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금융계가 중국은행 미국 지점의 대출 비리사건으로 술렁이고 있다. 당시 미국 지점 책임자였던 왕쉐빙(王雪氷) 공상은행 행장은 구금 상태에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미국 금융당국으로부터 해외 금융기관으로서는 사상 최대 액수의 벌금을 부과 받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중국 금융관계자들은 “중국 금융이 국제화 시대 얼마나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한탄하고 있다.중국 경제는 지난 20여년 동안 추진된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각 산업 역시 고도화 과정을 밟아왔다. 그러나 금융은 다르다. 중국은행은 실물분야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금고 역할에 그쳤다. 다른 분야는 개방하면서도 금융시장만은 울타리를 높였다. 따라서 금융산업은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이 아직도 자신 없어 하는 분야가 바로 금융이다.중국 금융의 가장 큰 문제는 은행과 주식시장에 있다. 금융산업을 지탱해야 할 두 분야가 개방체제에 적응하기 어려울 만큼 낙후돼 있는 것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우선 은행분야를 보자. 중국 상업은행은 크게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국유 상업은행과 민영 주식제은행으로 분류된다. 국유 상업은행은 중국은행·건설은행·공상은행·농업은행 등 4개다. 이들 4개 은행은 금융기관 전체 예금·대출의 70% 정도를 차지할 만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금융 문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국유 상업은행의 가장 큰 문제는 불량채권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경제전문가들은 국유 상업은행의 불량채권이 전체 대출액의 20∼30%에 이른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50%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 ‘지령’을 업고 은행돈을 가져다 쓴 국유기업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부동산 개발 분야에도 어마어마한 돈이 묶여 있다. 빚을 내 빚을 갚는 악성 불량채권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탓에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중국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99년 신다(信達)·동팡(東方)·화룽(華融)·창청(長成) 등 4개 자산관리공사를 설립했다. 이들이 인수한 불량채권만 약 1조위안(1위안=약 150원)을 넘는다. 당장 인수해야 할 4개 국유 상업은행의 불량채권 또한 여태껏 1조 위안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자기자본비율 역시 문제다. 현재 4개 국유상업은행 중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기준(8%)을 충족하는 은행은 중국은행(8.5%)에 불과하다. 공상은행은 4.57%, 건설은행은 3.79% 등에 그치고 있다. 농업은행은 1.44%에 불과하다.은행 경영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국유 상업은행은 지난 90년대 이후 줄곧 영업이익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여왔다. 정부의 지원 폭이 줄어들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WTO 가입 이후 외국계 은행의 런민삐(人民幣) 영업 허용으로 시장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베이징(北京)의 은행전문가들은 중국 은행산업이 ‘저 수익 함정’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자오샹(招商)·지아퉁(交通)·민셩(民生) 등 전국 규모 주식제 은행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은행은 불량채권율, BIS율 등에서 국유 상업은행보다 다소 양호하지만 선진 은행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다.90여개 지방 주식제 은행은 더욱 심각하다. 각 지방정부가 설립한 이들 은행의 불량채권은 전체 채권액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 절반 이상이 적자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은행은 지급불능 상태에 맞닥뜨려 있을 정도다.그렇다고 중국의 은행들이 당장 금융위기에 휘말릴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리이닝 베이징대 교수는 “정부의 강력한 금융 관리,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맞먹는 예금(약 6조 위안) 등이 은행을 받쳐주고 있다”며 “중국 은행들이 서방 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쉽게 금융위기로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중국 주식시장 문제는 지난해 봄 저명한 경제학자인 우징롄(吳敬璉) 교수의 ‘도박장’ 발언으로 표출됐다. 그는 “중국 주식시장은 상장업체의 회계조작, 중개업체들의 불공정 거래, 불법 자금의 유입 등으로 얼룩졌다”며 “중국 증시는 거대한 도박장과 같다”고 말했다.중국 증권당국은 우교수의 발언 이후 즉각 조사에 착수, 인광샤(銀廣廈)·PT바이원(百文)·ST리밍(黎明) 등의 업체를 허위 회계 발표 혐의로 거래를 중지시켰다. 이들 업체 대부분은 회계사들과 짜고 주가를 끌어올리는 수법을 썼다. 이들 업체의 거래 중단으로 중국증시의 검은 세력이 사라졌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증시가 혼탁하다는 얘기다.중국이 낙후된 금융업을 어떻게 선진화시키느냐에 WTO 가입 이후 중국 경제의 활로가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금융 개혁 ‘실세’ 다이샹룽 인민은행장은행 경쟁력 강화 진두지휘다이샹룽(戴相龍·사진) 인민은행(중앙은행) 행장은 흔히 ‘중국 금융개혁의 설계사’로 불린다. 중국 금융개혁 방안이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온다. 그가 최근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중국의 은행 경쟁력 강화 방안에 시간의 상당부분을 할애했다.다이 행장이 제시한 해법은 4대 국유 상업은행의 증시상장. 그는 “가능한 은행부터 증시 상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장 가능성 높은 은행으로는 중국은행이 꼽히고 있다. 다이 행장은 “올해 4대 국유 상업은행이 국내외 투자가들을 상대로 4,000억위안의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은행의 자금난을 덜어주고, BIS 비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다.다이 행장은 또 주식제 은행의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외국투자자금 유치를 꼽았다. 지분율 25%를 넘지 않는 선에서 외국 금융기관의 중국은행 투자를 적극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홍콩의 HSBC 그룹은 이미 민셩(民生) 은행의 지분 15%를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이어 중국은행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국제기준에 맞는 회계제도를 도입하고 관리 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