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 컴퓨터 시장에 주목할 만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컴퓨터 시장의 ‘황제’였던 렌샹(聯想) 컴퓨터가 영업부진에 시달린 것이다. 렌샹의 판매증가율은 전체 시장 평균성장률(2001년 7∼9월 기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7% 선에 머물렀다.그렇다면 나머지는 시장은 누가 차지했을까. 미국의 델컴퓨터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 회사는 같은 기간 무려 60% 안팎의 출하 증가량을 기록했다. IBM, 컴팩 등 외국 메이커 또한 시장성장률보다 높은 실적을 보였다.이 현상을 놓고 업계 전문가들은 ‘다국적 기업의 중국 시장 공략이 본격화됐다’고 말한다. 그동안 몸을 사려왔던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공격적인 시장전략을 마련하고 있다는 얘기다.지난해 이후 다국적 기업의 중국 진출 전략에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기존 투자 프로젝트의 조정이다. 각 기업은 증자 인수·합병 매각 등을 통해 기존 중국사업을 재조정하고 있다. 증자를 통해 기존 사업의 경영권을 인수하는가 하면 경쟁력 없는 사업은 과감히 철수한다.인텔은 상하이푸둥(浦東) 법인의 기술개발 및 지분확대를 위해 최근 2차례에 걸쳐 총 1억달러 규모의 증자를 단행했다. 인텔은 신규투자 분을 연구개발(R&D) 유통 사후서비스(AS) 등에 집중, 체계적인 통괄 사업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상하이벨 또한 연구개발(R&D) 능력 보강을 위해 최근 1억 1,000만달러를 추가 투자했다.기술직접 산업에 대한 투자도 늘고 있다. 대만기업이 투자한 상하이의 장장(張江) 반도체, 모토롤라, 노키아 등의 통신사업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노키아의 경우 100억위안(1위안=약 155원)을 투자, 베이징(北京)에 50ha 규모의 통신연구개발단지(星網工業區)를 설립했다. 지난해말 가동에 들어간 이 생산단지에는 15개 관련 부품 공급 업체가 입주하고 있다.금융 유통 등 ‘지식형 서비스’분야 투자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내수시장을 겨냥한 투자다. 미국계 보험회사인 AIG는 4개 독립 보험회사를 중국에 설립, 금융서비스 시장에 진입했다. HSBC(홍콩상하이은행)는 중국 상하이은행(上海銀行)의 지분 10% 매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까르푸, 월마트 등 대형 할인매장은 중국 주요 도시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을 단순 제조단지에서 벗어나 글로벌 소싱(구매) 단지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의 제조기술이 향상되면서 중국제품을 사들여가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이다.일본 소니는 광둥(廣東)성 엔티엔(鹽田) 보세구에 ‘선전(沈玔) 조달센터’를 설립, 이곳에서만 지난해 약 5억달러의 물건을 사들였다.이밖에 IBM과 모토롤라가 올해 각각 20억달러, 노키아가 10억달러 정도의 중국 물품을 구매키로 했다. 특히 월마트의 올해 중국제품 조달액은 100억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중국을 인재조달 시장으로 접근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미국의 GM이 최근 상하이에 자동차기술센터를 설립한 것을 비롯해 벨,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등도 중국 R&D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MS는 4,000만달러를 들여 상하이에 중국내 두 번째 연구소인 ‘MS아시아기술센터’를 만들었다. IBM도 푸둥과 선전에 각각 R&D센터를 새로 설립했다.루슨트는 베이징에 2억달러를 투자, 아시아태평양 통신기술 연구소를 설립했다. 아태지역 R&D센터의 본부인 셈이다. 이곳에는 현재 석·박사급 고급 인력 200여명이 아시아 실정에 맞는 통신기술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루슨트는 특히 칭다오(靑島)에 2억위안을 투자, 교환기소프트웨어 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이다. 삼성 역시 베이징에 통신 및 소프트웨어 연구소를 발족, 모두 100여명의 연구원을 양성하고 있다.합작파트너 선정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기존 국유기업 일색에서 최근에는 사영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사영기업이 국유기업에 비해 효율적인 경영체제를 갖고 있다는 판단에서다.최근 미국 컨설팅회사인 아더앤더슨은 저장(浙江)성 타이저우(台州)에서 ‘다국적기업-중국 사영기업 교류회’를 가졌다. 이 교류회에는 200여 미국 및 유럽 기업이 대거 참여, 사영기업에 대한 외국기업의 관심을 보여줬다. 또 일본 경제단체인 경단련 소속 10개 기업은 사영기업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저장성을 순회하며 사영기업과 교류를 갖기도 했다.이와 함께 투자패턴도 다양화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분인수 방식 진출이다. 중국 기업의 지분을 매입, 경영권을 사들여 중국사업을 펼치려는 움직임이다. 합작사를 신설하는 것보다 빨리 사업에 나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독일 ABB는 최근 중국 저장성 사영기업의 주식을 56% 획득하는 방식으로 중국에 진출하기도 했다. 프랑스 알카텔은 상하이벨의 지분 50%+1주를 사들여 경영권을 인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