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요금 정산·운행시간 연장 등 자발적 개선, 월매출 증가 … 내년 봄 완전 정상화 기대

2년 전, 40년간 회사를 이끌어 온 창업주는 재정악화를 견디다 못해 경영권 포기를 선언했다. 대신 ‘진아교통’이라는 이름만은 살리려고 운수업계 베테랑이라는 전문 경영인을 ‘모셔’왔다. 회사만 살려낸다면 자신의 주식을 모두 주겠노라는 절박한 부탁과 함께.전문 경영인은 처음 몇 달 동안 의욕적으로 일하는 듯 했다. 임금체불 해소와 복지 향상을 장담하는 그의 태도를 보고 노조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본색이 드러났다. 소액주주들의 주식을 무리하게 매집하는가 싶더니 이내 경영 상태를 더욱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지난 5월, 보다 못한 노조가 나섰다. 조합원들이 1억8천만원을 출자해 주식의 30%를 확보하고 주주총회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노조는 ‘전문 경영인’을 해임시키고 노조 기획부장이던 이상도씨를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후 기사들의 체불 임금 가운데 5억6천만원을 출자전환으로 돌리고 2억여원을 별도로 모금해 회사지분의 65%를 인수했다. 버스기사들이 진아교통의 새 주인이 된 것이다.“전문경영인은 바로 버스기사들”1백50여 버스기사들이 주주가 된 후 회사는 확 달라졌다. 우선 실적면에서 월 7천만원 선의 매출 증가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이 맘 때와 비교하면 매일 2백만~3백만원이 더 늘었다는 이야기다. 이상도 사장도, 노조 나형태 위원장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다만 ‘기사들의 회사’가 된 후 승객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이 달라진데 따른 결과로 추측할 뿐이다.서울 월계동에서 용산구 동부이촌동까지 운행하는 38번, 강남구 도곡동까지 운행하는 38-2번, 노원구 일대를 순환하는 411 448 449번 버스를 운행하는 진아교통은 서울 시내버스업계에서 하위권에 속하는 작은 회사다. 이 회사가 업계 최초로 종업원 기업인수를 시도하게 된 것은 작게는 체불 임금의 보전, 크게는 투명 경영을 위해서였다.이 회사에서 투명 경영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운송수익금과 지출내역을 완전히 공개하는 일부터 시작했다.“과거에는 입금실 내부에 얼씬도 못했지요. 경리직원들 세 명만 요금함을 만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번 돈, 우리가 직접 셉니다. 당번이 따로 없어요. 운행을 마친 기사들이 힘을 합쳐 계산하다 보면 저절로 사기가 올라갑니다.”입금실에서 요금함을 정리하던 한 기사는 “기사가 직접 요금을 정산하는 곳은 전국에서 여기뿐”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얼마를 버는 지도 모르는 채 ‘어렵다’는 압박만 받던 고질적 병폐를 과감히 깬 것이다.기사들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게 되면서 달라진 건 또 있다. 수입을 높이기 위해 기사들이 자발적으로 운행시간을 연장하고 승객 응대 태도도 눈에 띄게 친절해졌다. 매일 아침 출근시간엔 이상도 사장과 나형태 조합장이 주요 기점에 나가 배차간격 조정에 나선다. 길이 막혀 배차간격이 벌어지면 예비 차를 투입하고 기다리는 승객들에겐 버스의 위치를 알려준다. 기사들이 짬나는 대로 빗자루를 들고 회사를 청소하는 모습은 더 이상 새로운 일도 아니다. 운행을 마친 기사들이 동료를 위해 밥을 싣고 노선에 나가 제때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나형태 조합장은 “버스회사의 전문 경영인은 바로 버스기사들”이라고 강조한다. 회사를 이끄는 원동력이자 회사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라는 것. 또 “우리가 번 돈이 엉뚱한 곳으로 새지만 않는다면 회사는 희망 그 자체”라는 말도 덧붙였다.시내버스업계에 충격, 주주배당도 기대그러나 진아교통의 경영 상태가 완전히 개선된 것은 아니다. 수 년째 지급하지 못한 퇴직금과 퇴직자들의 미지급 상여금이 아직 3억원 정도 남아 있다. 현재 직원들도 상여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해임된 전 사장이 지난 5월17일의 주주총회가 무효라며 소송을 낸 상태다.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이상도 사장은 내년 2~3월을 고비로 보고 있다. 그때쯤이면 퇴직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체불 임금이 얼추 해결되기 때문. 그 다음엔 현직 기사들에게 밀린 상여금을 지급할 계획이다.“내년 봄부터는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처럼만 수익이 올라 준다면 밀린 상여금은 물론 주주들에게 배당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당금만 줄 수 있다면 어떤 버스회사보다 봉급이 많아지겠지요. 기사들이 기 펴고 맘껏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 겁니다.”진아교통 노조의 수술 실험은 일단 성공적이다. 만신창이 중상 상태에서 회복기를 거쳐 이제 퇴원을 앞두고 있다. 다른 업체에 끼친 영향도 적지 않다. 얼마 전에는 대구 K버스회사에서 기사 10여명이 상경해 한 수 가르침을 청했다. ‘주주가 돼서 운전하고 싶다’는 입사지원서도 심심찮게 들어온다.하지만 경영진의 어깨는 예전보다 더 무겁다. 내년 봄 활짝 웃기 위해 더 열심히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인터뷰이상도 사장·나형태 노동조합장“주주된 후 너나없이 열심히” 보람 커이상도(사진 아래) 사장과 나형태(사진 위) 조합장은 진아교통을 ‘기사들의 회사’로 만드는데 중추 역할을 해 왔다. 79년 12월에 입사, 올해로 23년째 근속중인 나조합장은 회사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인물. 97년 조합장이 된 뒤로 운전대 대신 노조 살림을 맡아왔다. 이상도 사장도 86년에 입사한 장기 근속자다. 99년 노조 기획부장이 된 후 지난 5월부터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말이 대표이사지, 사실 직원 대표 아닙니까. 노조에서 추천해 사장이 됐으니 노조 위에 군림할 수가 없죠. 노조와 함께 회사를 투명하게 이끌어 가는 게 가장 큰 임무입니다.”두 사람은 지난 5월 주총을 준비하면서 고락을 함께 했다. 하나같이 어려운 형편이던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대외 모금활동을 하면서 결국 회사를 되살려 놓았다. 믿고 따라주는 기사들을 생각하면 고마운 것은 물론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지금도 다른 버스회사에서는 기사들의 인권이 무시되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직원보다 경영진을 보호하는 노동조합도 한 둘이 아니지요. 기사들이 주주가 된 후 너나 할 것 없이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너무 보람됩니다.”그러나 두 사람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은다. 아닌게 아니라 처리해야 할 부채와 문제가 쌓여 있다. 그래도 표정만은 밝다. 어려운 고비를 똘똘 뭉쳐 넘기면서 자신감도 커졌기 때문. “내년 봄부터 더 크게 웃고 다니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