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맥주시장의 가장 큰 차이는 ‘다양성’이다.일본 맥주업계의 다양성은 회사와 브랜드 가짓수만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각양각색의 제품과 계절, 장소 변화에 맞춘 다채롭고도 시의 적절한 마케팅 전략을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이다.내용물은 거의 같으면서도 업체들은 겨울이면 계절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브랜드로 옷을 갈아입은 제품을 투입해 소비자들의 술맛을 당기게 한다. 예컨대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의 풍경화 한 컷을 표면에 입힌 캔 맥주를 앞세워 한겨울에도 주당들로 하여금 맥주 생각이 절로 나게 하는 식이다.유명 온천지대와 관광지에는 어김없이 그 지역에서만 판매하는 맥주가 여행자들의 눈길을 잡아끈다.고이즈미 총리 아들 광고모델 내세워일본 맥주업계는 올 겨울 판매전쟁의 최고 승부처를 발포주(發泡酒)로 정해 놓고 이곳에 영업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발포주는 맥아 함량이 25% 미만이지만 거품이나 색깔이 맥주와 거의 똑같아 육안으로는 구별이 안 간다. 맛도 맥주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다른 게 있다면 부과되는 세금 차이뿐이다. 일본 정부는 발포주 350㎖ 1캔당 36.6엔의 세금을 물리는 데 비해 맥아함량이 50% 이상인 일반 맥주에는 이보다 갑절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따라서 편의점 등 일선 판매점에서 팔리는 가격은 발포주가 1캔당 165엔 안팎으로 맥주에 비해 60엔 이상 저렴하다.맥주회사들이 발포주에 온 힘을 기울이는 까닭은 단 한 가지다.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주당들의 주머니가 갈수록 얇아지고, 이에 따라 맥주 판매가 뒷걸음질 치는 데 비해 발포주는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기 때문이다. 맥주회사를 올 한 해 동안 먹여 살린 최고의 효자상품이 발포주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지난 2001년 10월 한 달동안 발포주의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46.9%가 늘었으며 맥주, 발포주를 합친 시장에서 발포주의 시장점유율은 30%를 넘어섰다는 것이 맥주회사들의 고백이다.맥주업체 중 기린, 산토리, 삿포로 등 3사는 계절, 수량을 한정한 신브랜드 제품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기린의 경우 겨울철 한정상품인 ‘백기린’을 앞세워 그동안 타사에 밀린 열세를 만회하겠다며 총공세를 펴고 있다. 그러나 겨울 발포주 전쟁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업체는 뭐니뭐니 해도 산토리다. 1990년대 중반부터 발포주를 선보여 여러 업체 중 선구자로 꼽혀온 산토리는 마케팅 싸움에서 경쟁사들을 바짝 긴장시키는 카드를 한꺼번에 두 장이나 던졌다. 이 회사는 우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장남인 탤런트 고이즈미 고이치로를 광고 모델로 내세워 소비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고이치로가 광고 중인 제품은 산토리가 야심작으로 내놓은 ‘다이어트’. 고칼로리를 걱정해 맥주를 멀리 하는 소비자 들을 겨냥한 이 제품 광고에서 고이치로는 양손에 다이어트를 들고 소비자들에게 밝은 미소로 자신있게 제품을 권한다.산토리는 이 제품에 볶은 맥아를 원료로 사용하고 호프는 다른 제품의 1.3배를 넣는 한편, 알코올 도수를 3.5도(기존 제품은 4.5도 안팎)로 낮췄다. 이 회사의 와다 류오 맥주사업부 과장은 “저칼로리 맥주의 시장 비중은 현재 2% 전후에 불과하지만 10%까지는 충분히 클 수 있다”며 히트를 자신하고 있다.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회사는 삿포로다. 삿포로는 테스트 마케팅의 성격을 다분히 갖고 있는 신제품들을 한정 생산하면서 광고를 전혀 하지 않는 ‘노 매스’ 전략으로 밀어 붙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부터 겨울 한정제품을 3종이나 연속 시장에 내놓으면서 광고는 철저히 외면해 왔다. 하지만 판매량은 모두 목표치를 크게 웃돈 것으로 알려졌다.시장 전문가들은 각사가 다른 색깔의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지만 발포주의 고성장 템포는 2002년에도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며, 산토리와 삿포로의 실적이 특히 주목된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