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달러의 금태환을 정지시킨 71년 이후 외환시장에서는 환율이 급등락함에 따라 입을 수 있는 위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지난 80년대 초반 달러화가 강세를 띠기 시작했을 당시 코닥사의 경우를 보자. 코닥의 통화관리는 주로 회계 조작에 따라 이뤄지고 있었다. 예컨대 독일이나 영국의 고객이 코닥필름을 주문하면 코닥의 회계부 직원은 마르크화나 파운드화에 대한 달러 환율이 우세한 쪽을 장부에 기재했다. 보통 주문서가 도착해 서류절차를 거치고 제품이 수송돼 대금을 지불받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만약 이 기간 동안 달러가 계속 강세를 보일 경우 코닥이 실제로 받는 마르크화나 파운드화는 주문서가 도착한 때 기재된 달러화보다 가치가 더 떨어졌다. 코닥은 이같은 달러 강세를 예측하지 못해 당시 35억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코닥은 마르크화나 파운드화를 주문서 접수시점에 미리 팔아서 회계장부에 손실이 가지 않도록 하는 등 적극적으로 환리스크를 관리했다. 85년에 코닥은 통화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하는 기업 중 하나로 기록된다.미래의 예상치 못한 환율변동으로 인해 외화표시 자산 및 부채의 가치가 바뀌어 환차익이나 환차손을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환리스크라 한다. 기업이 국제거래를 하면서 외화로 수출입계약을 체결하거나 외화표시 자산이나 부채를 보유하는 한 환리스크는 피할 수 없다.고정환율제로 묶여 30년 가까이 조용하던 우리나라의 외환시장은 지난 97년 IMF 이후 큰 변화를 겪었다. 환율제도가 자유변동환율제로 이행되면서 외환위기 이전에 있었던 일일 변동폭 제한이 철폐됐고 외환자유화가 실시돼 규제가 대부분 사라지면서 외화유출입이 자유로워졌다. 그 결과 대외충격에 대한 환율의 완충기능이 제고된 반면 환율 변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각 경제주체들의 환리스크 노출이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환율 변동폭 계속 확대돼 … 리스크 대비 절실국내기업의 경우 환차손이 환차익보다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환차손 규모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인 96년 중 국내기업의 환차손 규모는 약 4,000억원이었지만, 99년에는 무려 6조원 규모로 확대됐으며 상장기업의 환손실 규모도 2000년 약 4조원에 달했다. 이같은 기업의 외환리스크 노출에 따른 손실누적은 해당기업의 영업이익은 물론 여신 등을 보유한 거래은행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어 국가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점을 중시해 2001년 4월부터 기업 외환리스크 관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올 1월부터는 그 대상기업을 확대 실시하는 등 기업들의 외환리스크 관리정착을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특히 최근 들어 원화환율의 변동폭이 확대되는 추세여서 더욱 환리스크에 대한 대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원화환율의 일일평균 전일대비 변동폭은 4.8원으로 2000년의 3.3원에 비해 1.5원 확대됐다. 다른 나라들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환율변동성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호주 달러화, 유로화, 일본 엔화 환율의 변동성은 원화 환율보다 훨씬 높았다.특히 일본 엔화는 2000년의 경우 전일 대비 하루 평균 0.47% 범위 내에서 움직였으나 지난해에는 0.49%로 커졌다. 우리나라와 사정이 비슷한 싱가포르 달러화도 2000년 0.17%에서 지난해에는 0.22%로 확대됐다. 결국 환율의 변동성은 경제발전 단계가 높을수록, 외환자유화 폭이 클수록 증대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중시해 선진국의 경우는 갈수록 확대되는 환율변동성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기업과 국민들이 효율적으로 환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환위험 노출도가 심한 중소기업을 위해 일찍부터 환율변동보험제를 실시하고 있다.국내기업의 환리스크 관리 실태를 들여다보면 대기업은 비교적 나은 편이지만 중소기업들은 거의 환위험 관리에 손을 놓고 있다고 할 정도로 무관심한 게 현실이다. 대외정책연구원이 지난 2000년 국내 350개 대기업과 2,400개 중소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환리스크관리 여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기업 중 32%, 중소기업 중 74.6%의 기업들이 환위험을 전혀 관리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다. 좀더 심각한 문제는 중소기업들이 외환관련 리스크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대외정책연구원 조사에서 대기업은 대부분 환위험이 기업경영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으나 중소 수출입업체의 25.6%만이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특히 대부분 중소기업이 외환거래의 비중이 작고 환위험 관리방법을 몰라 제대로 환리스크에 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실제로 국내기업 중 최고경영자의 인식에 따라 환리스크 관리를 잘 했느냐, 못했느냐에 따라 기업의 손익과 미래가 갈리는 현상을 종종 보게 된다. 환율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대표적 기업인 한국전력은 지난 98년 100억달러에 육박했던 외화부채를 지난해말 63억달러로 줄였다. 또 달러 차입에 편중된 부채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엔화부채를 늘리고 달러부채를 줄여나갔다. 그 결과 지난해말 엔화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로 늘었다. 단순한 통화바스켓 같지만 이를 통해 얻는 이문은 적지 않았다.SK주식회사는 외화차입 규모를 조절하는 것이 환리스크 관리의 최대 목표다. 지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환관리 체계를 구축한 SK는 재무부문장인 CFO 밑으로 재정팀 등이 관련돼 있다. SK 관계자는 “지난 2000년 40억달러에 이르렀던 차입금 규모를 2년 만에 20억달러로 줄였다”며 “자산과 부채의 차입시기를 조절하면서 환위험 관리에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도 통화선도거래 옵션 스왑 등을 통해 연간 60억달러의 수입 중 30%를 헤지하고 있다.반면 반도체 검사장비를 생산하는 B산업은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단순히 월말 원화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매각, 상품수출로 벌어들인 이익을 까먹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이 주먹구구식으로 환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외환위기 이후 국내 외환시장 여건에 많은 변화가 있음에 따라 환리스크는 경제 주체들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됐다. 과거와 같이 기업의 외형보다는 기업의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환리스크 관리는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좀더 능동적인 환리스크 관리를 위해 환리스크 관리수단의 다양화와 함께 최고경영자의 환리스크 관리에 대한 인식제고가 선행돼야 한다고 외환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INTERVIEW 이영우 (주)델톤 대표이사“최고경영자가 환리스크 직접 챙겨야”“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환거래 비중은 작지만 그렇다고 외환관리에 무관심하다가는 기업의 존폐 문제까지도 대두될 수 있습니다.”외환컨설팅업체인 (주)델톤의 이영우 대표(58)는 중소기업들이 환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중소기업체의 경우 외환거래가 많으면 일주일에 한두 번, 적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거래하다 보니 전담인원을 둘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그러나 외환리스크 관리가 절체절명의 과제란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그는 지난 2000년 연말 달러환율이 급등하면서 몇천억 원대의 환손실을 본 국내 정유사들의 예를 들었다. 당시 정유회사들은 달러 가치가 안정돼 가고 있다고 판단, 결제용 달러 매수를 미루다 순식간에 환율이 10% 가까이 급등, 큰 손실을 입었다.이대표는 상대적으로 대기업들은 환리스크 관리에 어느 정도 위기의식을 갖고 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가스공사의 경우 98년 4,000억원대의 환차손을 입은 후 최고경영자가 직접 환리스크 관리를 챙기고 있다”며 “가스공사는 대표적인 수입기업이지만 이같은 환관리 덕분에 지난해에는 오히려 200억원대의 환차익을 올렸다”고 말했다.이대표는 “외환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 IMF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지 않느냐”며 “환리스크관리에 드는 비용을 ‘버리는 돈’이라기보다는 ‘보험료’라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