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숨기는 브랜드관리 전략도 주효 … 지난해 32개 전 브랜드 흑자달성
‘이랜드 32개 전 브랜드에서 흑자 달성’ ‘이랜드 성과급 최고 1,100%, 해외 포상 휴가’. 지난 1월초 주요 신문 경제면에 일제히 등장한 헤드라인이다.불과 1년 전, 극심한 노사분규와 박성수 회장의 체포영장 발부로 북새통이던 이랜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의아해졌다. ‘어떻게 1년 만에 이런 성과를 낼 수 있나’ ‘박성수 회장은 어떻게 됐나’가 궁금증의 요체.이랜드는 신촌의 작은 보세가게에서 출발, 중저가 캐주얼시장을 평정하며 연 매출 1조원을 넘기기도 했던 신화 같은 기업이다. 식품, 가구, 건설 등으로 사세를 확장, 한때 28개 계열사를 거느리기도 했지만 90년대 중반 들어 브랜드 노화, 매출 하락, 노사 갈등 등으로 위기를 맞는 듯했다. 급기야 2000년 6월부터 노조가 장기 파업에 돌입하면서 노조원 4명이 구속되고 박성수 회장에 대해선 부당노동행위 등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기에 이르렀다.그리고 2002년, 이랜드는 다시 경이로운 경영실적을 들고 등장했다. 이랜드 재기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지식경영 정착됐나?이랜드 그룹의 지난해 총 매출은 8,220억원, 영업이익은 1,12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각각 23%, 50%씩 증가한 수치다. 더구나 32개 전 브랜드에서 흑자를 달성한 것은 창립 2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이같은 실적 호전의 비결은 ‘지식경영 정착’에 모아진다. 업무 패턴부터 구성원 인식까지 지식경영 시스템으로 재정비해 이익 중심 회사로 바꿔놓은 것.이랜드는 지난 2000년 초부터 지식경영을 핵심 전략으로 설정, ‘기업은 지식회사로, 직원은 지식자본가로’라는 모토를 내걸었다.지식경영은 무형자산까지 포함해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지식자산표, 직원 개개인의 지식을 사고 파는 ‘지식몰’ 형태의 KMS(Knowledge Management System), 업무 관련 지식을 어느 수준까지 보유하고 있는지 직원 스스로 평가·기록하는 지식이력서 제도 등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이는 불필요한 비용과 직무를 줄이고 직원들의 업무 패턴을 성과 지향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실제 매출이 일어나는 매장에도 지식경영 원칙은 적용된다. 매출과 수익 중심의 관리에서 벗어나 판매에 도움이 될 만한 모든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소비자 선호도, 취향 분석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이를테면 신제품이 출시된 후 매장에선 소비자 반응을 점검해 본사에 즉시 보고한다. 본사는 이를 바탕으로 가격과 생산량을 조정하고 디자이너들은 다음 신상품 디자인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한다. 재고를 없애 순이익을 높이는 지름길을 찾은 것이다.독특한 지식경영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고유의 조직문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사훈과 다름없는 ‘이랜드 스피릿’의 제1항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믿음 중심’. 기독교 신앙으로 기업 문화가 통일돼 있고 대부분의 직원이 신앙적 동지인 까닭에 일사분란한 기업 체질 개선이 가능했다는 평이다.박성수 회장 입김은?이랜드 박성수 회장(49)에 대한 평가는 사뭇 엇갈린다. 작은 의류점포를 굴지의 패션기업으로 키워낸 탁월한 사업가임에 틀림없지만 불법 파견근로, 불법 대체근로 등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은 ‘착취형 경영인’이라는 오명도 존재한다.지난 2000년 10월 박회장은 일생일대의 곤욕을 치렀다. 노동부가 박회장에 대해 부당노동행위 등 혐의로 체포영장 발부를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사유는 단체교섭 기피, 노조간부에 대한 부당 징계 등 부당노동행위 혐의에 대해 몇 차례나 출석요구서를 보냈지만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당시 박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귀국하지 않고 있었다. 지난해 3월, 9개월간의 파업이 끝나고 체포영장 발부가 취하된 후에도 박회장의 거취는 파악되지 않았다. 세간에는 ‘이랜드 경영에서 손을 뗐을 것’이라는 풍문도 나돌았다.하지만 현재 박회장은 이랜드의 해외사업을 직접 돌보며 여전히 일선에서 뛰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에는 이랜드의 성탄절 기념행사인 송페스티벌에 참석, 1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이랜드의 한 관계자는 박회장의 근황에 대해 “지난해 6월쯤 귀국한 후 국내에 머물지 않고 중국, 미국 등을 왕래하며 해외 발판을 다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지식경영 도입과 진행, 인사·재무 등 주요 의사결정에 결정적 입김을 행사하고 있어 사실상 원격 경영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해석했다.회사측에서도 “신규 사업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해외 시장 조사, 경영 자문 등의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힌다.결국 최근의 지식경영 성과나 신규 브랜드 런칭 등도 박회장의 손길을 거친 ‘작품’이라는 얘기다.이랜드의 젊은 직원들에게 박회장은 여전한 ‘성공 모델’이다. 과거처럼 사업장 곳곳을 찾아 사원들을 독려하던 모습은 사라졌지만 ‘정신적 지주’로서 영향력은 변함없어 보인다. 이랜드 내외부에서는 박회장의 본격적인 경영 복귀설도 흘러나오고 있다.브랜드 관리전략 떴나?요즘 10∼20대 젊은층 사이에서 ‘후아유’ ‘푸마’ ‘티니위니’를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이들 브랜드가 이랜드 소유라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철저한 브랜드 매니지먼트 전략에 따라 런칭 때부터 이랜드라는 기업을 물밑에 숨겼기 때문.2000년 3월에 런칭한 후아유의 경우 200평 안팎의 대형 점포에 중저가 전략으로 의류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문화를 주제로 설정하고 의류 디자인은 물론 인테리어, 음악 등 매장의 모든 문화를 통일시켰다. 현재 서울에만 7개 대형 매장이 영업 중이며 명동, 종로 등에선 하루 4,000만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스포츠 브랜드 푸마는 브랜드 리스트럭처링에 성공해 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타깃을 10대와 여성층으로 변경하고 메인 컬러도 녹색에서 빨강색으로 바꿨다. 그러자 10만 9,000원짜리 ‘아반티’ 운동화가 지난 한 해 동안 11만 켤레, 푸마 로고티는 14만장이 팔려나갔다. 한 A급 상권 대리점의 경우 한 달 매출이 4억원에 이를 정도다. 덕분에 푸마는 전년대비 매출액 205%, 영업이익 561%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다.이랜드는 2000년 이후 런칭한 이들 브랜드들이 ‘중저가 캐주얼의 대명사 이랜드’ 이미지와 연결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때문에 기존 브랜드와 전혀 다른 컨셉을 부여하고 브랜드 자생력을 키우기에 나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랜드를 ‘숨긴’ 브랜드 전략 덕분에 이랜드 ‘재기’가 실현된 셈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