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시장 분석·중장기적 전망 갖고 주택정책 펴나갈때

‘수요·공급 양자를 적절히 조절하는 일관된 주택정책이 없다는 게 집값 상승의 근본 원인이다.’정부가 주택시장 안정과 활성화 차원에서 내놓은 일련의 정책들이 순기능보다는 부작용을 양산했다는 지적이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 강하게 일고 있다. 공급물량 확대를 통한 집값 안정이라는 대원칙을 고려치 않고 임기응변식 조치로 일관, 수요자 불만만 더 키웠다는 것.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전세난이나 전대미문의 아파트 값 폭등이 근시안적 주택정책에서 기인했다는 냉혹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공급 일변도 주택정책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내놓은 주택정책과 서울지역 아파트 값 상승 추이를 비교해 보면 시장 상황을 고려치 않은 채 각종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등 공급 일변도 정책을 구사했음을 알 수 있다.외환위기 이후 아파트 값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 98년 3월 서울지역 아파트 평당 평균 매매가는 624만원이었으나 6월에는 548만원으로 3개월 만에 12.1%나 하락했다. 이후에도 집값은 꾸준히 하락, 12월엔 541만원 선까지 떨어졌다.98년 3월부터 12월까지 정부는 분양가 자율화(5월), 소형주택의무비율·수도권 전입자 청약제한 폐지(6월) 등의 정책을 발표했으나 떨어지는 집값을 막지는 못했다. 국민주택기금 금리 인하 등 수요 진작 정책이 필요한 시점인데도 건설업체 살리기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99년부터 시작된 집값 상승기에는 정반대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상승지표가 제시되는 이 기간 동안에 정부는 오히려 시장 활성화 대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분양권 전매 제한 폐지(3월), 무주택 우선공급제 폐지(5월) 등의 부양책이 이때 나왔다.98년 분양가 자율화에 이어 99년 3월 분양권 전매 제한이 폐지되자 아파트 값은 뚜렷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울지역 평당 아파트 값은 99년 3월 554만원에서 6월 561만원, 9월 589만원, 12월 595만원으로 뛰었다. 3월 이후 집값이 상승 조짐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는데도 정부는 5월에 1순위 청약자격 완화, 무주택우선공급제 및 청액배수제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서민주거안정대책’를 발표했다.일관성 없는 일회용 정책 남발2000년 들어 집값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사후 약방문식 조치를 발표했다. 99년 9월 전세가 안정대책에 이어 2000년 1월에는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아파트 값은 계절적 비수기에만 다소 떨어졌을 뿐 보합세를 이어갔다.2000년 3월 평당 651만원이던 아파트 값은 6월 609만원, 9월 618만원, 12월 615만원으로 소폭 상승과 하락을 거듭했으나 집값 상승 불안심리와 전세난 같은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2001년으로 접어들자 이번엔 집값 상승을 잠재우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게 된다. 그러나 한 번 상승기류를 탄 집값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정부는 이 기간 동안 전세난 해소와 수요 진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심했다. 2001년 도시 영세민에 대한 저리대출 확대를 골자로 한 ‘전월세 대책’은 전세난 안정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비해 5월에 발표된 신축주택 양도소득세 및 취등록세 감면·면제 등의 세제지원과 최초주택 구입자에 대한 자금 지원 등은 수요 촉진이 목적이었다. 전세가 상승이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한 정부는 휘청거리는 건설업체를 돕기 위해 신축주택 분양률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이같은 양면적 정책에 힘입어 아파트 값은 2001년 3월 622만원에서 12월 693만원으로 11.3%나 올랐다.세무조사도 집값 못 잡아지난해 하반기부터 신규 분양시장 과열이 핫이슈가 됐지만 정부는 이에 상관없이 신축주택 양도세 면제기간 확대, 국민주택기금 대출금리 인하 등의 부양책을 내놓았다.급기야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올해 들어 주택시장은 과열이라는 표현조차 무색할 정도로 달아오르고 있다. 서울지역 동시분양 시장의 경우 청약 때마다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는 상태다. 조합주택에서 밤샘 줄서기가 만연하는 등 과거 부동산 가격 폭등기를 무색하게 하는 상황이 날마다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뒤늦게 지난 1월 분양권 거래 양도세 세무조사와 기준시가 수시 고시 등의 강도 높은 세무대책을 발표했다. 또 판교·장지·발산지구 등의 택지개발 사업을 앞당겨 진행하고, 그린벨트 지역에 국민임대주택을 건설하겠다는 등의 공급 확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그러나 아파트 값은 이런 안정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발표 직후 잠시 시장이 움츠러들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숨바꼭질이 반복되자 일부에서는 정부의 시장 안정대책을 ‘3일 천하’로 비유하곤 한다.실제 서울지역 아파트 값은 2001년 12월 693만원에서 2월 현재 730만원으로 2개월간 5.2% 상승했다.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고 건설업체를 살리기 위해 공급 일변도의 정책을 구사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아파트 공급 물량을 늘리기 위해 단기간에 많은 규제를 풀거나 완화했다는 것.아파트 공급은 2~3년 정도 시차를 두고 늘어난다. 즉 공급 물량 추이를 살펴가며 정책의 속도를 조절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주택 공급 물량은 정부 의도대로 늘지 않았고 반면 규제 완화, 세제지원, 저금리 등의 영향으로 수요만 늘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정확한 시장 분석, 중·장기적 전망, 일관성 있는 정책 의지만이 주택정책의 의의를 살려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