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대선 제외하곤 상관관계 불분명… 섣부른 개발 공약 투기 부추길 소지 다분

“올해는 지방 선거와 대선이 겹쳐 부동산 값이 오를 수밖에 없어요.”지난해말 학군 열풍과 재건축 기대감이 겹쳐 집값이 수직 상승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E아파트 인근의 한 중개업소에서 자신있게 내뱉은 말이다. 정부의 1·8 주택시장 안정대책 이후 거래가 식은 것으로 알려진 이곳은 상승세가 약간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평당 1,300만원대의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이 중개업소 관계자는 “연초 서울시가 재건축 안전진단을 강화한다고 발표한 후 투자성이 떨어졌다고들 하지만 주민들 생각은 다르다”고 말하고 “이미 가격이 많이 오른 데다 재력가나 유력인사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선거주자들이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지난 10년간 선거와 집값 관계 ‘불분명’흔히 선거 시즌이 되면 시중에 돈이 풀리고 경기 부양책이 쏟아지기 마련이라고들 한다. 뜻밖의 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오래 묵었던 민원도 술술 풀리는 때가 선거를 6개월∼1년 앞둔 시점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이라는 대형 이벤트도 장밋빛 전망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거론되고 있다.서울 강남권 재건축 대상 아파트들도 선거를 ‘호재’로 삼는 분위기다. 급등세가 가져온 파장 때문에 단속의 타깃이 되고는 있지만,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재건축 기대감을 저버리진 못할 것이란 ‘믿음’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이 지역 중개업자들은 “올해도 상승세는 이어진다”며 ‘BUY(매수추천)’를 외치고 있다.그러나 분석가들 생각은 다르다. 선거와 부동산 시장의 직접적 관계는 87년 대통령선거 때뿐이었다는 분석이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심각한 주택 부족 현상으로 부동산 값이 들썩이던 그때는 노태우 후보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개발 공약을 쏟아내자 바로 상승세로 반영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선거용 개발계획의 실효성에 대해선 국민들이 더 잘 안다”고 밝혔다.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선거와 집값의 상관관계를 살펴봐도 뚜렷한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와 제14대 대통령 선거가 동시에 치러진 92년의 경우엔 오히려 선거를 전후해 하락세가 나타났다. 91년 5월 평당 701만원까지 올랐던 서울 집값은 이후 급락세를 보여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92년 3월에는 평당 594만원까지 떨어졌다.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격전이 치러졌던 12월 대선을 전후해서는 6개월 이상 평당 555만원 선에 머물렀다. 다만 국회의원 선거 2개월을 앞두고 하락세가 주춤했고 대선을 5개월 정도 앞둔 시점에는 약한 반등이 있었을 뿐이다.지방자치제 본격 시행의 신호탄이었던 제1회 전국동시지방 선거와 제15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95∼96년에는 집값과의 연관성을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지방선거가 있던 95년 6월에는 1년 이상 지속되던 완만한 상승세가 이어지는 정도였고 96년 4월 국회의원 선거 때까지도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이 시기 집값은 2년여 기간 동안 평당 40만원 상승에 그칠 정도로 안정적인 곡선을 탔다.현 정부 출범의 기반이 된 제15대 대선 시기는 정권 말기에 부동산 가격이 뛰었다는 점에서 요즘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96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집값은 97년 8월 평당 664만원 선으로 정점을 이룬다. 불과 9개월 만에 평당 70만원 가까이 뛰어오른 것이다.하지만 96년 말부터 급등세를 보인 이 시기 부동산 가격은 김영삼 정권 말기 사회 전반에 만연했던 거품들과 맥을 같이한다. IMF 관리체제 이후 본격적인 경기회복기를 맞고 있는 현재 상황과는 질적으로 틀린 셈.97년의 집값 고공행진은 대선이 끝나고 IMF 외환위기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98년 1월부터 급락세를 겪기 시작했다. 제2회 지방선거가 실시된 98년 6월에는 평당 548만원 선까지 뚝 떨어졌다. 불과 6개월 만에 평당 116만원이 내린 것이다. 25평 아파트를 기준으로 따지면 몇 달 사이 평균 3,000만원 가까이 하락한 셈이다.사실 이 시기에 선거는 부동산시장에서 큰 이슈가 되지 못했다. 경기 전반에서 거품이 빠져 가계 소득이 급격히 줄고 실업률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집값 하락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시기 부동산 경기 진작책은 ‘선거용 카드’가 아니라 ‘필수 카드’였다.“선거주자 정책 의지 어느 때보다 중요”이처럼 지난 10년간 치러진 선거와 집값이 뚜렷한 상관관계를 갖지 못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올해 전개될 양상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경기회복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부동산시장이 활황세를 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87년 대선 때처럼 개발공약이 남발될 경우 과열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특히 농지 6억평을 공장, 레저, 위락시설 부지로 활용한다는 대통령 업무보고 내용이나 제2외곽순환도로 건설 계획, 아산신도시 개발 계획, 그린벨트 해제 등 최근 나온 발표들은 ‘선거용 카드’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평이다.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 등 유력인사가 그린벨트내 토지를 상당부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밀 아닌 비밀”이라고 말하고 “선거철을 맞아 서둘러 규제를 풀고 부양책을 내미는 것은 선거 이후 상황과 다수 서민을 고려치 않은 근시안적 조처”라고 비난했다.물론 정부는 최근의 정책들이 전세난과 집값 상승을 잠재우기 위한 공급 확대라는 설명을 곁들이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보너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보너스의 수혜자는 ‘투자자’가 아닌 ‘투기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더구나 올해는 지방자치단체장과 대통령을 한꺼번에 뽑아야 하는 시기다. 정부와 출마자가 확고한 부동산 정책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을 경우, 부동산시장은 과열 단계를 넘어 사상 유례없는 파행으로 치달을지 모른다는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