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부자 돈쓰게 하기'에 촛점...현대, 신흥부자중심 멤버십제도로 유혹
“귀족 마케팅? 우리처럼 해라!”동양카드와 현대카드가 ‘귀족 마케팅’의 본가를 자부하며 한판 대결을 벌일 태세다. 동양카드는 세계적 명성을 갖춘 아메리칸 엑스프레스 카드를 배경으로 부자들의 입맛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내건 슬로건은 ‘나를 알아주는 카드’다.이에 맞서 현대카드는 지난해 귀족카드의 대명사인 다이너스 카드를 인수한 뒤 ‘부자라면 꼭 갖고 싶은 카드’를 목표로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VIP 회원만의 폐쇄적인 클럽을 운영하면서 은밀하게 귀족들의 입소문을 타겠다는 것이 서비스의 골자다.동양카드의 귀족 마케팅은 ‘돈 벌어주기’보다 ‘돈 쓰게 하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말하자면 각종 할인혜택 등으로 부자들의 지갑을 여는 것보다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특별 대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고안해 내기 위해 동양카드 마케팅팀은 서울 시내 고급백화점 등을 돌아다니며 고객들의 성향과 소비 패턴을 조사하고 있다.할인혜택은 도움 안돼또 기존 VIP 회원들이 자주 가는 음식점이나 골프장을 방문해 어떤 서비스에 만족하는지 체크하기도 한다. 임종수 동양카드 마케팅팀 차장은 “부자들은 몇 퍼센트 할인해 주는 서비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많은 돈을 쓰더라도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런 느낌을 받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예컨대 지난해말 동양카드는 귀족(골드회원)들을 대상으로 서울 시내의 고급 음식점을 소개한 가이드북을 제공했다. 일반인들이 가기엔 꽤 부담되는 가격에 고급스런 실내장식을 갖춘 레스토랑을 소개하면서 동양카드는 요리 전문가들의 해설까지 곁들여 신뢰도를 높였다. 마음놓고 손님을 초청하거나 가족 만찬 장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곳에 소개된 음식점은 골드회원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준다. 음식점 주인이 직접 손님을 맞으며, 예약석으로 안내를 해주거나 식사 도중 틈틈이 손님들의 표정을 살피며 불편한 점을 묻는다.김지나 마케팅팀 대리는 “물론 음식점 주인이 다른 손님들에게도 같은 대우를 해주겠지만, 골드회원들에겐 좀더 확실하게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끔 주인들에게 특별 서비스를 부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좋은 인상을 남겨두면 다시 이곳을 찾아올 테고, 그렇게 되면 지갑을 여는 횟수가 늘 것이란 기대다.동양카드가 확보하고 있는 골드회원은 2만 5,000명. 이들의 평균 나이는 47세이며, 직업은 의사와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다. 또 벤처기업의 젊은 CEO들과 외국계 회사와 대기업의 임원들도 골드회원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이들은 연간 2,000만∼3,000만원을 카드로 소비하고, 주로 골프, 여행, 쇼핑 등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엔 연간 10억원 이상을 카드 결제하는 ‘큰 손’들도 있지만, 현금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또 대부분 신분 노출을 꺼린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 때문에 동양카드는 이들에게 VIP 전용 전화번호를 부여, 1 대 1 서비스를 제공하며 조용하게 고객들을 관리한다.VIP 전용라인 제공도그러나 이들을 대상으로 프로모션을 할 때는 표가나게 한다. 지난해 한창 무더웠던 6월, 서울 잠실 메인 스타디움에서는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세계적인 테너가수 셋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을 보기 위해 음악 애호가들은 물론 명성을 듣고 찾아온 관객들이 스타디움을 꽉 채웠다.당시 공연을 더욱 실감나게 보기 위해 VIP 좌석을 구하려는 사람이 많았지만, VIP 좌석 중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 400석은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동양카드가 VIP 고객들을 위해 일찌감치 예약을 끝내놓았기 때문이다. 동양카드의 골드회원들은 직원들이 미리 준비한 시원한 물수건, 팸플릿, 음료수 등을 제공받으며 편안하게 테너들의 노래를 감상했다.이밖에도 동양카드는 두 달에 한 번씩 골프잡지와 <임프레션 designtimesp=22061>이란 고급 잡지를 VIP 회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또 서울 강남의 유명 병원 16곳과 제휴해 의료비 지원형식으로 할인 혜택을 골드회원들에게 서비스한다. 예술의 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등에서는 공연 할인을 받을 수 있고, 최고 10억원의 여행사고보험도 무료 가입된다.현대카드는 봄꽃이 만발할 3월말, 본격적인 VIP 마케팅을 펼쳐갈 계획이다. 현대 플래티넘 카드로 선보일 귀족카드의 슬로건은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카드’다. 연회비는 12만원. 현대의 VIP 마케팅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상품개발팀이다.이곳 직원들은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귀족들의 감성과 욕망을 조사하면서, 이를 마케팅에 응용하고 있다. 김상우 상품개발팀 팀장은 “기존 카드사와는 전혀 다른 VIP 마케팅을 선보일 예정”이라며 “2년내 회원 수를 5배 늘리겠다”고 자신했다. 현재 현대가 확보하고 있는 VIP 고객은 1만명. 이들은 연간 1,000만∼2,000만원을 카드로 소비한다. 주로 대기업 임원들과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자영업자들이 주류를 이룬다.현대카드 귀족 마케팅팀이 노리고 있는 고객 타깃은 부자층에 새롭게 편입되려는 신흥 부자들이다. 말하자면 부자들만의 특별한 문화를 만들어놓고, 이들의 구미를 당기는 것이다. 우선 현대카드는 VIP 회원들만 가입할 수 있는 클럽을 만들 예정이다. 폐쇄적인 멤버십 클럽을 운영하다 보면 이 클럽에 궁금증을 갖는 또 다른 부자들이 들어와 회원이 불어날 것으로 회사는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회사의 매출이 올라간다는 얘기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부자들은 이유없이 돈을 쓰고, 느낌으로 돈을 쓰기 때문에 이런 문화와 소속감을 갖는 멤버십 클럽을 운영하는 것이 VIP 마케팅의 핵심”이라고 밝혔다.이밖에 현대카드의 귀족 회원들은 전세계 28개국의 84곳에서 운영하는 회원 전용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 각 나라의 주요 공항과 도시에 회원 전용 라운지가 설치돼 있고, 이곳에서 회원들은 간단한 다과와 팩스 서비스, 위성방송, 항공편 안내 등을 제공받는다.현대카드의 회원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최고 5억원의 여행보험에 자동 가입되며, 해외여행을 할 때 비상사태에 대비 24시간 응급 서비스도 제공된다. 또 플레티늄 회원들은 언제나 회원 전용 고문 변호사의 법률상담을 받을 수 있다.저마다 세워놓은 마케팅 전략을 착실하게 진행하면서도 동양과 현대는 상대편의 전략과 실적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예전 동료나 친구, 선후배 등을 통해 상대 업체의 영업전략을 캐내려고 애쓰기도 한다. ‘귀족 카드의 대명사’라는 자리를 놓고, 동양과 현대의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