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한국엡손 사무실은 앞에 앉은 직원의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칸막이가 낮다. 특히 사장실은 투명 유리로 안이 훤히 보인다. 한국엡손 관계자는 “예전엔 사장 자리가 밖에 나와 있었다”며 “직원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사장의 뜻”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다카하시 마사유키(59) 한국엡손 사장은 직원들과의 격이 없는 조직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다.직원들 사이엔 부드러운 사장이지만 경영일선에선 젊은이 못지 않게 저돌적이다. 그의 당찬 모습은 매출목표에서 잘 나타난다. 엡손이 국내 입성한 지 10년이 되는 2006년에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다카하시 사장은 “96년에 한국에 들어왔으니 10년 후인 2006년엔 1조원의 매출을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자신있게 말했다.다카하시 사장은 98년 한국지사에 부임하기 전 싱가포르 홍콩의 엡손 지사장을 지냈다.한국에 온 지는 3년이 넘어간다. 엡손의 해외지사장 임기가 보통 3년과 5년임을 비춰볼 때 5년 임기가 확실해 보인다. 그만큼 본사의 신임이 두텁다는 것을 의미한다.사실 다카하시 사장이 온 이후 엡손의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LG애드가 조사한 프린터 브랜드 인지도 조사를 보면 엡손은 98년 당시 11%에서 99년에 30.7%까지 올라갔다.한국엡손은 세이코엡슨이 1백% 투자한 현지법인으로 지난 96년 사무소 형태로 진출했다. 삼보컴퓨터가 엡손프린터를 공급하면서부터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브랜드도 삼보엡손이란 이름으로 팔렸다. 그러다가 삼보컴퓨터와의 관계가 정리되면서 98년 직접판매를 위한 법인을 세운 것이다.“한국지사로 발령받았을 때 한국과 한국시장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영업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그만큼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부담이 컸던 만큼 한국시장에서 맞닥뜨린 벽도 높았다. 바로 삼성이라는 거대 브랜드였다. 다카하시 사장이 부임한 98년은 때마침 한국이 IMF라는 위기를 넘기느라 정신이 없던 시절이었다. 사실 다카하시 사장이 부임 전에 걱정했던 문제는 일본 자본조달, 수입 관세 등이었는데 이런 문제는 IMF로 인해 쉽게 해결됐다. 하지만 정작 그를 가로막은 것은 한국시장에서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는 로컬 기업, 바로 삼성전자였다.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기술력을 앞세운 고객감동 전략을 택했다. 디지털카메라와 연계한 판매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저가전략이 그 예다. 그 결과 IMF가 기승을 부리던 부임 첫 해인 98년에 6백7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엔 1천8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는 2천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출에 대해 그는 “적어도 전세계 엡손 매출의 3% 대는 올라가야 본사나 나도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한국시장에선 한국시장에 맞게 영업하고 고객을 대한다는 다카하시 사장의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 그래서 그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고 행동하는 것이 몸에 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