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반토막' 쓴맛 딛고 개인투자자들 가입 급증

요즘 여의도는 간접투자시장이 제철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돼 있다. 여의도 금융 및 증권가에 돈이 크게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투신협회에 따르면 투신사 총수탁고는 2월말 기준 157조 8,565억원. 한 달 만에 6조 5,000억원이 새로 유입됐다. 돈이 가장 많이 떠났던 2000년 6월 말과 비교하면 24조원(18%) 늘어난 금액이다. 특히 주식형펀드에 한 달 동안 4,000억원이 새로 들어왔다.그러나 투신사 마케팅 관계자들은 “본격적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종합주가지수가 급히 상승하는 동안 기관 자금이 빠르게 이동한 데 비해, 개인 자금은 아직 증시(직접 주식투자를 비롯, 수익증권 통한 간접투자 포함)로 본격 유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투신사 관계자들은 과거 99년 ‘좋았던 시절’ 경험을 토대로 유추할 때, 수익률 100%를 넘는 펀드가 나타나면 이를 기점으로 한꺼번에 자금이 몰려들어와 폭발하듯 간접투자 붐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수익증권 투자자들은 망설이고 있다. 2000년 ‘전문가한테 맡겼는데 반토막난’ 쓴맛을 본 기억이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하지만 2001년말 설정된 주식성장형 가운데 최근 80% 대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펀드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미래에셋디스커버리 주식’은 3월 6일 현재 83%(6개월 누적)의 수익률을, ‘SK OK퍼스트스텝주식2’는 73.71%를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 ‘미래인디펜던스주식1’ ‘템플턴골드그로스주식1’ ‘템플턴그로스주식1’ 등이 70%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다.수시로 ‘먹고 빠지는’ 상품 선호이런 펀드들이 곧 ‘원금을 두 배로’ 늘려주게 되면 투자자들은 강력한 유혹을 떨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투신사들은 2000년 가입해 묶여 있던 자금들이 만기가 도래하는 시점과, 수익률 100%를 달성하는 펀드의 출현 시기가 거의 일치할 것으로 예상되자 자금 유입 가능성이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한국 펀드 평가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한달 동안 160여개의 펀드가 새로 생겼는데,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이 중 주식 관련 펀드가 100여개다.이런 기대감에 따라 투신운용사들은 발빠르게 새로운 상품을 기획해 내놓고, 은행과 증권사들은 이 상품들을 받아 ‘빅세일’에 나서는 중이다. 모처럼 한 번 온 ‘큰장’을 놓치지 않고, 간접투자시장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99년 전성기를 구가하다 2000년 나락으로 떨어졌던 투신운용사들의 모습을 목격한 투자자들은 여전히 불안한 눈초리를 보낸다. 하지만 지금 투신운용사들은 ‘그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장담한다.99년 간접투자시장 전성기와 지금은 무엇이 다를까.우선 요즘 인기를 얻는 주식성장형 펀드의 유형이 변하고 있다. 단기간에 엄청난 수익을 내기보다는 실적종목을 발굴해 편입하는 펀드가 좋은 반응을 얻는다. 최근 2년간 수익률 상위 펀드로 꾸준히 꼽혀왔으며, 수탁고도 일정하게 증가해 화제펀드가 됐던 프랭클린 템플턴 투신운용의 ‘템플턴 그로스 주식1호’ 가 대표적이다.주식에 80% 이상을 투자한다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의 펀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이런 인기에 힘입어 국민은행에서 판매한 ‘국민 프랭클린 더블히트신탁 1호’는 10일 만에 1,000억원어치나 팔려나가기도 했다).‘템플턴 그로스 1호’는 기존의 주식성장형 펀드와 운용 내용이 조금 달랐다. 저평가된 우량주를 발굴해 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전형적인 ‘가치투자’ 원칙을 고수해 좋은 수익을 냈던 것이다. 한동안 이 펀드의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알려진 롯데계열사 주식은 기존 대형 펀드들이 잘 편입하지 않던 종목이다.또 과거와 달리, 요즘 투신운용사들은 언제든 쉽게 돈을 찾아갈 수 있는 펀드, 적당한 수익을 냈다 싶으면 더 욕심부리지 않고 나올 수 있는 펀드를 내놓고 있다. 이런 요구에 부합하는 게 ‘전환형’ 펀드와 ‘환매수수료 선취 펀드’다.전환형 펀드는 일정 목표 수익을 달성하면 주식에서 돈을 빼 채권 등의 자산을 편임함으로써 수익을 고정시키는 상품이다. 이런 펀드가 인기를 얻는 것은 요즘 투자자들은 적당한 수준의 이익을 냈다고 생각하면 안전 자산으로 바꿔타서 이를 지키길 원하기 때문이다. 과거 무조건 ‘두배, 세배’ 등 리스크는 고려치 않고 황당한 수익을 원하던 투자자들이 합리적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장기증권저축 가입, 3월까지만 가능‘환매수수료 선취 펀드’는 아예 펀드 가입시 수수료를 일률적으로 떼는 대신(1%), 언제든 자유롭게 돈을 찾아갈 수 있게 한다. 예전에 한 번 펀드에 가입하면 수익률이 나빠져도 ‘1년’ ‘6개월’ 등의 최소 가입 기간에 묶여 발만 동동 구르며 돈을 찾아갈 수 없었던 것에 비해 환금성이 좋아졌다. 이같은 수수료 선취형 펀드인 ‘탐스 그랜드 슬램’을 판매 중인 한투증권 영업추진팀 박동렬 팀장은 “처음에는 수수료를 미리 받는 것에 대해 투자자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발매 한 달 만에 1,000억원을 돌파하는 등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말했다.하지만 전문가들은 뭐니뭐니해도 간접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관심을 둬야 할 것은 장기증권저축 상품이라고 말한다. 장기증권저축은 지난해 10월 정부가 증시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정책상품. 3월 말까지만 가입할 수 있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장기증권저축은 개인의 직접투자와 펀드 가입에 따른 간접투자 모두 가능하다. 직접투자는 개인이 장기증권저축 계좌를 트고 직접 매매하면서 세액 공제를 받는 것. 하지만 최근에는 직접투자보다는 장기증권저축 펀드 가입이 더 인기다.지난 2월 27일 현재 투신권의 장기증권저축신탁 수탁고는 1조 3,350억원으로 올해 들어서만 2,166억원이 늘어났다. 장기증권저축 펀드는 처음에 절세 혜택이 있다는 점 때문에 주목받았으나, 실제 판매를 시작한 이후로는 환매수수료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부상하고 있다.대개 펀드들이 3개월내 환매시 이익금의 70%를 환매수수료로 내야 하지만 장기증권저축펀드는 환매수수료없이 언제든지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대신 가입 후 1년 내에 환매할 경우에는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위에 언급된 ‘환매 수수료 선취 펀드’도 이같은 장기증권저축 펀드의 인기 비결이 환매수수료가 없기 때문이란 점을 눈치챈 투신사들이 개발하게 된 상품이다.2001년말 이후 상승장이 지속되면서 40% 이상의 높은 수익률을 내는 장기증권저축 펀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3월 6일 현재 한국투신운용의 ‘탐스비과세 장기증권A투신L-1’호 LG투신운용의 ‘LG인덱스장기증권1호’ 미래에셋운용의 ‘미래장기증권 1호’등이 50% 대의 고수익을 내고 있다.장기증권저축 펀드에는 공격형 투자자를 위한 성장형과 주가지수를 따라서 수익을 내는 인덱스형, 안정성향 투자자를 겨냥한 헤지형 등이 나와 있다.혼합형 인기도 여전한편 종합주가지수의 가파른 상승에도 불구하고, 채권형과 혼합형 펀드의 인기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일투자신탁증권 상품기획실 박용수 과장은 “강세장으로 자금이 몰린다고들 하지만, 개인자금은 여전히 채권형 또는 혼합형펀드를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채권형 펀드의 유형도 최근 매우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일투신 박과장은 “요즘은 경기 회복에 따라 금리상승이 예상(수익률 하락)되기 때문에 순수채권형보다는 스왑, FRN(변동금리부채권) 편입 등 복합운용전략을 구사해 금리상승에 따른 수익률 하락을 벌충하는 펀드들이 인기”라고 말했다.제일투신의 ‘알파스왑펀드’ 외환코메르쯔의 ‘아비트리지펀드’ 등이 이런 펀드다. 금리상승에 따른 수익률 하락 리스크는 스왑계약을 통해 헤지하고, 차익거래 등의 수익추구 거래를 통해 플러스 알파의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다. 알파스왑펀드의 경우 4개월 만에 1조 2,000억원의 자금이 들어왔다.현재 6개월 6% 대의 수익률을 내고 있다. 연리로 보면 12% 대의 수익률이 가능하다는 것. 이는 ‘은행금리(현 5%대)+알파’를 원하는 안정추구형 투자자들의 요구와 딱 맞아떨어진다.마지막으로 투자자라면 언제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간접투자에서도 역시 ‘몰빵은 금물’이라는 것이다.“주식시장이 좋으니까 인덱스형 펀드에 30%, ‘템플턴 그로스’(프랭클린 템플턴)’처럼 실적 좋은 종목을 발굴해 편입하는 가치투자형 펀드에 30%, 직접투자 30% 정도로 배분하는 것이 무난하다.”제일투신 마케팅팀의 조언이다.INTERVIEW 이해균 프랭클린 템플턴 투신운용 주식운용 팀장“기다리는 게 더 어려워”‘템플턴 그로스 주식1호’ 펀드는 연 3년째 승승장구다. 지난해는 수익률 1위로 베스트 펀드가 됐고, 올해는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이 펀드를 찾는 사람이 늘어 인기몰이하고 있다. 계속해 자금이 유입되고(그래프 참고), 프랭클린 템플턴 투신운용서 내놓는 펀드들이 순식간에 팔려나가는 것.“수익률 비결요? 간단합니다. 싼 주식을 사서, 적당한 값이 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시장 예측은 안합니다. 불가능하니까요.” 펀드 운용을 맡은 이해균 매니저가 밝히는 운용 비결이다. 브랜드 파워, 마케팅 능력, 가격경쟁력 등 그야말로 본질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기업을 골라, 5년 수익을 예측한 뒤 그 결과보다 주가가 낮으면 매입하는 것이 기본원칙. 이 매니저는 ‘고르기’보다 ‘기다리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지난 3년간 템플턴 그로스 주식의 꾸준한 수익률은 이런 기다림에 대한 보답이다. 그는 요즘 은행권에서 템플턴의 상품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 대해 “많이 찾아주는 것은 고맙지만, 과거 수익률만 보고 들어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보다는 템플턴의 운용 철학에 신뢰를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그로스 1호’는 99년 2월 설정됐다. 단일 펀드가 3년 이상 유지되는 것도 국내에선 보기 드문 사례다. 이매니저는 “마젤란 펀드처럼 우리 회사의 간판 펀드, 영원히 존재하는 펀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운용 경력은 고작 3년. 이전에는 버크셔캐피탈, HSBC 등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