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제품1등주의·고객밀착경영으로 일류기업 육성 다부진 꿈

카를로스 곤 닛산자동차 사장, 제임스 맥너니 쓰리엠 회장 그리고 서두칠 이스텔시스템즈 사장. 존폐기로에 놓인 회사를 기적적으로 소생시킨 구조조정 전문 CEO들이다.곤 사장과 맥너니 회장은 대규모 감원, 생산라인 축소 등을 구조조정의 주무기로 삼아 회사를 기사회생시켰다. 이같은 조직슬림화를 통한 구조조정은 세계 선진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해 성공하면서 이내 구조조정의 교과서가 됐고 IMF 이후 위기를 맞은 국내 기업 및 금융기관들도 이를 생존수단으로 앞다퉈 동원하기까지 했다.그러나 서두칠 사장(63)의 구조조정 해법은 다르다. 간단히 말해 기존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생산량을 늘이고 비용을 줄여 기업을 회생시키는 것이다. 선뜻 이해가 안간다. 하지만 서사장은 한마디로 ‘이것이 바로 한국식 구조조정’이라고 자신있게 설명한다. 진짜 가능한 얘기일까.기자는 경기도 안양시 이스텔시스템즈(이하 이스텔, 옛 성미전자)에 새 보금자리를 만든 서사장을 1월29일 만났다. 그는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의 제의를 받아들여 1월17일 사장으로 부임했다. 지난해 7월15일 한국전기초자 사장을 사임한지 6개월만에 다시 일터로 돌아온 것이다.서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일꾼이다. 한국전기초자를 맡은 3년동안 휴무일 없이 일한 것은 물론 오전 6시부터 오후 12시까지 계속 근무해 ‘식스 트웰브’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일벌레로 소문났던 카를로스 곤 닛산자동차 사장의 ‘세븐 일레븐(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근무)’ 보다 매일 두 시간씩 일을 더한 셈이다. 때문에 서사장이 모처럼 보냈던 ‘6개월간의 휴가’ 생활이 무엇보다 궁금했다.“나이가 들면서 다리에 힘이 빠져 육체적으로 운동을 해야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등산을 자주 할 생각으로 예전에 (구미에) 살던 아파트를 샀거든요. 왜냐면 거기에서 20미터쯤 나가면 산이 있었거든. 그리고 아파트를 서재로 꾸며서 공부도 차분히 할 생각이었어요. 한국전기초자의 3년8개월 동안 너무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이 지녀왔던 사고나 사상 철학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서재를 꾸미자마자 워크샵이나 특강 등의 강의 요청이 몰려드는 거예요. 서울대 조동성 교수가 전화를 해서 강의를 부탁해서 일주일에 4번만 출강하기로 했죠. 나는 나름대로 6개월을 위해 완벽한 준비를 했는데 실제로는 그 6개월 동안 한국전기초자 때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나는 강의가 60분이든, 90분이든 3시간이든 강의 중간에 한번도 쉰 적이 없어요. 대개 2시간 이상 강의는 중간에 쉬어야 하는데, 나는 일하는 스타일처럼 늘 하던 대로 그 이야기에 파묻혀서 몰입하고 헌신적으로 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경영을 하면서 가졌던 긴박감, 초조, 불안은 없어져서 그런지 체중이 59㎏에서 60.5㎏으로 늘더라고요.”서사장이 경영일선 복귀하자 많은 언론이 그의 두 번째 ‘한국식 구조조정’의 성공여부에 관심을 모았다. 일단 그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좋았다. 그가 사장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월9일 3940원이던 주가가 이틀동안 상한가를 기록, 32% 증가한 5200원까지 올랐다.문제는 이번에도 서사장의 구조조정 해법이 먹혀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선 이스텔의 사정을 들여다 보자. 참고로 이스텔은 광통신, 무선통신, 네트워크 장비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다.“통신서비스 제공업체들이 투자를 줄였기에 장비공급도 줄고 상황이 어려워 진 것은 분명해요. 이와함께 가속도를 붙여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 회사 부진의 이유입니다. 경쟁 상품을 먼저 내놓거나 진취적인 기술 개발을 못 한 것이 잘못이지요. 때문에 회사매출은 2000년 3,500억원에서 2001년 2,000억으로으로 무려 43%나 감소했어요. 경상이익은 2000년에 200억원, 영업이익은 400억원이었는데 지난해엔 적자가 났어요.”서사장은 이런 회사를 일단 올해 100억원 이상 흑자를 내게 만들고 2004년엔 2000억원의 부채를 모두 갚아 ‘클린 컴퍼니’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그의 구상은 이렇다. 먼저 회사의 모든 부실을 털어내 클린컴퍼니로 만드는 것이다.“연구개발비 100억원이 실패로 끝났다면 모두 털어내야 해요. 따라서 성공하지 못한 연구개발비는 지난해 말로 제로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리고 재고 중에서 올해와 내년에 팔릴지 모른다고 남겨놓은 것도 이참에 정리할 계획입니다. 지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시기인 만큼 정리할 건 정리하고 우리를 그대로 드러내자는 겁니다. 이렇게 해 영업외 비용을 많이 줄이고 분명한 회계, 열린 경영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해요.”서사장은 부실을 대규모로 털어내더라도 시장의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그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이를 떠받쳐줄 것이란 얘기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경우 주택은행장 취임 초창기시절 대규모 부실을 털어냈음에도 오히려 시장이 그의 투명경영 의지를 인정해 큰 충격파가 없었던 것을 보면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닌 듯 싶다.회사를 클린컴퍼니로 만들고 난후 펼칠 서사장의 전략은 세가지.첫째는 비용우위전략(cost leadership strategy)이다. 비용절감에 따른 제품가격 인하로 시장 점유율을 늘려나간다는 것이다.“어차피 세계는 경쟁시대입니다. 위기때는 경쟁자를 이기지 못하면 우리가 넘어집니다. 따라서 좋은 제품에다 가격경쟁력을 갖춰 시장을 늘려가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 생산량이 늘어나게 되는 겁니다.”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영업외비용은 부실 및 재고를 털어내 줄인다 하더라도 기존 조직을 그대로 둔채 어떻게 비용을 줄인다는 것인가. 십시일반으로 직원들의 비용을 줄인다는 얘기인가.“내가 감원을 하지 않는 것은 단지 십시일반의 차원이 아니에요. 매출을 키워서 비용을 줄이는 것이지 인건비 자체를 낮추는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매출 100억원중에 20%를 인건비로 하고 있는데 회사 경영상 그 비율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10%에 맞춰 감원을 하는 것이 일반 회사들이 취하는 방식인데 저는 아니에요. 매출을 1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죠. 이를테면 큰 파일로 키우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한국적 구조조정이에요. 이렇게 하려면 직원들이 보다 많이 일을 해야합니다.즉 ‘일을 많이 해도 동료들과 같이 하자’는 것이요. 한국 사람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거든요. 값싸고, 품질 좋고, 서비스를 좋게 하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게 하는 것이죠. 후진국은 노동시간이 44시간이고 중진국은 42시간 이므로 선진국 대열에 들기 위해서 우리도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자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여기에 왔을 때 이미 인원이 많이 줄어있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열의도 줄어있었지요. 외국사람은 합리적이지만 한국 사람의 마음은 따뜻해요. 우리나라 사람의 끼에 불을 붙여야 해요. 한국인의 독자성과 지혜로움 그리고 부지런함을 한 방향으로 가게 하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벼들거든요. ”요약하면 이렇다. 기존조직을 유지하되 매출을 늘려 매출대비 비용을 줄이자는 얘기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직원들이 지금보다 일을 두배로 해야 하는데 이는 한국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70년대식 ‘하면된다’는 일바람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역시 ‘일꾼’다운 발상이다.서사장의 두 번째 전략은 상품최고전략(production leadership strategy)이다. 세계 1등 제품을 만들어 이를 집중 공략하겠다는 생각이다.세 번째로는 고객밀착영업전략(customer closing strategy). 서사장은 이를 병원의 ‘주치의제도’에 비유한다. 영업직원들이 일대일로 고객에게 밀착해서 영업하는 것이죠. 그래서 서사장은 제품별 영업본부를 통합해 재구성했다.서사장을 타고난 일꾼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부모와 김우중 전대우그룹 회장이다.“내가 일본에서 국민학교를 나오고 해방 후에 한국에 왔는데, 그 때 과수원에서 과수원 일을 거들며 성장했어요. 그때 부모의 근면함을 몸소 배웠던 겁니다.김우중 회장도 내겐 중요한 분입니다. 그의 기업경영관은 일에 심취하고 열중하는 것이에요. 즉, 도사가 되려면 심취하라는 것이죠. 즉, 김회장과 나의 공통점은 일을 즐기고 부지런하며 그것에 심취하는 것과 또 소박한 성격이에요..”서사장은 부인 최인숙 여사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장남 태흔(33)씨는 증권사에 다니고 있고 딸 영모(31)씨는 박근혜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막내 태영(26)씨는 ON-LINE 교육전문가(교수설계자)로 활동하고 있다. 서사장은 강남에 살면서 과외 한번 시키지 않았는데도 모두 잘 성장해줬다며 자녀들 자랑을 잊지않았다. twin92@kbizweek.com희노애락희첫 직장을 가졌을 때가 가장 기뻤어요. 내가 진주고를 졸업하고 돈이 없어서 대학진학을 못했는데, 그 때 선생님이 중등교육양성소에 가서 선생님을 하라고 했거든요. 일종의 전문학교 같은 것인데, 나는 돈이 없으니까 안 간다고 했죠. 그랬더니 가서 장학금을 받으면 되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하시길래 그 학교에 가서 돈 한번 안내고 장학금 받고 공부했어요. 그리고 읍내에 있는 사천중학교에서 1959년 선생을 했죠. 이게 바로 내 첫 직장이었는데 내 스스로 생활을 책임지고 영위하는 독자성을 처음으로 가진다는 점에서 정말 기뻤던 것 같아요.노글쎄 가장 화났던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그래요. 3년 8개월 동안 한국전기초자에서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올려놓았는데 화나지 않느냐고들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요. 내 소임을 다했거든요. 적자였던 회사를 오히려 이익이 나게 만들었으니까 나는 당당해요. 6시부터 12시까지 일한다고 별명도 붙었는데 실제로는 12시에 퇴근한 것도 아니죠. 더 늦을때가 많았어요. 내가 평상심의 생활자세로 행동하기 때문에 가장 화나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애저는 8남매 중에 막내아들이어서 더 각별히 어머니 사랑을 받고 자랐요. 아버지는 60세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더 어머님께 잘해드려야지 했는데, 어머니가 93년에 93세의 연세로 돌아가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호상이라고 했는데, 나는 앞으로 다시는 못 본다는 생각에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 때 내 나이도 50이 넘었는데 말이에요.락서울대에서 전 학년이 듣는 경제학 원론강의시간에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강의하기 전에는 많이 걱정했어요. 경영인이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 같은 경우에는 공감대가 쉽게 형성이 되요. 그런데 학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라서 이해가 될지도 걱정이었는데, 기립박수를 받았어요. 그 때 갖는 그 기쁨과 흐뭇함은 정말 좋지요. 많은 분들이 내 강의에 공감하고, 같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정말 좋아요. 이제 회사가 기반을 잡고 잘 되면 계속 강의를 하고 싶어요. 내가 어떤 생각과 전략과 비전을 갖고 경영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어려운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그래야 내가 도와 줄 수 있고, 또 나도 그들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얻는 것이 있을 테니까요. 나는 일하는 것이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