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이 2001년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지만 전세계 국가가 혼연일체가 돼 오래 전부터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대상이 하나 있다. 담배다.남성 흡연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게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지만 담배 추방운동을 벌이는 단체와 사람들은 일본만큼 담배에 관대한 나라도 드물다고 개탄하고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행인이 부지기수다. 담배 꽁초를 길에 버리면 벌금을 물리는 한국과 달리 아무런 제재가 없는 탓인지 인도에는 꽁초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경우가 수두룩하다.일본의 남성 흡연율은 지난 86년 60%에 달해 선진국 중 최고라는 불명예를 뒤집어 쓰기도 했다. 금연운동 단체들의 계몽과 갑당 최저 2백50엔(약 2천5백원)을 줘야 하는 비싼 담배 값 덕분에 남성들과 담배의 거리는 점차 멀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99년 49%로 구미국가의 약 30%를 월등히 웃돈다.그러나 일본의 금연운동가들은 ‘흡연천국’ 일본의 진짜 고민이 남성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며 더 큰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주목하는 흡연파들은 여성과 청소년이다. 그리고 흡연을 조장하다시피 하는 정부 정책과 담배회사들의 광고 전략이야말로 국민 건강을 좀먹는 먹이 사슬이라고 이들은 개탄하고 있다.금연운동가들의 걱정을 뒷받침하듯 일본 여성들의 흡연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지난 86년 8.6%에 그쳤던 흡연율이 99년에는 10.3%로 점프했고, 특히 20대 여성들의 흡연율은 20%대로 급상승했다. 운동가들은 담배 피는 여성이 늘어나는 이유로 갈수록 힘들어지는 직장 및 가정 생활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꼽고 있다.“담배회사 무차별적 광고공세 흡연 조장”여성도 여성이지만 정작 가장 위험한 것은 청소년들의 흡연이라고 운동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담배산업(JT)이 발표하는 담배 판매개수와 성인남녀 숫자에 평균흡연량을 곱해 산출한 총흡연개수 사이에 큰 구멍이 나고 있다며 이야말로 미성년자들에게 팔려 나간 담배를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운동가들이 산출한 미성년자 담배 구입량은 지난 78년의 경우 약 60억개비였으나 96년에는 6백억개비 이상으로 10배가 더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연간 총판매량의 무려 2할에 육박하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 문화가 개방, 자율로 흐른 최근 수년 동안 담배 판매량에서 미성년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높아졌을 것으로 이들은 보고 있다.담배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미성년자들의 흡연 증가 배경과 관련, 운동가들은 첫 번째 이유로 담배회사들의 무차별적 광고 공세를 꼽고 있다. TV는 자율규제를 시작한 지난 98년 4월부터 담배 광고를 중단했지만 잡지와 옥외광고는 담배 선전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돗토리대학의 오자키 마이하츠 교수가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12종의 잡지를 조사한 결과 담배광고가 실린 지면은 87년부터 99년까지의 12년간 무려 3배로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담배광고는 지하철 안까지 깊숙이 침투, 차량 내부의 벽과 손잡이 주변도 흡연을 유혹하는 광고로 러시를 이루고 있다.운동가들은 자제력이 약한 미성년자들이 담배에 손쉽게 가까워지는 또 다른 이유로 유통채널의 문제점을 들고 있다. 일본의 담배 판매소는 지난 85년의 경우 약 4만개였던 것이 99년 30만여개로 급격히 증가했다. 주택가 구석구석까지 깔려 있는 편의점들의 담배 취급 확산과 함께 일본 정부의 규제완화 조치 역시 미성년자들의 흡연 조장에 한 몫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98년 허가기준을 개정, 담배판매업소의 신규개설 요건을 느슨하게 풀어 줬으며 이를 계기로 신설 담배판매업소는 종전의 연간 8천개 전후에서 단숨에 1만개 이상으로 급상승했다.금연운동가들은 미성년자의 흡연을 조장하는 보이지 않는 유혹으로 자동판매기의 존재를 꼽고 있다. 일본에서 판매되는 담배의 60%는 자동판매기를 통한 것이며 이를 철거해서 대면판매로 전환하지 않는 한 미성년자 흡연을 완전히 차단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담배판매업자들은 하지만 열도 전역에 깔린 자판기를 치우는 비용이 어마어마해 사실상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또 2008년까지는 연령과 본인 확인여부가 가능한 한 IC카드로 담배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자판기를 전국에 모두 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운동가들의 가장 큰 불만의 화살은 궁극적으로 일본 정부의 어정쩡한 금연시책을 향하고 있다. 겉으로는 금연을 외치면서도 조세수입과 담배 농가 보호, 그리고 담배 농가를 지지기반으로 갖고 있는 정치인들의 압력에 밀려 딱부러진 금연시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립공중위생원의 노조미 유미코 주임연구원은 “미성년자들을 담배의 손길에서 차단시키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세금인상 등으로 담배 값을 대폭 올리는 것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캐나다의 경우 같은 방법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이 입증됐음에도 불구, 일본 정부가 이를 알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무사안일이나 마찬가지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장기 불황 속에서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1.3% 줄일 정도로 살림살이가 벅차진 일본 정부는 세수확보에 초비상이 걸려 있다. 재정적자도 내년 말이면 6백93조엔에 달하게 돼 연간 국민총생산의 거의 1.4배에 이르게 된다. 국민들이 생산해 낸 모든 부가가치를 나라 빚 갚는데 퍼부어도 1년 반은 족히 걸리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담배판매에서 얻는 수입이 행여 줄어들까 근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담배값을 올려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은 찬성하지만 담배 소비가 줄어들 경우 세수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세율에 성큼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속타는 사정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담배로부터 인류 건강을 좀 더 효과적으로 지키기 위해 진행중인 담배조약 교섭과 관련된 입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일본 정부는 조약에 옥외 자판기의 철폐와 관련된 조문을 넣는데 대해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IC 카드에 의한 신분확인만으로도 미성년자 흡연을 막을 수 있다는 궁색한 변명을 대고 있다.금연운동가들 “세수 위해 흡연 방치” 비난농촌 지역표를 의식해 2만3천여 담배 농가를 감쌀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행보는 더욱 노골적이다. 지난 11월에 열린 전국 담배소매점 대회에는 대리인을 포함해 무려 2백38명의 국회의원이 참석, 담배업자들에게 눈 도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금연운동가들은 여성과 미성년자들의 담배접근이 수월하도록 규제를 외면하고 정치인과 관료, 기업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에만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한 흡연대국 오명은 씻겨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금연운동가 와타나베 후미오씨는 “건강을 생각하는 국민이 아무리 늘어나도 흡연자가 줄지 않는 것은 정부와 기업의 이기주의에 책임이 있다”며 “판매방법과 세제 개정 및 사회전반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