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오락실 게임기는 일본판이다. PC게임과는 달리 유독 오락실용(아케이드) 게임기의 대부분은 일본 제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남코나 코나미, 세가 등 일본의 유명 게임기 개발업체들이 한국 내 1조 5,000억원 규모의 오락실용 시장을 오래 전부터 장악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세계 게임대회를 열 정도로 게임대국을 강조한 우리나라로서는 아쉬운 현실이다.브라운관의 표적을 겨냥해 실물 형태의 총을 쏘는 사격 게임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벤처기업이 있다. 일제 사격 게임기를 대체할 무선 사격 게임기를 개발해 미국에까지 대량 수출하는 ‘게임박스’가 그 주인공. 기존 일제 사격 게임기들이 총을 거치대에 고정시켜 놓은 것과 달리, 이 회사가 만든 ‘드림건(DREAM-GUN)’은 실제로 총을 들고 싸우는 것처럼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무선(RF) 방식으로 총과 본체를 잇는 선을 떼어버린 것이 이 사격 게임기의 핵심 기술이다.4,500만달러 규모 수출 계약이런 무선 사격 게임기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획기적인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게임 시장에서 이런 사격 게임을 포함한 오락실용 게임의 비중은 매우 높다. 무엇보다 장비 자체가 PC게임이나 온라인게임보다 비싸기 때문이다.게임종합지원센터가 최근 내놓은 <2001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아케이드 게임이 전체 게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1.4%나 됐다. 이는 온라인 게임(22.9%)과 PC게임(13.9%)을 합한 규모보다 훨씬 크다.하지만 이 회사가 개발한 무선 사격 게임기는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먼저 타깃을 잡았다. 지난해 5월 미국 LA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E3쇼에 드림건과 이를 실행시키는 게임 소프트웨어(SW)를 선보인 것이 세계시장 공략에 불을 당긴 것이다.출품 직후 미국의 대형 전자오락실용 게임기 생산업체인 글로벌VR사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드림건을 대당 500달러에 9만대(4,500만달러)나 수출하게 됐다. 해마다 1,150만달러어치씩 출고하기로 하고 오는 3월 첫 선적이 이뤄진다. 이미 드림건은 미국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하는 게임영화 <메탈 오브 오너 designtimesp=21916>에도 등장했을 정도다.미국에서의 행진은 지금까지 계속된다. 워너브러더스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이 다시 LA로 와달라는 초정이 이어진 상태다. 이밖에 영국, 독일, 프랑스, 그리스 등에서도 거래를 타진해 오고 있다.이미 수출용으로 제작할 제품 디자인도 끝마쳤다. 디스플레이로 51인치 프로젝션 TV와 29·31인치 CRT TV를 채용한 2개 모델로 현지 상황에 맞게 출시할 계획이다. 가격도 7,000~1만 2,000달러로 맞춰놓았다. 게임기는 대금을 선불로 받아놓은 상태에서 발주하기 때문에 별다른 투자 비용 없이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더구나 무선 사격 게임기 분야에선 아직까지 경쟁사가 없어 당분간 성장이 확실시돼 은행들까지 앞다퉈 투자해 왔다.지난해 가을 영국에서 열린 게임기 박람회에 이 드림건을 선보이면서 유럽 시장에도 진출했다. 구석진 부스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급기야 BBC 취재진까지 찾아와 직접 시연해 보더니 감탄을 자아내며 방영했을 정도였다.‘스릴만점’ 실내 서바이벌 게임드림건은 적외선 송수신 장치가 들어 있는 무선 사격 게임기란 점말고도 고도의 기능을 갖췄다. 총 안의 키보드와 마우스 역할을 하는 장치가 정확하게 좌표를 읽고 표적을 조준할 수 있다. 실제로 사격을 하는 것처럼 방아쇠를 당기면 스피커에서 총성이 나오고 개머리판 안의 모터가 작동해 어깨에 충격을 줄 만큼 반동을 일으킨다. 그만큼 실감나는 사격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총도 게임 스토리에 따라 여러 종류다. 지금까지 120cm 사냥총을 비롯해 99cm M16 소총, 90cm짜리 총 등 3종을 만들어냈다.화면 구성 역시 3D 그래픽으로 처리해 사람과 동물의 움직임은 물론 배경까지 모두 실사로 착각할 정도다. 표적을 정확하게 잡기 위해 끌어당겨 확대할 수 있는 접안 시스템도 갖췄다. 스토리도 야생동물 사냥, 대테러 시가전 등 모두 6편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사냥 게임의 경우 사자, 곰, 사슴 등 동물별로 인공지능을 부여해 각각 다른 움직임을 연출했다. 가까운 곳은 정밀하게, 먼 곳은 희미하게 표현해 실제 육안으로 보는 것처럼 나타낸 것도 돋보이는 기술이다.기존 유선총의 사정거리가 1.5m 정도인 데 비해 드림건의 총은 15m 밖에서도 사격이 가능하다. 좌우 45도까지 시야를 넓힐 수 있어 화면 옆에서 쏴도 표적을 맞힐 수 있다. 사정 각도가 좌우 15%인 유선총을 쓸 때보다 플레이어의 행동 반경이 훨씬 넓어 그 만큼 역동적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또 기존 사격게임기의 스크린과 달리 전체 면을 인식하도록 한 것도 획기적이다.이 회사는 원래 PC게임을 취급하는 업체로 지난 94년 설립됐다. 자체 개발한 제품을 포함해 40여편의 PC게임 패키지를 출시하면서 국내 게임 시장에서 기반을 다져왔다. 그러다 99년부터 오락실용 게임기 개발을 추진한 지 2년 만에 무선 기술을 적용한 사격 게임기를 개발해낸 것이다.이미 해외에서 인정받은 만큼 올 3월부터 이 제품들을 본격적으로 생산할 예정이다. 해외는 물론 국내 시장도 석권한다는 목표다. 주로 중대형 오락실이나 코엑스몰과 테크노마트 등을 겨냥해 마케팅을 전개한다는 전략이다.해외 마케팅을 위해 지난해 미국에 현지 법인도 설립했다. 최근엔 실제 활처럼 생긴 모형 활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드림 보우(DREAM-BOW)’도 시제품을 내놓은 상태다. 앞으로 PC게임업체들을 비롯해 다양한 게임업체들과 공동으로 게임콘텐츠를 개발해 무선아케이드 게임에 적용할 계획이다.Interview김범 사장“가정용 아케이드 게임기도 조만간 시판”드림건을 개발한 김범 게임박스 사장(40)은 무선 아케이드 게임의 개척자로 주목받는다.주위의 기대가 큰 만큼 그 역시 이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10여년 전 시작했던 영화 유통 사업을 비롯해 PC게임들을 취급하면서 쌓았던 마케팅 노하우를 모두 이 드림건에 쏟아부을 결심을 하고 있다.“서양인들은 우리와는 좀 다르게 사냥 게임 같은 사격 게임을 즐기고 싶어하죠. 드림건이 미국 등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그는 아직 아케이드 게임 장비가 고가인 탓에 개인이 구입하기는 어렵지만, 머지 않아 집에서도 얼마든지 아케이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본다.“우선 오락실 등 업체를 대상으로 판매해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집에서도 TV로 슈팅게임을 즐기 수 있도록 총과 활만 판매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이를 위해 그는 10만원 정도의 저가형도 내놓을 계획이다. 이제까지 일본에 빼앗긴 게임 시장을 되찾고 세계 최고의 아케이드 슈팅게임 업체로 성장하는 게 그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