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가 무너지고 절대강자도 사라졌다. 불과 1~2년 사이 건설업계에서 벌어진 일이다. ‘영원한 빅3’로 불리던 현대 대우 동아 3강 체제가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건설업계는 이미 새 판 짜기에 돌입한 상태다. 누가 무주공산에 깃발을 꽂을 것인가.업계 순위 엎치락 뒤치락‘건설업계의 전경련’으로 불리는 한국건설경제협의회(한건협) 회원 변천사를 보면 국내 건설업계 변화상을 읽을 수 있다. 지난 92년 시공능력평가 30위 업체를 회원사로 삼아 출범한 이 단체는 최근 몇 년 사이 큰 변화를 겪었다. 건영 기산 우성건설 유원건설 청구 한신공영 등 7개사가 부도나 퇴출로 회원 자격을 잃은 반면, 두산중공업 포스코개발 한화건설 등이 새 식구로 가입했다.건설업체의 ‘파워’를 가늠하는 도구로 시공능력평가(도급순위)를 빼 놓을 수 없다. 건설업체의 공사실적, 재무상태, 기술력, 대외신인도 등에 따라 매년 시공능력평가액을 정하고 이 순위가 곧 업계순위로 통용된다. 올해 시공능력평가액 1위는 지난 30여년간 변함없었던 것처럼 현대건설이 차지했다. 올해 평가액이 3조4천여억원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1조8천억원 이상 떨어졌음에도 그간의 실적과 기술력이 높이 평가돼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대신 현대건설을 제외한 업체들은 심한 부침을 겪고 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부터 삼성에 밀려 3위로 떨어졌고 대림산업은 지난해 4위까지 올랐다가 올해 6위로 떨어졌다. 반면 LG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은 지속적으로 순위가 올라가는 모습이다.특히 1위 현대와 2위 삼성의 시공능력평가액 차이가 지난해에는 1조9천억원 이상 벌어졌었지만 올해는 2천4백억원 차이로 좁혀졌다. 이는 90년 이후 최저수준의 격차다. 워낙 존재 가치가 큰 현대건설이기에 올해 도급순위 역시 1위를 고수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순위가 뒤바뀔지 모를 일이라는 이야기다.이렇듯 자타가 공인하는 리더가 없는 상황이 요즘 국내 건설업계의 본모습이다. 한건협 윤기평 정책본부장은 “현재 건설업계에는 뚜렷한 강자가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본격적인 춘추전국시대가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업계에서는 건설업체를 평가하는 잣대로 △재무구조 △브랜드 가치 △기술력 등 세 가지를 최우선으로 꼽는다. 또 공공·민간 수주와 해외건설까지 아우르는 수주 포트폴리오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삼성물산 LG건설 대림산업이 ‘신 강자 그룹’으로 부상한다. 모두 95년 이후 주택사업을 강화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여왔고 현금 유동성도 비교적 탄탄하게 확보한 기업들이다. 현대산업개발과 롯데건설도 활발한 주택사업을 기반으로 선두그룹을 넘보고 있지만 발주처 및 공종별 수주 안배 면에서 ‘신 빅3’보다 점수가 낮다는 평이다.이들 대형 건설사들은 하나같이 ‘수익 기반 경영’을 모토로 삼고 있다. 돈되는 사업만 하겠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은 건설부문과 주택부문으로 사업영역을 분리해 이미 전문화 경영을 하고 있는 케이스다. 건설부문은 해외건설과 토목, 플랜트 분야를 전문화 영역으로 잡고 있고 주택부문은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주택부문은 올해 1만3천가구를 공급하면서 대부분 완전분양을 달성했고 브랜드 지명도에서도 1위를 고수하고 있다.LG건설도 올해 자매사 의존형 사업구조에서 외부사업 중심으로 기본 골격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또 상대적으로 약했던 공공수주와 해외건설 분야를 적극적으로 개척할 계획이다. 특히 LG건설과 대림산업은 올 들어 주가가 1만5천원 대로 높아지면서 한동안 소외됐던 건설주의 명예를 되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굿모닝증권 이창근 애널리스트는 “건설사 손익구조가 좋아지고 투명해지면서 업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틈새시장 공략·업종전문화 ‘혼신’또 하나 건설업계가 공통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틈새시장 공략과 업종 전문화다. 분야별 인력을 골고루 갖춘 대형 건설사도 예외가 아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분야별 전문강자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이미 각 분야별로 고유 영역을 확보한 업체도 적지 않다. 두산중공업의 경우 해수 담수화 플랜트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라있으며 현대건설은 여전히 댐, 원자력발전소, 교량 건설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을 자랑한다. 롯데건설과 삼성물산 주택부문이 아파트에 사업을 집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국내 건설업계는 지난해 사상 초유의 위기 이후 신발 끈을 다시 조여 매고 레이스에 나섰다. 아직 출발 단계라 저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거듭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처럼 한 건설사가 절대적인 패권을 잡는 구도는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수익 중심의 내실경영, 전문영역 구축 등을 통해 어떤 기업이 먼저 깃발을 잡을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