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종현 회장 이후에 전문경영인이 그룹을 이끌게 됐어도 SK는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SK는 전문경영인과 오너십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지요. 전문경영인은 기업문화를 유지하고 영속할 수 있도록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고 있고 오너는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대폭 위임해 왔습니다.”손길승 SK텔레콤 회장(60, SK그룹 회장 겸임)은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조화’라는 독특한 경영기법의 주창자다. 손회장은 올해 이같은 경영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주력했다. 시스템이 안정돼야 본격적인 글로벌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손회장은 세계 각국에 SK소그룹을 만들어 이를 네트워크로 활용하는 글로벌 프로그램을 준비해왔다. 먼저 2010년까지 중국에 현지인 중심의 SK소그룹 건설을 통해 아시아의 리더로 자리잡고 2030년까지 세계 주요 지역에 같은 형태의 SK소그룹을 세운다는 게 손회장의 전략인 것이다. 세계 각국에 건립되는 SK소그룹은 SK의 경영기법과 기업문화를 공유하면서 ‘현지인에 의한, 현지인을 위한, 현지인의 기업’으로 운영되는 회사를 말한다.이같은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우선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조화가 필수적이라는 게 손회장의 생각이다. 이를 기반으로 (주)SK를 지주회사로 하고 다른 계열사들을 사업부 개념화시킨 새로운 SK그룹 모델을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형태의 SK소그룹을 세계 각국에 세운다는 전략인 것이다. 이를 통해 고 최종현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추진해온 SK의 경영철학 SKMS(SK경영관리체계)와 SUPEX(경영혁신운동)를 세계 각국에 전파할 계획이다.손회장은 지난 65년 서울대 상대 동기인 이순석 전 SK글로벌 부회장의 권유로 입사했다. 당시 그는 고 최회장과 면담 후 그의 경영철학에 홀딱 반했다고 한다. 손회장이 마치 전도사처럼 외치는 SKMS와 SUPEX가 바로 그것이다.입사하자마자 최회장의 경영철학 구체화 작업에 뛰어든 손회장은 거의 광신도에 가깝게 일했다. 손회장은 일을 통해 스트레스를 푼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철저하게 일로만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며칠밤을 새우는 것은 예사고 한때는 일주일 밤을 꼬박 새워가며 SK경영철학 틀을 만들었다고 한다. 고 최회장은 그를 아껴 20년 동안 핵심부서장인 경영기획실장을 맡겼다. 뿐만 아니라 여러 계열사 임원직을 겸임케 해 한때는 ‘감투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앨빈 토플러도 SK경영기법에 관심SK의 경영기법은 지난 10월 방한한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지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해졌다. 더욱이 손회장은 지난 11월 중국 상하이 CEO세미나에서 기존 수펙스를 업그레이드시킨 ‘수펙스 2000’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이는 현재의 모습만으로는 불확실한 미래 환경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자체 판단아래 미래 생존 기법으로 도입한 것이다.손회장은 올해 재무구조 개선에도 발빠르게 나섰다. 올초 세계 경제가 지난해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 고정투자를 줄이기로 하는 한편 유동성 문제시 어떤 부문도 떼내어 팔 것을 선언했던 것. 이는 개별회사나 자산을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 유연한 조직을 만들도록 지시했기에 가능했다.실제 SK는 올 상반기 중 SK텔레콤의 무선호출사업, SKC사옥, SK에버텍 공장, 골프장 회원권 등을 정리하거나 매각했다. 이에 따라 SK는 지난 9월 말 현재 8개 계열사의 매출액이 전년동기 대비 19% 증가한 31조7천여억원, 영업이익이 30% 증가한 2조6천여억원을 기록했다.올해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일까.손회장은 “다행히도 SK그룹에 있어서는 생명과학 사업 추진, 중국 사업 진출, 사업 구조조정, SK증권 및 생명 등 금융사업의 정착, IMT 2000 비동기 사업권 획득, 신세기 통신 합병 추진, 정부규제에 대한 대응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큰 문제없이 잘 진행돼 안정적인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게 됐다”면서도 “그 일련의 과정에 있었던 힘든 의사결정들은 이루 다 말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한데서 어느 정도 드러난다. 즉 정부의 기업관련 규제에 대한 논란 등 정책의 혼선으로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다.손회장은 21세기 생존의 관건으로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유연성(Flexibility)과 스피드를 꼽고 있다. 예컨대 과거 성공요인에 의지해 저절로 성장할 수 있는 여유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진부한 과거의 강점을 포기하고 항상 새로운 성공요인을 발굴하는 환경적응력이 필수라는 것이다. 특히 손회장은 ‘21C는 무형자산의 시대’라고 역설하고 있다. 요즘같은 창의성의 시대에는 브랜드·정보·지식·스피드와 같은 무형자산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SK의 각 계열사에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이 가지고 있는 한계, 발전방향 및 도입 가능 사업분야 등을 연구해 새로운 성장 전략을 수립하도록 했다. 이런 전략에 따라 계열사별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적용하고 장기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는 게 손회장의 내년 최대과제다.“내년엔 중국과 대만을 중심으로 한 화교경제권의 경쟁력이 강화돼 한국경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어 대비를 해야 합니다. 또 기업환경은 IMF이후 가장 불투명한 상태이며 정치적 불안은 기업활동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요인들을 감안해 볼 때 재무구조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신중한 투자로 위기관리를 강화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