라는 응답은 사실상 불만이라는 의견”이라며 “대부분 컨설팅 내용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그러나 이같은 응답이 외국계 컨설팅사에 한정된 것인지 국내사에 대한 것인지 불명확하다. 다만 국내 은행 대부분이 외국계 회사에서 실사를 받고 경영 자문을 받았다는 결과를 놓고 볼 때 내용의 불만은 상당부분 외국사를 향한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컨설팅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응답자의 34%는 “컨설팅 결과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또 33%는 “컨설팅 결과가 경영에 획기적으로 도움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실사에 투입된 컨설턴트가 금융기관의 현실과 관련 업무를 잘 몰라서 답답했다”고 응답한 실무자들도 31%나 됐다. 이는 은행 실사에 참여한 컨설턴트들이 국내 은행의 업무를 잘 모른 채 현장에 투입돼 현실에 적용할 만한 전략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이 때문에 은행 실무자들은 앞으로 컨설팅사를 선정하는 기준으로 실무에 밝은 새로운 국내 컨설팅사(62%)를 제일 많이 꼽았다. 그리고 새로운 외국계 컨설팅사를 선택하겠다는 의견은 19%, 과거 컨설팅을 받았던 외국계 컨설팅사를 다시 선택하겠다는 의견은 15%에 불과했다.실무자들은 컨설팅을 받은 뒤 여신심사, 신용위험평가, 그리고 전략면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개인고객의 여신심사시스템인 CSS(Credit Scoring System)와 기업고객의 여신심사를 담당하는 RM(Relationship Manager)을 신설한 것이 좋았다고 응답했다. 응답자들은 ‘컨설팅 후 효과가 큰 부문부터 나열하라’는 질문에 ‘여신심사조직’과 ‘신용위험평가능력’, 그리고 이 분야의 ‘담당자 능력제고’를 동일한 비율로(19%) 꼽았다. 또 여신운용조직과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효과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부실채권관리는 응답자의 9%만이 효과가 있었다고 답했다.그러나 제도 도입은 좋았지만 실제 효과는 기대치를 밑돈 것으로 응답자들은 고백했다. 예컨대 CSS와 RM의 도입에 대해 응답자의 7%만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54%가 CSS의 도입을 ‘대체로 성공했다’고 평가했고, RM은 41%가 ‘대체로 성공했다’고 답했다. 효과적인 측면에서 ‘보통’이었다고 응답한 사람들도 꽤 많았다. 응답자의 38%가 CSS의 효과는 보통이라고 평가했고, 41%는 RM 조직의 효과가 보통이라고 대답했다. 실무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그다지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은 것이다. 왜 그럴까.서민대출시장 놓치는 등 이윤창출 실패우선 은행이 이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자영업자와 일반 서민들의 대출 시장을 놓쳤다고 실무자들은 고백한다. CSS는 직업과 재산, 그리고 소득 등 3대 요인에 가장 큰 비중을 둬 개인의 신용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대출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신용평가와 여신을 분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은행은 직업과 소득평가부문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자영업자에게는 대출금액 결정을 해주지 않았다. 또 연체 등으로 신용도가 떨어진 서민들에게도 대출을 금지했다.이는 우량한 고객만을 선별 관리해 연체율을 낮추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실제 이익을 창출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 사장은 “엄청나게 큰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대출시장을 시스템 때문에 사장시키고 있다”며 “CSS를 현실에서 적용할 때 좀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도는 필요했지만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인 셈이다.기업여신 영업을 전담하는 RM 조직 역시 비슷한 비판을 받는비슷한 비판을 받는다. 우선 RM의 담당 실무자들이 기업평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교육 없이 현장에 투입되다보니 기업신용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채 영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6개월~1년 정도 시간을 두고 RM 실무자들을 교육시켜 현장에 투입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이들 조직의 활성화 방안에 대해 설문 응답자 중 27%가 심사기법의 개선을, 23%는 최고 경영진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제도만 도입하지 말고 실무자들에 대한 투자도 해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또 19%는 고의가 없는 부실채권 발생에 대해 책임 추궁을 하지 말아달라고 응답했다. 14%는 신용여신의 성공여부에 따라 인센티브 제도를 시행하라고 답했다. 이는 은행이 아직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는 보신주의로 일관하는 사람을 더 선호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다. 은행원들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있어 실수만 체크한다는 비판인 셈이다.RM 실무자들의 능력도 문제지만 은행 내 여신을 심사하는 직원들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심사요원들이 부족하다보니 수많은 기업을 평가하기 힘들고, 이는 아예 기업에 대출을 해주지 않는 쪽으로 틀어지고 있는 것이다. 괜히 기업신용을 잘못 평가했다가 돈을 떼이면 심사팀에게 책임이 돌아가기 때문. 영업조직을 키워 대출처를 찾아와도 심사팀이 제대로 역할을 못해 기업대출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여신전략 실무자들은 외국계 컨설팅사 선호응답자들 중 여신전략과 부실채권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외국계 컨설팅 회사를 선호하는 것으로 이번 조사에서 나타났다. 특히 여신전략 담당자들은 1백%가 앞으로도 외국계 컨설팅사로부터 조언을 듣겠다고 답했다. 이는 세계 금융 변화의 흐름을 읽으면서 전략을 세우는 데에는 외국계 회사가 적합하다는 판단을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이들은 컨설팅 결과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만족한다(60%)고 답했다. 만족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없었다. 이런 이유로 기존 컨설팅 회사로부터 다시 컨설팅을 받겠다는 응답이 50%를 차지했다. 또 앞으로 컨설팅 회사를 선정할 때도 새로운 외국계 회사(50%)와 컨설팅을 받았던 외국사(50%)라고 답했다.부실채권 담당자들은 “IMF 이후 여신운용과 심사부문에서 가장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외국계 컨설팅사(65%)를 꼽았다. 이는 은행 스스로, 혹은 감독기관의 권유로 컨설팅사의 서비스를 받았다는 다른 파트의 실무자들과 다른 응답이다. 이정조 사장은 “부실채권 매각 작업을 하면서 외국계 컨설팅사와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아서”라고 분석했다. 부실채권 담당자들은 또 여신심사시스템 때문에 큰 효과를 봤다고 19%가 답변했고, 신용위험평가능력면에서도 효과가 있었다고 18%가 답했다.그러나 이들 중 54%는 앞으로 컨설팅사를 선정할 때 국내 사정에 밝은 국내 컨설팅사를 선택하겠다고 응답했다.인터뷰이정조 리스크컨설팅 코리아 사장“컨설팅사 선정 공개적으로 해야”“컨설팅 회사들이 은행 경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것은 은행 발전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다만 그것을 적용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컨설턴트들이 은행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한 겁니다.”이정조(49) 리스크컨설팅 코리아 사장은 “이제 금융기관 컨설팅 업체는 브랜드보다는 실무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들도 직원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리스크를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사장이 운영하는 리스크컨설팅 코리아는 신용 리스크 관리와 기업분석 전문업체다. 전북은행 등 금융기관 6개사의 신용평가기준을 마련하고 여신 활성화 방안 등을 제시하는 등 이 분야에서 활발한 컨설팅 활동을 벌였다.“서류나 제안서 등으로 컨설팅사의 능력을 평가하지 말고 공개적인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컨설팅사를 선정해야 합니다. 또 컨설턴트들의 능력이 중요한 만큼 참여인력의 이력서를 받아 은행 스스로 컨설턴트들을 선택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이사장은 경영자가 개혁에 대한 의지와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아직도 은행은 실무자들을 평가할 때 실수한 것이 없는지 파악하는 수준”이라며 “경영진의 무지가 은행원들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이같은 환경 때문에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는 심사부 직원들이 많고, 부서간 협조도 안되는 상태가 지속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