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너무 시간을 허비한 것 같다. 왜 좀더 빨리 일을 처리하지 못했을까….”(시오카와 마사주로 재무상)“일본경제 자체가 인질로 잡혀 있다가 납치범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느낌이다.”(채권은행의 한 임원)일본의 간판 유통그룹 ‘다이에’의 부채 처리 방침이 최종 확정된 지난 1월 18일, 일본 정부와 채권은행 고위 관계자들은 긴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채권은행들과 다이에 경영진의 줄다리기를 주시해 왔던 도쿄 증시는 합의 결과를 대형 호재로 받아들이면서 닛케이평균주가를 하루 동안 165엔이나 밀어올렸다.‘대출금 중 3,000억엔은 주식으로 출자 전환하고 우선주 1,200억엔어치를 감자하기로 한다. 발행주식 중 보통주도 50%를 감자한다. 적자점포 50개를 폐쇄하고 종업원을 6,000명 감원한다.본업인 소매업 이외의 곁가지 사업 중 외식, 부동산, 건설은 속히 매각하거나 청산해 170개 계열사를 절반으로 줄인다.’다이에와 채권은행인 UFJ, 후지, 미쓰이스미토모 등이 합의한 구조조정 계획서는 한마디로 다이에의 마지막 항복문서였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진절머리 나도록 골치를 썩인 다이에에게 최후의 담금질을 요구하는 한편, 여의치 않을 경우 그대로 산소호흡기(자금지원)를 떼버리겠다는 비장한 각오의 표시이기도 했다.무적함대로 불리며 일본 유통업계를 한 손에 쥐고 흔들었던 다이에의 치욕은 방만한 차입경영과 무분별한 사업확장, 내부 부패의 말로를 생생히 보여주는 교과서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자신의 진짜 실력을 과대 평가한 채 슈퍼강국으로 행세하다 그저 그런 중진국의 하나로 밀려나고 있는 일본 경제의 추락 과정과 궤적을 같이 한다.나카우치 이사오 전 회장(79)이 1957년 오사카에서 ‘주부의 벗, 다이에’라는 간판 아래 창업의 씨앗을 뿌린 다이에의 성장과 몰락 과정은 현대 일본 경제사 그 자체였다. 약품과 식료품을 취급하는 소형 슈퍼에서 출발한 다이에가 고도성장기에 접어든 시기와 내리막길을 달린 때가 묘하게도 일본 경제의 성장 사이클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남의 돈을 무서워하지 않고 부동산 신화의 환상에 젖은 채 차입경영에 매달리다 나락으로 떨어진 과정 또한 버블 붕괴 후 일본 경제가 겪은 고통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다이에의 기세는 적어도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승승장구’였다. 생필품이 넉넉지 않고 공업화의 혜택이 일본 국민들 전체에 고루 미치지 못했던 50년대 말 다이에의 저가전략은 도깨비 방망이나 다름없었다. 쇠고기, 텔레비전 등 누구나 먹고 싶고, 갖고 싶어했던 고급 소비재를 파격적인 값에 판매한 다이에의 점포는 고객들로 문턱이 닳아빠졌다. 일본 국민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는 마쯔시타 전기가 지나친 염가판매를 막기 위해 60년대 초 제품 공급을 끊어버린 사건이 발생했지만, 마쯔시타마저 다이에의 기세를 꺾지는 못했다. 69년 일본 전역으로 점포망을 확대한 다이에는 창업 15년 만인 72년 일본 유통업계의 원조 미쓰코시 백화점을 제치고 매출랭킹 1위로 올라섰다. 80년 일본 소매업체 최초로 연간 매출 1조엔을 돌파한 데 이어 호텔, 프로야구, 외식,건설, 부동산, 의류업 등으로 거침없이 사업영역을 넓히며 왕성한 식욕을 과시했다.하지만 다이에의 몰락 조짐은 일본 경제의 버블이 꺼지고 난 90년 후, 정확히 말하면 고베 대지진이 일어난 95년부터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영업 본거지인 고베의 대참사는 다이에의 사세에 찬물을 끼얹었고, 일본 전역으로 확산된 불황 한파는 부실기업의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방만한 차입경영·사업확장 등이 화근90년대 말 이후 최근까지 다이에 그룹의 행보는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국면의 연속이었다. 부채를 줄이기 위해 편의점, 백화점 등 값나가는 계열사를 수없이 팔아치웠지만 대차대조표는 호전되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은행들의 불량채권 처리작업이 본격화되면 가장 먼저 간판을 내릴 회사 중 하나가 다이에라고 손꼽으며 너도나도 등을 돌렸다. 악성 루머가 끊이지 않고 주가가 바닥까지 추락하자 회생 가능성을 기대했던 거래선들도 앞다투어 다이에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거래를 끊었거나 결제 조건을 빡빡하게 바꾼 식품, 의류업체들의 리스트가 나돌기도 했다.주식투자자들은 채권은행과 일본 정부가 다이에 부도 처리에 따를 뒷감당이 무서워 주저하고 있을 뿐, 시기만 잡히면 언제든 산소호흡기를 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해왔다. 이같은 견해는 고이즈미 정권의 부실기업 처리 방침에도 뿌리를 두고 있었다. ‘성역없는 구조개혁’을 입버릇처럼 되풀이해온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자생력 없는 기업이 퇴출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2001년 12월 초까지만 해도 그는 “시대 변화에 적응 못하는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그러나 상황은 연초부터 급변했다. 일본 정부와 은행권은 교과서적인 불량채권 처리 방식이 금융 시장에 몰고올 충격을 다시 평가하기 시작했다.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불량채권을 털어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무더기 도산이 안겨줄 또 다른 광풍을 막지 못한다면 문제가 커진다며 이쪽으로도 눈을 돌린 것이다.일본 금융계는 불량채권 1조엔당 대략 2,000개의 기업 목숨이 걸려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따라서 32조 5,000억엔(2001년 3월말)에 이르는 불량채권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몇만 개의 기업이 문을 닫아야 하며, 실업태풍 또한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 정부와 금융계의 또 다른 고민이다. 채권은행들의 출자전환과 감자는 이같은 사고 전환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은행들의 요구에 항복문서를 제출하긴 했지만, 다이에의 선택은 일본 정부와 투자자들의 대환영을 받고 있다. 다이에 주가는 최종합의 내용이 보도된 1월 18일 165엔까지 치솟아 불과 1개월 전에 비해 100엔 이상이 뛰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총리대로 기자 회견에서 이례적으로 특정기업의 사례를 언급하며 다이에의 선택을 추켜세웠다. 그는 “(다이에 지원에) 밸런스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국가가 어느 선까지 개입할 것인지 생각 중”이라고 밝혀, 부실기업이라고 모두 그대로 쓰러지게 내버려두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다이에의 기사회생은 불량채권으로 조성된 증시불안과 신용하락에 제동을 걸기 위한 일본 정부와 금융계의 고육지책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따라서 메릴린치일본증권의 야마다 가츠노부 애널리스트는 부실 기업 처리에 새로운 이정표가 제시됐다고 진단하고 있다.그러나 다이에가 미니 그룹으로 회생의 가닥을 잡은 것과 달리 나카우치 전회장은 자신이 키웠던 회사들과의 완전한 관계 정리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이에는 나카우치 전회장에게 지급키로 한 20억엔의 퇴직위로금을 박탈키로 결의한 데 이어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프로야구단 ‘다이에 호크스’와 일부 계열사에서도 스스로 나가줄 것을 원하고 있다. 그는 다이에의 주식 8.7%를 갖고 있지만, 은행들은 경영부실의 책임으로 개인재산마저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유통황제에서 빈털터리로 전락할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