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사내선물환제도 도입해 관리...현대차는 헤지규모 조절 '효과 극대화'
“몇 개월 동안 영업부 직원들이 벌어들인 이익을 외환관리팀이 하룻밤에 까먹는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합니다.”이왕익 삼성물산 국제금융팀 차장은 회사내 환위험 관리팀의 중요성을 한 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종합상사의 경우 무역거래에서 생기는 마진이 5% 정도여서 외환 손실이 발생하면 한순간에 밑지는 장사를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상사에서는 환리스크 관리를 위해선물환계약(용어설명 참조)을 맺지 않으면 영업계약 자체가 성립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있다. 삼성물산은 지난 97년말 변동환율제가 실시되면서 환리스크 관리팀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이차장은 “사내 선물환제도를 도입해 환리스크를 관리한다”며 “다만 수입하는 제품이 국내 시장 지배력이 있느냐에 따라 헤지(Hedge, 위험회피) 비율을 조절한다”고 말했다. 사내 선물환제도란 영업부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종 통화를 자금부서로 통보해 이곳에서 환위험을 통합관리하는 것. 자금부서는 수많은 채권·채무 관계를 모아 상계처리(Netting)하거나 만기를 일치시키는 매칭(Matching)을 통해 환위험을 관리한다. 또 자금부서는 수입한 제품이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이라면 헤지 비율을 낮추고, 반대의 경우는 비율을 높이는 등 제품별 헤지비율을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삼성물산처럼 수입과 수출 계약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경우 사내 선물환제도를 통해 환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외화부채자산이 많은 한국전력은 이렇듯 단순하게 환위험을 관리하다가는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 98년 외화부채가 99억달러에 달했을 때, 환율이 10원만 올라도 부채는 1,000억원이 늘어난다. 눈 깜짝할 사이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셈이다.게다가 한전은 발전소 원료로 사용되는 원유와 석탄 등을 대부분 수입하기 때문에 환율변동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전은 송배전 사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을 자회사로 분리시켜 매각하고 있지만, 지분평가익 등을 통해 아직 자회사와 재무관계는 이어지고 있다. 원료수입에 따른 환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이유로 한전은 지난 99년부터 사장 직속 부서로 환위험 관리위원회를 구성했다. 김명환 한전 국제금융팀장은 “기획본부장(전무급)이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예산실 감사실 등 각 부서의 책임자들과 외부 전문가로 아주대 경영학 교수도 위원회에 소속돼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매달 환손실을 회사 이사회에 발표한다. 또 분기별로 한 번씩 위원회를 열어 환관리 실적, 관리 책임자, 위험 회피 기준 등을 밝힌다. 이를 통해 회사 전체가 환위험에 능동적으로 대비하는 것이다.실제 위원회의 활약으로 한전의 환위험 관리는 상당히 안정된 수준에 있다는 것이 금융감독원 등 외부의 평가다. 어떻게 환위험 관리를 했는지 살펴보자. 위원회의 실무를 담당하는 국제금융팀은 우선 지난 98년 100억달러에 육박했던 외화부채를 지난해말 63억달러로 줄였다. 달러부채를 갚아나가면서 원화 부채를 늘렸고, 일부 부채는 분리 매각하는 자회사에 넘겼다. 엔화 환율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자, 크로스 커런시 스왑(Cross Currency Swap) 거래를 통해 엔화부채를 원화 부채로 전환시키기도 했다.또 국제금융팀은 달러 차입에 편중된 부채를 유로화와 엔화 부채로 분산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다. 97년 12월 외화부채 중 92%가 달러부채였고, 엔화부채는 2%에 불과했다. 원·달러 환율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 이같은 달러 일변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엔화부채를 늘리고 달러부채를 줄였다. 그 결과 지난해말 엔화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로 늘었다. 단순한 통화 바스켓같지만 이를 통해 얻는 성과는 적지 않았다.“지난 2000년말 원·달러 환율이 1,259원이었고, 2001년 말에는 1,326원으로 5.3%가 절하됐습니다. 외화평가손실을 따져보니 3,000억원이었습니다. 반면 원·엔 환율은 10.9539에서 10.0940으로 8.3% 절상됐어요. 엔화부채에서 수익을 얻은 결과 3,000억원의 손실이 168억원으로 줄었습니다. 지난해 환율 때문에 한전의 주가가 빠지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어요.”김팀장은 지난해 5월 골드만삭스와 UBS워버그로부터 자문을 받아 한전의 환위험 관리를 과학적으로 체크하고 있다. 한전의 환위험 노출도를 6개월마다 검사하고 목표를 세워 이를 낮춰가는 것이다. VaR(Value at Risk)라는 지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한전이 환손실을 입을 수 있는 최대 손실액을 표시한다. 예컨대 지난해 6월 VaR는 3조 2,000억원이었다. 이는 한전이 20년에 한 번 입을 수 있는 최대 손실규모다. 이를 지난해 12월에는 2조 8,000억원으로, 그리고 올 12월까지 2조 5,000억원으로 줄여갈 계획이다. 환위험이 없는 원화차입을 늘리고 달러와 엔화 차입을 줄이는 방법을 통해서다.정유업체 또한 환율의 위험에 날마다 노출돼 있다. 원유는 전액 달러로 수입하며, 보통 3개월 단위로 부채를 갚아야 하는 유전스(Usance) 차입금을 지고 있어서다. 만약 환율이 올라가면 정유사들은 대거 달러를 매입해 부채를 갚아나간다. 이 때문에 정유사들이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것으로 정부 당국자에게 비쳐진다. 환율이 올라가면 재정경제부 환율담당 직원들이 정유사에 전화해 부채상환을 늦춰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연간 외화차입액이 20억달러에 이르는 SK주식회사 역시 환율의 변동에 민감하다. 이 업체의 환리스크 관리팀은 외화차입규모를 조절하는 것이 지상과제다. 지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환관리 체계를 구축한 SK는 재무부문장인 CFO 밑으로 재정팀 등이 관련돼 있다. SK 관계자는 “지난 2000년 40억달러에 달했던 차입금 규모를 2년 만에 20억달러로 줄였다”며 “자산과 부채의 차입시기를 조절하면서 환위험 관리에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연간 환위험에 노출되는 규모가 20억달러지만, 하루에도 2,000만∼1억달러의 거래를 하는 곳이 SK다. “환율이 요동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는 관계자의 말은 환리스크 관리팀의 고충을 대변한다.현대자동차는 연간 60억달러의 수입을 안정하게 관리하는 것이 고민이다. 60억달러는 연간 자동차를 팔아 벌어들인 수입 90억달러에서 외국으로부터 생산설비 등을 사들이는 데 사용되는 30억달러를 뺀 수치다. 20여명이 넘는 국제금융팀의 주요 업무는 60억달러의 헤지규모를 정하는 것. 전액 헤지하면 위험은 없겠지만, 그에 따른 비용이 적지 않다. 헤지 규모를 적절하게 조절해 비용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익을 남기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환율의 변동폭을 줄여, 비용을 고정화시키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적이다. 위험 관리란 비용의 고정화와 같은 의미다. 가균 국제금융팀 과장은 “연초에 최고 경영자에게 헤지 할 규모를 보고하고 분기별로 외화의 흐름과 이에 따른 환위험 평가손을 추정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통화선도거래 옵션 스왑 등을 통해 60억달러 중 30%를 헤지하고 있다.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환위험 관리는 주식투자로 비유하면 간접투자상품에 가입한 경우와 같다”며 “주식을 직접 투자하면 온통 주식시세표에 신경이 쓰여 본연의 일을 제쳐두는 것처럼 환위험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은 어부지리로 환차익을 바라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환위험 관리는 기업이 본연의 생산활동에 충실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며, 이를 담당하는 직원들에게도 환차익을 내는 것보다 환손실을 방어하는 데 노력하도록 회사 경영진이 격려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정연구원은 강조했다.용어설명선물환계약 : 거래 당사자와 미리 약정해 필요한 날짜에 결제가 이뤄지는 계약.상계(Netting) : 글로벌기업의 본사와 지사 또는 지사들간에 발생하는 채권과 채무관계를 일정시간이 경과한 뒤 차액만을 결제하는 기법.매칭(Matching) : 외화자금의 유입과 지급을 결제 통화별·만기별로 일치시켜 외화자금 흐름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환위험을 제거하는 기법.©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