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CMS솔루션 첫 개발, 시장 성장성 높아 성장 엔진 확실시
‘청산이 웬말이냐. 회사를 살려내라’, ‘방만경영 노동자만 죽어난다’. 41명의 사람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98년 7월, 뙤약볕이 내리쬐는 조흥은행 본점 앞에선 그날도 어김없이 조흥시스템 노조원들이 농성장에 나와 회사 청산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다. 그리고 8개월 뒤 41명에서 29명으로 줄어든 노조원들은 드디어 승전보를 울린다. 비록 청산은 막을 수 없었지만 종업원이 주인이 되는 회사를 설립하는데 지원을 약속받은 것이다.투나인정보기술, 조흥시스템의 새로운 이름이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조직도 확 바뀌었다. 조흥시스템을 살리려고 노력했던 종업원이 주인이 된 회사다. 투나인(Twonine)이란 이름도 끝까지 남아 승리를 쟁취한 노조원 29명을 의미한다.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투나인정보기술 사무실은 테헤란밸리의 여느 벤처와 같은 호화스러운 인테리어나 멋진 장식품은 없다. 하지만 50평 남짓한 사무실은 4년 전의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옹기종기 앉아 회의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 소탈해 보이는 사람이 걸어나온다. 바로 이 회사의 CEO 서인형(35) 사장이다.서사장은 조흥시스템 청산 반대에 가장 앞장섰던 조흥시스템 노동조합 위원장 출신. 그 덕에 투나인정보기술의 초대사장으로 선임됐다. 투나인정보기술은 끝까지 남아 있던 29명이 퇴직금, 개인대출금 등을 털어 99년 4월 설립됐다.노조원 29명 출자로 독립투나인정보기술의 전신인 조흥시스템은 90년 8월 설립된 조흥은행 자회사. 주로 조흥은행 전산 프로그램 개발에 전념해왔다. 직원이 60명이었던 조흥시스템은 98년 7월 회사문을 닫기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운영돼 왔다. 하지만 IMF가 직접적인 타격을 줬다. 당시 금융권 전체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여파로 조흥시스템이 타깃이 된 것. 하지만 서사장을 비롯한 조흥시스템 종업원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때까지 안정적으로 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청산의 이유가 없었던 것. 자본금 20억원으로 설립돼 회사가 문을 닫기 직전 해인 97년 3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청산때 10억원의 자본금이 남아 있을 정도로 재무구조가 탄탄했다.8개월간의 농성도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다. 서사장은 “방만경영의 책임을 자회사와 종업원들에게 떠넘기는 상황은 더 두고 볼 수 없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8개월간 천막에서 농성했지요. 여름과 겨울을 천막에서 보내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부실경영의 책임을 종업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종업원들의 생존권이 보장될 때까지 투쟁하기로 했습니다.”결국 조흥은행은 조흥시스템 노조원 뜻을 받아들여 청산 대신 종업원들이 출자하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데 적극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당시 농성에 참여했던 41명 가운데 일부는 조흥은행이 제시한 보상금을 받고 회사를 떠났고 일부는 조흥은행 계약직으로 들어갔다.하지만 종업원 지주 회사를 이끌어 가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조흥시스템 시절 추진해왔던 사업 아이템이 독립회사의 아이템으로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흥은행이라는 고정 고객을 통해 안정적 매출은 발생하지만 회사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 초기 사업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자 창업멤버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서사장과 창업동지들은 고민에 빠졌다. 투나인정보기술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없을까. 밤낮으로 고민하고 논의한 끝에 기존의 사업 아이템을 버리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는 길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조흥은행에 집중된 금융SI만으로 회사를 키울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금융SI만으로도 안정적인 매출이 가능했지만 조흥은행과의 보이지 않는 영역 문제 때문에 성장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그래서 투나인정보통신은 2000년 초부터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시장조사에 들어가 여기저기 자문도 구하고 해서 콘텐츠관리시스템(CMS)이란 아이템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투나인정보기술이 CMS를 선택한 이유는시장성이었다. CMS는 세계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시장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CMS업체인 비넷은 지난해 CMS솔루션 하나만으로 3억6천만달러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성장성이 높았다. 또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오붐도 2004년께 CMS시장이 전세계적으로 80억달러에 이른다고 전망했던 것. 국내 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CMS시장이 올해 약 80억원에 1백억원 규모를 형성하고 내년엔 3백%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 막 시작되긴 했지만 초기 시장만 선점하면 투나인정보기술에는 성장엔진이 될 것이 확실했다.CMS라는 사업 아이템에 자신감을 얻은 서사장은 6개월 동안 3억여원을 투자해 국내업체 처음으로 CMS를 자체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개발자금은 매출 일부와 정부의 각종 기금을 받아 사용했다. 콘텐츠 관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투나인정보기술은 ZD넷코리아, 경향신문 미디어칸, 하이텔, 삼성화재 등 10여개 고객을 확보해 외국업체와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업체로 우뚝 섰다. 투나인정보기술은 지난해 9월 CMS사업을 시작하면서 금융SI 사업을 과감히 정리했다. 때문에 올해 매출은 CMS로만 지난해 수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투나인정보기술은 지난해 8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중 1억5천만원을 CMS로 벌어들였다.인터뷰서인형 사장“생존 위해 아낄 수 있는거 다 아낍니다”“아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아끼려고 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짠돌이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서인형 투나인정보기술 사장은 종업원이 인수한 기업은 여러 가지 핸디캡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핸디캡이란 부족한 자본금, 기업경영의 전문성 부족, 그리고 태생적 한계인 열악한 경영환경 등이다.서사장은 “종업원이 출자해봐야 퇴직금이거나 개인대출이 전부다. 그러니 자본금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종업원들이기 때문에 경영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 영업 마케팅 관리 등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 뿐인가. 파산 직전이거나 부도가 난 회사를 인수했기 때문에 일반 창업과 출발선이 다르다. 서사장은 “이미 경쟁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원상 복귀시킨다고 해도 제 궤도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서사장이 이끄는 투나인정보기술도 이런 핸디캡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운이 좋았다면 조흥시스템이란 회사가 그런대로 튼튼한 재무구조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사업 확대엔 한계가 있었다.“새로운 회사는 비전이 있어야 했습니다. 현재의 사업아이템으론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모두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예 사업구조를 바꾸는 것이었죠.”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CMS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투나인정보기술은 새롭게 도약할 수 있게 됐다.서사장은 투나인정보기술 전신인 조흥시스템 개발부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7년 후 갑작스런 회사 청산에 노동자 한사람으로 분연히 일어섰고 지금은 새 회사의 CEO로 자리잡았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고 전산개발자에서 전문경영인이 된 그는 “세계적 IT기업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스콧 맥릴리 회장은 사업 초창기 사무실 물을 아끼기 위해 옆 건물 화장실에서 볼일 봤다”며 “투나인의 직원들도 맥릴리같은 자세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