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에는 덩치가 큰 업종답게 거물급 CEO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저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정유업계의 새 활로를 개척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SK(주)의 황두열(58) 부회장은 지난 68년 대한석유공사에 입사, 32년간 석유업계에 몸담아온 석유통이다. 97년 ‘엔크린’이라는 휘발유 브랜드와 보너스카드(적립식 환원제도)를 도입한 주역이다. 엔크린 보너스카드 도입은 국내 석유시장의 마케팅 및 고객 서비스 수준을 한단계 높였다는 평이다. 직원들에 따르면 황부회장은 술자리에서도 절대 잔 입구를 손으로 잡지 않는 등 매너있는 상사로 정평 나 있지만 일을 할 때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판단이 설 경우 적극 밀어부치는 스타일이다. 황부회장은 ‘선견선비(先見先備)’라는 말을 좋아한다.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분명히 변화를 내비치는 징후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 징후들을 정확히 읽어내는 기업이 주도하게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과연 황부회장이 재편과정의 정유업계서 업계를 계속 주도할 징후를 찾았는지 무척 궁금하다.LG칼텍스정유의 허동수(58) 부회장은 지난 3년 LG정유(당시 호남정유)에 입사, 94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왔다. 연세대학교 화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위시콘신대에서 화학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때문에 이론과 실전감각을 겸비한 전문경영인으로 통한다. 95년 휘발유에 브랜드 개념을 도입, ‘테크론’을 출시했고 99년 청정휘발유인 ‘시그마 6’을 개발, 휘발유 품질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허부회장은 임직원들과의 잦은 만남을 통해 평소의 기업경영 철학과 소신 등을 공유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평이다. 매 분기별로 공장과 본사 등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경영현황설명회를 개최하고 팀장 이하의 사원간담회 등을 개최한다고 한다. 허부회장의 경영철학은 ‘정도경영’이다. 그는 “정당한 룰에 따라 이뤄지는 공격경영이야말로 현재의 기업환경에서 성장의 필수조건”임을 늘 강조한다.김선동(59) S-Oil 회장이 정유업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63년 SK(주)의 전신인 대한석유공사에 입사하면서부터다. 74년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제의로 쌍용양회로 자리를 옮겼으며 91년 쌍용정유 사장에 올랐다. 후발업체인 S-Oil이 내수판매의 어려움을 대규모 수출을 통해 극복함으로써 S-Oil의 입지를 단단하게 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김회장은 “회사는 가장 상업적인 방법으로 이윤을 최대한 실현해야 하고 납세를 통해 국가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 기업의 최대의무”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해왔다. 그동안 후발업체로서의 단점을 공격적인 가격경쟁과 품질경쟁으로 극복해왔던 김 회장의 전략이 선발업체들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현대정유의 정몽혁(40) 사장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정사장은 정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고 정신영씨(전 동아일보 기자)의 유복자다. 정명예회장의 자택인 청운동에 20년간 살면서 정명예회장으로부터 밥상머리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 최초로 ‘오일뱅크’라는 주유소 브랜드를 도입했다. 재벌 2세답지 않게 겸손하고 점잖다는 평을 듣고 있다. 직원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해 신입사원 하계수련회에는 꼭 참석하고 평소에도 가끔씩 사원들을 불러 회사 인근 식당에서 허심탄회하게 어울린다. 정사장은 정명예회장의 ‘불가능은 없다’는 경영철학을 이어받고 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과연 그가 불도저 같은 정신으로 현대정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