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메이션 콘텐츠가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또 21세기 한국의 전략적 문화콘텐츠로 성장할 가능성은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아쉽지만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우선 전략적 문화콘텐츠로 내세울 만한 창작물 중심의 국산 애니메이션이 해외에 비해 아직은 적다는 점 때문이다. 또 그동안 애니메이션 하청 제작국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요즘은 이 명성마저도 동남아 중국에 넘겨줘야 할 입장이어서 글로벌 경쟁력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흔히 애니메이션 산업은 고비용 고수익 고위험 등 3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고수익은 산업적 연계효과로 인해 발생하는 부가가치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으로 극장 방송 비디오 등의 영상판매 뿐만 아니라 완구 문구 팬시 등 캐릭터 상품까지 만들어내 높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 한 마디로 꿩 먹고 알 먹는 것인데 알도 한 두 개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고수익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을 때나 적용될 수 있다.국산 애니메이션 콘텐츠의 경쟁력은 우선 외국산에 밀리고 있다. 업계는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시장규모를 약 3천억원 대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40% 가량은 외국에서 일부 공정을 주문받아 제작 납품한 하청사업(OEM) 규모이고, 40%는 수입산 애니메이션이 차지하고 있다. 결국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은 20% 정도밖에 안된다는 얘기다.이에 반해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해외 수출 비중은 99년 기준으로 국내 영상산업의 총수출 규모(8천7백39억7천만원)의 90% 이상(8천1백66억3천만원)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다.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이 창작보다는 임가공수출과 같은 해외하청사업 위주로 외형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하청사업 구조는 창작의 핵심역량인 기획과 연출역량을 등한시하게 돼 오히려 고부가가치의 본원적 기반인 창작 산업을 왜소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이런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문제점은 문화관광부의 2001년 문화산업별 분석자료를 봐도 잘 나타난다. 산업별 부가가치율에서 게임 60.3%, 출판 52.3%, 음반 48.3%, 방송 47.8%, 영화 46.7%인 반면 애니메이션은 가장 낮은 26.4%로서 제조업 평균(30%)보다도 낮다. 또한 2003년까지의 성장률에서도 게임 2백13%, 방송 1백47%, 영화 93%, 음반 75%인데 애니메이션은 그보다 낮은 50%로 전망되고 있다.하지만 이런 열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하청에서 창작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자체 창작물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는 98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육성지원과 업계 상위기업인 한신, 코코 등의 코스닥진출을 전후로 한 투자활력을 기반으로 창작·제작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올해 창작물 제작 1백여종에 달해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 의하면 올해 제작됐거나 기획 및 제작 중인 창작작품이 1백여종에 이르고 제작비만 2천억원 가량이 소요될 전망이다. 국산 TV애니메이션의 방영은 시청률 10%대의 ‘검정고무신’ ‘탱구와 울라숑’을 비롯해 ‘기파이터 태랑’ ‘아장닷컴’ ‘레카’ ‘탑블레이드’ 등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단 한편도 없었던 극장용도 이미 두 편이 개봉됐고 무한기술투자가 투자해 주목받고 있는 ‘마리 이야기’(감독 이성강)도 곧 개봉될 예정이다.특히 3D애니메이션의 급성장과 국제공동제작 및 해외진출은 매우 괄목할 만하다. 선진국에서도 역사가 짧은 3D애니메이션의 경우 국내 3D애니메이션 기술력이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에 이어 가격 대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포켓몬스터’조차 지방방송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 시장에서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큐빅스’(시네픽스 제작)가 미국의 어린이 전국 네트워크 방송인 키즈워너브러더스(타임워너 계열)에 방영될 수 있었던 것도 가격 대비 우수한 경쟁력 때문이다. 현재 기획 및 제작 중인 국내 3D애니메이션은 얼마 전 개봉된 ‘런딤’과 EBS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레카’, 그리고 프랑스와 공동제작 협약을 체결한 ‘아이언 딕’, HDTV 포맷의 3D애니메이션 기술로 벤처 인증 평가를 받은 이매진하이의 ‘트라이킹덤’ 등 3D 제작비율이 전체 애니메이션 제작의 30%를 넘어서고 있다.또한 ‘큐빅스’는 코스닥기업 대원씨앤에이와 ‘포켓몬스터’의 미국내 독점배급사인 포키즈 엔터테인먼트(4Kids Entertainment)가 공동제작한 작품으로 성공적인 국제공동제작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외 팽이완구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일 합작의 ‘탑 블레이드’ ‘런딤’ ‘기파이터 태랑’, 한·중 합작의 ‘아장닷컴’ 등도 국제공동제작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국내 애니메이션 콘텐츠는 내수시장이 작은 데다 방송과 극장이 국내 애니메이션 유통에 소극적이다. 또 해외 애니메이션 캐릭터와도 경쟁하고 있다. 더욱이 제작량에 비해 애니메이션 마케팅업체가 수적으로 적고 대부분의 업체가 영세한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서 타 영상분야에 비해 문화적 이질감이 낮은 애니메이션 콘텐츠로서는 국제공동제작과 해외시장진출이 국산 애니메이션 콘텐츠의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의무방영제 논란국내 방송사 절반 이상이 외면국산 TV 애니메이션 의무방영제를 시행한 지 2년이 넘었지만 방송사들이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어 본래 취지에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국산 TV 애니메이션 의무 방영제는 지난 98년 문화관광부의 방송법 시행령 고시로 시작된 것으로 애니메이션산업의 근간인 TV애니메이션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전체 애니메이션 방영시간을 기준으로 일정 비율 이상 국산 애니메이션을 의무적으로 방영해야 하는 이 제도에 따라 98년부터 비율이 단계별로 늘어 현재는 KBS, MBC의 경우 45%, SBS는 42%, 기타 방송사업자는 40% 이상 방영하도록 돼 있다.그러나 이런 비율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위원회가 올 7월을 기준으로 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KBS MBC SBS는 대체로 비율을 준수하고 있으나 나머지 방송사업자들은 거의 준수하고 있지 않아 전체 방송사의 46.2%만이 이 제도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비율을 준수하고 있는 공중파 3사의 경우도 내용적으로 살펴보면 전체 애니메이션 방영시간을 줄이고 있는 데다 재방률이 모두 60%가 넘고 MBC의 경우는 89%나 돼 국산 TV 애니메이션 의무방영제 본연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또 방송시간대도 문제다. MBC는 유아 아동시간대인 오후 5시15분대에 한해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고 있고 KBS도 11월부터 오후 6시 이전에 애니메이션 방영을 끝내도록 편성, 애니메이션 시청률을 올리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결국 방송사들의 소극적이고 편협한 애니메이션 편성 운영으로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진흥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는 것이다.시간대의 하향조정으로 캐릭터 사용업자들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사용을 꺼리게 됐고 제작사들은 깊은 상실감에 빠져들고 있다.업계 전문가들은 국산TV 애니메이션 의무 방영제가 살아나기 위해선 업계 방송사 정부 3자간의 협의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