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에 따르면 2000년말 기준 8.0%였던 은행권의 부실채권 비율이 2001년 말에는 3.4%로 크게 낮아졌다고 한다. 은행과 감독 당국이 부실채권을 조기에 정리하려고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부실채권을 빠른 시기에 정리하려는 정책적 드라이브로 인해 국민들의 부담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점은 간과되고 있는 실정이다.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부실채권의 규모가 심각한 수준이어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금융 시스템의 불안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는 경우, 가능한 ‘최단 시일 내에’ 은행의 건전성 회복을 위해 자본금을 확충해 주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우리 정부에서는 IMF 직후 대규모의 공적자금을 조성해 은행들의 자본금 증자에 직접 참여해서 BIS 자기자본비율을 10%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자본금을 확충해 주었다. 그 결과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미 부실화된 대출채권의 매각이나 처분은 은행의 재무 건전성 회복을 위한 ‘자본금 확충 조치’와는 달리 무리하게 서둘러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더욱이 정부가 대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을 확충해준 이후에는 더더욱 그러하다.은행권의 자기자본비율이 평균 10%를 웃돌 정도로 거액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이미 금융시스템이 안정을 회복한 상태이다. 따라서 은행들은 좀더 여유를 갖고 부실채권을 정리해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오히려 부실채권을 제3자에게 무리하게 매각하는 과정에서 채권회수율이 낮아지고 때로는 거액의 매각수수료를 부담하는 등 추가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결국에는 이 모든 것이 국민부담으로 귀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은행이나 금융 당국 어느 누구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부실채권을 정리하는 실무적인 방법에는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적립해 은행 장부상 대출채권의 가격, 즉 장부가와 시가가 접근하도록 하는 ‘간접상각’이 있다. 그리고 부실채권을 제3자에게 매각하고 은행의 장부상에서 부실채권을 완전히 털어내는 ‘직접상각’이 있다.간접상각의 방법으로 부실채권을 정리할 경우에는 외형상 은행 장부상에 부실채권이 그대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은행이 BIS 자기자본비율을 충분히 유지하고 있는 한 특별한 문제는 없다. 반면에 시간을 두고 부실채권을 회수할 수 있으므로 채권회수율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이에 비해 직접상각은 은행의 장부상에서 ‘조기에’ 부실채권을 털어냄으로써 은행의 회계장부를 깨끗하게 해주며 부실채권 비율을 낮춰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채권회수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도 자리잡고 있다.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도 대손상각 충당금을 적립하는 간접상각보다는 부실채권을 직접 또는 ABS(유동화채권) 발행등을 통해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매각하는 직접상각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 덕분에 은행권의 부실채권 비율이 외형상 낮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이로 인해 은행의 채권회수율이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총체적인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국민들의 눈으로 볼 때 일종의 모럴 해저드인 셈이다. 그동안 자산관리공사에서는 부실채권을 주로 외국 투자가들에게 매각하는 데 주력해 왔다.최근에는 은행들도 직접 나서서 유동화증권(ABS) 발행이나 직접매각 방법 등을 통해 국내외 투자가들에게 부실채권을 매각하고 있다. 은행들이 또는 금융감독 당국이 부실채권의 조기 정리라고 하는 정책목표를 달성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은행에 적지 않은 손실을 끼치고 있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부실채권을 매입하는 외국 투자가들의 예상 수익률은 평균 25% 정도라고 한다. 만일 그들이 부실채권을 10조원 정도 매입을 했고 그들의 예상대로 수익을 올릴 것이라고 단순 가정한다면, 상대적으로 국내 은행들은 2조 5,000억원이나 되는 거액의 ‘업무 대행 수수료’를 지불하고서 부실채권 정리 업무를 외국인들에게 위탁해준 꼴이다.부실채권에 의해서 때가 묻은 은행의 회계장부들을 깨끗이 해주는 일종의 세탁비(?)치고는 너무 비싸다. 더욱이 부실채권 매각 전문기관인 자산관리공사조차도 부실채권을 해외에 직접 매각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국의 회사에 매각 업무를 위탁하면서 수수료 명목으로 매각대금의 8%나 지불한 사례 등을 감안해볼 때 부실채권의 매각에 따르는 부대 비용과 낮은 채권 회수율로 인한 손실금액이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만일 외형상 은행권의 부실채권 비율을 낮추는 데 연연해 부실채권 매각에 따르는 비용이나 손실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부실채권의 매각을 추진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또 우리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안요인이 상당부분 해소됐다고 자신하고 있는 정책 당국에서 은행으로 하여금 수수료 부담과 은행수익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부실채권의 제3자 매각을 독려하려 한다면, 이는 민간부문의 비용과 수익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나친 행정개입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