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남지역 아파트를 비롯해 수도권에 부동산 투기의 거품이 일고 있다. 그리고 거품을 뿜어대고 있는 수도꼭지는 다름 아닌 은행 등의 금융회사들의 경쟁적인 가계대출이다.지난 1998년 말 309조원이었던 은행·보험 등 금융회사들의 기업대출은 2001년 3월 말 현재 259조원에 이른다. 무려 50조원이 감소한 반면, 2001년 한 해 동안 추가로 공급된 가계대출은 5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가계대출은 1998년 말 166조원에서 2001년 9월 말 283조원으로, 무려 117조원이나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이 가계부문에만 집중적으로 공급된 셈이다.과거에 금융회사들의 대출 가운데 기업대출의 비중이 가계대출의 비중보다도 낮았던 일은 한 번도 없었다.지난 1960~1970년대에는 15% 수준에 지나지 않던 가계대출의 비중이 2001년 처음으로 기업대출을 제치고 50%를 넘어서게 됐다. 이처럼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금융회사들이 가계대출을 적극 확대하고자 하는 영업상의 유인이 있기 때문이다.금융회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계대출은 기업대출에 비해 수익성·안정성이 뛰어나다. 그뿐 아니라 BIS 자기자본비율 산정에도 유리해 가계대출의 비중을 늘리고 있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2000년 12월 중 우리나라 전체 은행의 가중평균 가계대출금리는 9.48%로 기업대출금리 8.11%보다 1.3%포인트 이상 높으며, 신용보증기금 출연부담(대출금 잔액의 0.3%)도 없어 수익성 측면에서 기업대출보다 우월하다는 지적도 있다.게다가 가계대출은 대량 부실채권을 일으키는 기업대출보다 부도 리스크가 적어 대출자산의 안정성에서도 유리하다. 한편 BIS 비율 산정시 위험가중치가 기업대출의 경우 100%인 데 비해 주택담보부대출은 50%로, BIS 비율 관리면에서 유리한 점도 가계대출 증가의 요인이 되고 있다.자금 순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투자 지향적’인 자금 순환이며, 또 하나는 ‘소비 지향적’인 자금 순환이다.전자는 생산과 투자 활동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해 신규 자금(new money)이 먼저 공급된 후, 투자나 생산 활동의 과정에서 그 자금이 근로소득이나 이자 및 배당 소득 등의 형태를 통해 소비활동의 주체인 가계로 흘러들어가는 자금 순환을 의미한다.이에 비해 후자의 경우에는 신규 자금이 가계부문에 먼저 공급된 후 소비활동 과정에서 그 자금이 매출액 증가 등의 형태를 통해 기업에 흘러들어가는 자금 순환을 말한다.소비지향적인 자금 순환일지라도 가계에 공급된 자금이 기업의 물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로 사용되고, 그 결과 기업들의 매출액 증가 형태로 기업에게 바로 흘러들어갈 경우에는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에서 볼 때 결과적으로는 투자지향적인 자금 순환과 별 차이가 없다.그러나 만일 가계로 공급된 신규 자금이 소비보다는 부동산 시장에서 투기적 수요로 나타날 때에는 자금이 가계에서 기업으로 흐르기보다는 오히려 부동산이라고 하는 자산시장 내부에서만 돌게 된다. 결과적으로 실물경제의 흐름과는 괴리된 채로 자금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최근 일부 아파트 등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투기현상은 강남지역의 인기 학원 밀집에서 출발한 문제라고 가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현실화된 것은 이같은 ‘자금 순환의 왜곡에서 발생한 금융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다시 말해 수요가 아무리 있어도(이를테면 강남지역 아파트를 사고 싶어도) 자금의 뒷받침이 없으면 유효수요(실제 아파트에 대한 투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지난 1997년 IMF 위기 이후 실질소득 수준이 별로 나아지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그리고 실업문제가 별로 해결되지도 못한 시점에서, 부동산 투기가 점점 확산되고 몇 억을 벌었느니 분양률이 100%라느니 분양권 웃돈만 몇천만 원이라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근본적 이유는 바로 실물경제의 흐름과는 괴리된 채로 자금 순환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의 현실과 그 현실을 그대로 두고만 있는 정책 당국의 태만이 빚어낸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기업대출은 앞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설비투자와 연결된다. 하지만 가계대출은 일시적으로 소비 진작의 효과는 있을망정 과잉 공급될 경우에는 부동산 투기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과거의 경험을 정책 당국자들은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