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경 12cm 원반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종전의 기록은 문자, 그림, 동영상, 소리 등으로 구분돼 각각의 매체에 담아 사용한 것이 통상적인 일. 문자는 종이, 그림은 화판 또는 필름, 동영상은 필름, 소리는 자기 테이프 또는 콤팩트디스크(CD)에 담겨 유통돼 왔다. 그러나 이제는 12cm 원반이 문자 영상 소리 등 모든 기록을 한 번에 흡수하고 있다.오디오 CD, 비디오 CD에 이어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가 영상과 소리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유명가수와 공연실황의 주요 저장매체인 LP판이 90년대 들어 CD에 주인공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90년대 중반 멀티미디어컴퓨터 바람과 함께 CD는 음악을 포함해 문자와 그림, 심지어 움직이는 동영상까지 흡수하기 시작했다.스타크래프트로 시작된 게임 열풍도 CD 보급에 큰 기여를 했다. 게임산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게 되면서 CD 자체가 눈에 띄게 확산된 것. 음악용 CD에만 익숙했던 사람들도 이젠 저장장치로서 ‘CD’의 가치를 발견하게 됐다.고려 <팔만대장경 designtimesp=22082>을 15장 CD에 압축인류최대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27권의 거대한 장서. 10만개가 넘는 항목과 13만여개의 색인어를 갖춘 사전이다. 150만원대 고가인 이 거대 장서를 지난 2000년부터 3장의 CD에 담아 판매한다. 책에서는 불가능한 쌍방향지도 600장, 360도 회전하는 영상, 애니메이션 비디오, 대화형 통계분석, 세계지리, 세계사 연대표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가격은 10분의 1 이하. 혁명적인 변화다. 텍스트 문자뿐만 아니라 동영상까지 저장한다.또 다른 예. 400여권, 16만페이지의 저작 <조선왕조실록 designtimesp=22086>을 CD에 담았다. 이 실록의 한문 원본은 1,893권, 888책으로 돼 있다. 2000년 11월엔 750여년 만에 고려 <팔만대장경 designtimesp=22087>이 CD롬으로 다시 태어났다. 15장의 CD롬은 무려 5,300만여자의 한자로 판각된 <팔만대장경 designtimesp=22088>의 원본을 그대로 담고 있다. 8만 1,258장의 경판을 12cm 원반 15장에 압축한 것이다.이같은 CD는 필립스와 소니의 합작품. 초기 원형과 재생기기는 지난 79년 필립스와 소니사에서 제작했으며, 82년 첫 제품이 시장에 나왔다.자기 테이프 사업 밀어내CD의 가장 큰 매력은 엄청난 저장용량, 영구 보존 기능, 이용의 편리성이다. 워드프로세서 ‘한글2.0’은 10장의 디스켓에 저장, 판매됐다. ‘한글’을 이용하려면 10장을 일일이 컴퓨터에 삽입해야 했지만, ‘한글97’은 CD 한 장이면 충분하다. 이즈음 판매용 소프트웨어 부스에서는 3.5인치 디스켓이 사라지고 CD가 주요 저장매체로 급부상했다. CD롬에는 A4용지 30만장의 문서자료를 저장할 수 있다. 대량생산인 경우 한 장에 1,000원 이하로 떨어진다.상대적으로 자기 테이프 즉 마그네틱 테이프 사업은 기울기 시작했다. 비디오테이프의 가격은 떨어져갔으며 SKC와 새한은 마그네틱 사업을 축소하고 광학디스크사업으로 사업 방향을 돌렸다.이와 함께 카세트테이프 판매점들은 이미 상품진열대를 CD에 넘겨주었다. 최신영화, 인기 신곡, 뮤직비디오까지 개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아 직접 CD를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학습교재도 마찬가지. 과거 영어교재에 3~4개씩 딸려 나오는 테이프들도 이젠 대부분 하나의 CD로 교체되고 있다. 이미 토플의 경우 컴퓨터로 시험을 보게 되면서 대부분의 토플 교재들이 CD로 제작돼 판매되고 있다.CD롬 A4용지 30만장 저장이밖에 잔치, 사진, 일기, 가족신문, 여행기 등 가정 대소사를 CD에 담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다. 기록장치인 CD-RW를 이용해 집에서도 손쉽게 역사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시그마컴 구자경 대리의 취미는 멀티미디어 제작. 디지털카메라, 비디오카메라로 녹화한 미국여행 영상을 가정용 컴퓨터를 이용해 직접 편집하고 제작한다. 이를 직경 12cm의 금빛 CD에 저장한다. 두껍고 무거운 가정용 앨범과 투박한 비디오테이프가 이제는 동그란 원반으로 바뀌고 있다. 이같은 작업은 2000년만 해도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작업들이었지만, 이제는 PC만 있으면 가능하다.직경 12cm 크기의 차세대 저장장치들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DVD가 등장하면서 기존 CD의 역할을 분담하기 시작한 것. 이미 영상 부문에서는 DVD가 일반 CD를 밀어낼 태세다. 뛰어난 음질과 영상 저장능력 때문.DVD는 CD(저장용량 640MB)와 동일한 직경 12cm의 디스크 한 면에 7배나 많은 4.7GB에 이르는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일반 CD보다 일곱 배나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어 한 면에 133분짜리 영화가 들어간다. 이와 관련 5.1채널의 특수 녹음기술로 무장한 이글스, 산타나, 리키 마틴의 음악이 실황연주 영상과 함께 DVD로 제작돼 날개 돋친 듯 판매되고 있다.한편 동그란 원반 형태로 크기가 작은 미니디스크(MD)의 추격도 거세다. MD란 92년말 일본 소니사에서 개발한 CD의 절반크기인 6.4cm 광디스크를 말한다. 미니디스크 플레이어(MDP)의 경우 일본에선 이미 700만대 이상이 보급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국내에서도 인터넷 동호회를 중심으로 MD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MD의 장점은 CD에 뒤지지 않는 음질과 저장 용량(140MB)을 가지면서도 녹음과 재생이 자유로운 디지털 저장 수단이라는 데 있다. 80분용 디스크 하나에 최대 320분 동안 녹음을 할 수 있기 때문.관련업계에선 “일본의 문화개방으로 MD음반들이 본격 수입되면 시장규모가 급속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