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주주 KTB 철수 후 2대주주 다우기술이 승계 … ‘온라인 증권사’ 첫발

지난 99년 5월 31일, 서울 여의도의 KTB(한국종합기술금융) 빌딩 19층 400여평의 빈 사무실에 한 남자가 들어섰다. 아직 집기도 없는 텅 빈 방이었지만 그는 가슴이 뛰었다. 그가 바로 현 키움닷컴 김봉수 대표(당시 전무)였다. 그는 이곳에서 한국 최초의 온라인전문 증권사를 탄생시키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었던 것이다.KTB를 인수한 뒤 신규사업거리를 찾고 있던 권성문 사장(현 부회장, 미국 체류 중)에게 조강본 감사가 99년초 어느날 온라인 증권사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지점 하나없이 증권사 영업이 되겠어요?”평소 증권사를 하나 설립하고 싶어 퇴출된 장은증권을 인수하는 방안까지 검토해 봤던 권사장에게 조감사는 “가능하다”고 자신있게 답했다. “그럼 해봅시다.” 권사장의 결단이 떨어지자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회사 이름은 ‘e*KTB증권’으로 정했다. 이름이 정해지고 난 다음 SK증권에서 채권담당 임원으로 일하던 김봉수 상무를 영입해 왔다. 일단 대표이사 전무에 내정된 김상무가 역동적으로 인력구성 작업에 들어가는 한편 KTB 수뇌부는 주주 모집과 인가신청 작업에 돌입했다.2대주주로 참여한 다우기술의 김익래 회장은 원래 KTB와 인연이 깊었다. 그래서 KTB측의 출자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주주참여는 물론 다우측에서 전산기술을 전담해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한편 5월 31일 KTB 빌딩 19층 사무실에서 설립 준비작업을 홀로 시작한 김봉수 전무는 우수인력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김전무는 당시 쌍용증권(현 굿모닝) 출신 중 잘 나간다는 주 원, 윤수영, 안동원 등 이른바 ‘3대 스타’를 영입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펼쳤다. 지금은 금융공학팀을 맡고 있는 주 원 이사를 먼저 설득하기로 하고 김전무와 조감사가 홍콩으로 날아갔다. 두 사람은 당시 코리아-아시아 펀드의 운용을 맡고 있던 주이사를 집요하게 공략해 설득에 성공한다. 주이사가 e*KTB에 참여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머지 두 사람, 기획전략통 윤수영 이사(현 e-비즈니스이사)와 안동원 박사(현 리서치. 기업금융담당 이사)가 합류했다.이 시기에 설립준비 관계자들을 고무시킨 사건이 일어난다. 동원증권에서 온라인사업부 신설 준비 태스크포스팀을 이끌던 이 현 이사가 팀원들을 이끌고 키움으로 옮겨온 것이다. 당시 동원증권은 온라인사업부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놓고도 하진오 사장이 온라인 증권거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해 결과가 유동적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갑갑해하던 이이사가 ‘e*KTB증권’ 설립 소식을 듣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김전무나 회사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다.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다. 우수인력을 영입하고 주주들도 삼성물산, 한미은행 등 우수한 기업들로 확보해 뒀는데, 99년 10월 열린 정례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신청서 반려’ 결정이 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기준 미달’이 이유였지만 ‘사실은 권성문 사장을 반대한다’는 메시지가 e*KTB증권측에 전달됐다. KTB가 키움닷컴증권의 싹을 틔웠지만 오히려 KTB 때문에 세상의 빛도 못 보고 서류상 회사로 끝날 뻔했던 순간이었다.‘쌍용 3대 스타’ 영입 주효회사가 설립되기도 전에 공중분해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 벌어지자 KTB 권사장이 결단을 내렸다. “우리가 빠지겠다.” e*KTB의 조직과 인력은 그대로 두고 KTB가 1대주주 자리를 포기하고 나자 인가문제는 돌파구가 보였다. 하지만 주주구성을 새로 하는 게 문제였다. 결국 2대주주인 다우기술측이 지분을 70%로 늘리면서 1대주주가 되기로 방침을 정했다.이 과정에서 김익래 회장이 직접 나서 김범석 금감위 과장(부국장급, 당시 은행구조조정 총괄)을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한 번 인가가 무산된 데다 1대주주가 변경되면서 회사 이름도 ‘키움닷컴증권’으로 바꿔 신청서를 넣었다. 한편 김범석 사장이 영입되는 과정에서 자본금이 500억원으로 늘어났다. 인수업무까지 할 수 있는 종합증권사로 인가받기 위한 수순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환경이 바뀔지 모르는데, 위탁전문증권사로는 힘들다”는 게 김사장의 판단이었다.결국 김범석 사장이 대표로 옮긴 직후인 2000년 1월 금감위는 키움의 설립인가안을 통과시켰다. 4개월 후인 2000년 5월 16일, 김봉수 대표가 홀로 사무실 문을 열었던 99년 5월 31일 이후 1년여만에 ‘키움닷컴증권’은 창립리셉션을 플라자호텔에서 성대하게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증권사 설립인가가 늦어지는 바람에 이트레이드, 미래에셋 등이 이미 영업을 시작한 터여서 ‘한국최초의 온라인증권사’란 수식어를 달 수는 없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키움닷컴은 이렇게 증권업계에 출생신고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