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효성인상’을 수상, 효성그룹 최고의 베스트사원으로 인정받은 하승민 부장(40). 그는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는 7전8기의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직장인이다.실패의 연속, 개발중단 압력, 사업부 해체 위기를 겪으면서도 끝내 성공한 나일론필름 개발은 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나일론필름의 개발성공은 5년 동안 150억원의 적자를 내 계륵처럼 여겨졌던 필름사업부를 단번에 연간 20억원 이상의 흑자(매출액 130억원)를 내는 효자 부서로 거듭나게 했다. 게다가 전세계 7개국만이 생산할 정도의 고난도 기술을 요구하는 나일론필름은 인스턴트 식품 증가로 시장규모가 연간 5∼6% 이상 늘어나며 일반 필름시장을 대체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효성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국내 및 세계시장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차세대 무기를 확보한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13일 ‘올해의 효성인’ 시상식에서 조석래 회장이 직접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정말 장한 일을 했다”고 격려한 것도 회사입장에선 정말 업어주고 싶을 정도로 값진 개발이었기 때문이다.그가 7년이라는 기간 동안 거듭되는 좌절을 겪으면서도 끝내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목표를 설정하면 성공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였다.1995년 2월, 회사 부설연구소에서 필름사업을 연구하던 하부장이 나일론필름 신규사업팀을 맡을 때만 해도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다. 직원 2명과 함께 대전으로 내려간 그는 처음엔 막막함으로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고 한다. “대전에 내려가보니 허허벌판 위에 아무것도 없는데 참 막막한 심정이었어요. 필름공장도 우리 손으로 직접 설계했을 정도니까요.”또 정보가 부족해 무척 애를 태웠다. 기존 업체들의 기술보안이 워낙 철저해 기초정보조차 얻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공법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새 공법을 개발하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보다 어렵게 느껴졌다고 한다. 당연히 날마다 공장에는 실패물량이 쏟아졌다.여기서 그의 진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끊어진 필름과 씨름하는 날이 계속되자 하부장은 아예 휴일을 반납했다. 1년 365일 중에 추석과 설날을 빼고 늘 현장을 지키는 열성을 보였다. 흔히 그렇게 휴일도 없이 일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법하다.“예전부터 목표를 세우면 꼭 이뤄야 했어요. 그래야 마음이 편하거든요. 게다가 당시 제가 책임을 맡고 있다는 사명감 때문에 한시라도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어요.”하부장이 이끄는 필름사업부는 두 번의 해체 위기를 넘겼다.설비 가동 뒤 1년 6개월 동안 A급 제품생산이 이뤄지지 않자 서서히 공장 해체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급기야 1997년 2월 필름사업의 존폐를 결정하기 위해 본사에서 감사단이 파견됐다.또 그해 12월 밀어닥친 IMF 한파는 국내 경기를 단숨에 떨어뜨렸고 적자를 면치 못했던 나일론필름 사업부는 국내 시장 진출을 눈앞에 두고 다시 해체 위기를 맞아야 했다.“미쳐야 성공한다” 집념 불태워0997년 12월 31일은 하부장이 ‘직장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날’로 기억한다. 그는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퇴근을 못하고 사무실을 지켜야 했다. 쉬지 않고 e메일과 전화를 통해 본사에 해체의 부당성을 피력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자동차 안에서 개발을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이제 정말 끝인가 싶고, 그동안 같이 고생했던 현장 식구들 얼굴이 떠오르는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습니다.”하부장의 열정적인 태도와 미래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판단으로 해체 위기는 넘겼지만 완전무결한 A급 필름의 생산까지 그가 걸어야 했던 길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개발뿐 아니라 ‘무단파 달성’이라는 리본 달기 캠페인을 벌이는가 하면 효성 나일론필름의 우수함을 고객에게 알리기 위해 직접 제품을 들고 판로개척에 나서기도 했다.“기존의 다른 제품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납품업체에 직접 제품을 들고 다니면서 품질 테스트를 통해 입증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가 고생해서 만든 제품이 판로가 없다면 큰일 아닙니까.”결국 지난해 그는 만년적자에 시달리던 필름 사업부를 흑자로 전환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그는 어려운 일일수록 ‘미쳐야 성공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남들과 똑같이 일해서는 결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다. 좌우명도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 책임을 완수한다’는 것이다.그의 부지런함은 자타가 공인한다. 개발과정에 처음부터 참가했던 박승진씨는 “하부장의 끈질긴 집념과 강한 추진력이 없었더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팀원들이 힘들어 할 때 늘 격려해 주고 굳은 의지를 심어줬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공장에서 5년간 함께 일했던 이휘순 공장장은 “한마디로 꼼꼼하고 열성적이라는 말 이외에 그를 표현할 길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그는 그동안 가정에 소홀했던 것에 가장 마음 아파하며 “회사에 충실하려다 보니 가정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집수리부터 이사까지 집안일은 모두 그의 아내 차지였다. 그는 “아내의 내조가 없었으면 지금과 같은 직장생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아내의 불만이 매우 컸을 듯하다. 그는 “아내가 걱정도 하고 야속해하기도 했지만 수상식이 끝나고 회사측이 마련해준 시내 특급호텔에 하룻밤 묵으면서 ‘당신이 자랑스럽다’는 말로 격려해 줬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가 하부장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