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와의 전쟁 1년여 만에 찾아낸 ‘환상의 맛’ 주효 … 된장, 버섯맛 햄버거도 선보일 계획
“깔끔한 패스트푸드점에 김치냄새를 풍기다니, 상상하기조차 싫네요.”롯데리아가 처음 김치버거를 개발할 때인 2000년 8월 패스트푸드 업계는 물론 회사 직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서양음식인 햄버거에 우리 고유의 음식인 김치를 넣는다는 게 어울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장에 케케묵은 김치냄새를 풍기게 하는 것이야 말로 ‘부조화의 극치’로 여겼던 것.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던 사람들은 1년만에 완전히 입을 다물고 말았다. 김치버거가 첫선을 보이던 2001년 8월 무려 1백80만개가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이는 라이스버거(월평균 35만개), 새우라이스버거(월평균 29만개)에 비하면 6~7배가 많은 양이다. 김치버거는 2001년 12월말 현재 6백25만개가 팔렸다. 월평균 1백25만개가 나간 셈이다. 5개월간 김치버거 하나로 벌어들인 돈만 1백60여억원에 이른다.김치버거의 폭발적인 판매는 농가에도 보탬이 됐다. 김치버거 1개당 쌀 소비량은 1백10g으로 1년간 1천5백만개가 팔린다고 치면 연간 1천6백50t에 이른다. 배추소비량도 연간 2천여통에 달한다.김치버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뭘까.회사 관계자들은 경쟁자의 강점을 역이용한 ‘역발상’ 전략이 먹혀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맥도널드나 버거킹 등 세계 유명 패스푸드회사의 햄버거 맛은 세계적으로 표준화돼 있다고 한다. 이는 ‘세계 표준의 맛’을 강력한 무기로 삼기 위한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롯데리아는 ‘88 서울 올림픽’을 전후해 다국적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국내 시장에 속속 진출하자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차별화전략에 들어가 ‘세계 표준화 맛’이 아닌 ‘우리 고유의 입맛’이라는 개념을 설정한 것. 이 전략의 첫 번째 작품은 불고기 버거(92년)였다. 통상 햄버거에 들어가는 쇠고기가 잡육으로 이뤄진 ‘다진고기’라는 점에 착안, 우리 입맛에 맞는 불고기를 사용한 것. 그 뒤 불갈비 버거(98년), 라이스 버거(99년)가 출시됐고 2001년 김치버거가 탄생한 것이다.김치를 응용한 햄버거 만들기 시도는 그동안 여러차례 있었다. 그러나 ‘햄버거와 김치의 부조화’라는 숙제를 풀지 못해 번번이 ‘개발보류’ 결정이 내려졌다. 2000년 8월 롯데리아 상품개발팀 8명은 그야말로 ‘배수의 진’을 치는 심정으로 김치버거 개발에 나섰다. 이들이 먹어치운 김치버거 시제품만 모두 4만개에 달했다고 한다.현재철 상품개발팀장은 “개발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며 “특히 김치의 독특한 냄새를 없애는 게 무척 힘들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처음엔 냄새가 적은 김치엑기스를 이용해 라이스 햄버거에 색깔을 입히는가 하면 김치소스를 잘 볶아 냄새가 강하지 않게 하는 방법도 동원됐다. 결국 생김치를 패티(버거 사이에 들어가는 고기) 속에 넣고 이를 버터와 빵가루로 입혀 냄새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차단하는 방법을 찾아냈다.조화로운 맛 찾아 2백여 김치, 갖가지 젓갈 섭렵어떤 김치를 집어넣을 것인지도 큰 고민거리였다. 배추김치 백김치 나박김치 열무김치 얼가리김치 등 2백여가지의 김치를 종류별로 먹어보고, 새우젓 명치젓 가나리젓 어리굴젓 등 김치와 젓갈의 새로운 조합을 하나씩 실험했다고 한다. 매일 개선한 샘플을 몇 개씩 먹어 하루종일 김치냄새를 풍기며 속이 안 좋아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팀원들도 많았다.마케팅도 절묘했다. ‘햄버거=간식’이라는 기존 생각을 ‘햄버거=한끼 식사’로 바꿔 신세대들을 집중 겨냥했다. 이와함께 ‘우리 입맛에 맞는 햄버거를 만드는 롯데리아’로 회사 이미지를 바꿔 나갔다.‘한국의 대표음식 김치’를 강조하기보다는 제품의 독창성과 기발함에 초점을 맞춘 광고전략도 구사했다. 광고모델인 탤런트 양미라가 김치항아리를 들고 뛰쳐나오는 장면에서 소비자들은 김치버거가 전통음식을 이용했으나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제품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했다. 이는 효과를 봐 김치가 없으면 한끼 식사도 불편해 하는 중장년층들이 대거 김치버거를 찾았다.롯데리아는 김치버거가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신세대는 물론 햄버거의 느끼함을 싫어하는 30∼40대 직장인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는 점에 크게 고무돼 있다. 따라서 앞으로 버섯, 된장, 고추장 등을 이용한 햄버거도 선을 보일 계획이다.Interview현재철 롯데리아 상품개발팀장“맛 찾기 위해 1년 동안 4만여개 시식”“술 마신 다음날 아침 햄버거를 먹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2000년 8월부터 김치버거 개발을 이끈 현재철(40) 상품개발팀장은 이듬해 7월말까지 하루 10개의 김치버거를 시식용으로 먹었다. 이렇게 해서 상품개발팀 8명이 1년 동안의 개발과정에서 먹은 시식용 김치버거는 4만여개에 달한다고 한다.“처음에는 일반김치를 햄버거 안에 싸서 먹었습니다. 어쨌든 팀원들이 매일같이 김치를 달고살다보니 냄새가 배 다른 부서 직원들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이처럼 온갖 김치와 젓갈을 섭렵하다보니 이제는 김치국물만 봐도 그 김치가 맛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무슨 젓갈을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한다.현팀장은 2001년 6월부터 2개월간 테스트판매를 하면서 성공을 예감했다고 한다. 주 타깃으로 삼았던 30~40대 직장인 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들까지도 좋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그는 “첫 달 판매량 1백만개를 넘어서는 순간 상품개발자로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그는 김치버거 출시 5개월이 지난 최근에도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번 김치버거를 먹는다. 보완점을 찾아내기 위한 것으로 그의 프로정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현팀장은 향후 신제품 개발도 우리음식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그는 “거대 다국적 기업과 맛서는 길은 오직 한국적인 맛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래도 다국적 기업이 한국적인 맛을 만드는 것은 왠지 어색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김치버거에 뒤를 이을 신제품은 뭘까. 현팀장은 “그건 비밀”이라며 “김치버거 처럼 우리 음식과 햄버거의 결합임에는 틀림없다”고 귀띔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