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전 경제수석의 낙마가 '금융권 교통정리'의 공백을 초래했다는 설이 유력

증권거래소증권거래소 노동조합은 지난 3월 20일 조합원 364명을 대상으로 차기 이사장 예상 후보에 대한 선호투표를 실시했다. 현 박창배 이사장이 4월 7일로 임기만료 되기 때문에 예전 같았으면 이미 차기 이사장이 누군지 가시화될 시점이지만 이번에는 전혀 오리무중이다.재경부 인사들의 교통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후속 인사가 미뤄지고 있는 탓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노조가 차기 이사장 감에 대한 선호투표를 했다는 점에서 증권가의 관심을 모았다. 최근 이사장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인사들을 놓고 실시한 이번 조사 결과는 외부인사들의 압승이었다.이정재 전 재경부 차관이 66.3%의 득표율을 올린 가운데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가 10.4%, 오호수 증권업협회장이 7.7%로 3위를 차지한 데 비해 거래소 공채 출신인 박이사장과 남영태 거래소 부이사장 등 내부인사는 거의 표를 얻지 못했다. 과거 ‘낙하산을 타고 오는’ 외부인사에 대해서 극도의 거부감을 표시했던 증권거래소 노조가 이번에는 이렇게 투항에 가까운 결과를 내놓은 건 이례적인 일이다.특히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인 전 관료에 대한 선호도가 1, 2위란 점은 거래소 고위 관계자의 표현대로 “남우세스러운 일”이라고 할 만하다. 이는 힘있는 재경부 출신 이사장만이 주가지수선물·옵션 이관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재정경제부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은 3월 23일 부산에서 열린 ‘선물시장발전 세미나’에 참석, 올 상반기 중 협의기구를 구성하고 하반기에 규정과 절차 등 선물·옵션 이관에 필요한 실행계획을 수립해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이에 앞서 지난 2월 선물거래소 이사장으로 재경부 1급 공무원 출신인 강정호 전 코스닥시장 사장이 부임하자 거래소는 극도로 민감해져 있는 상태였다.증권거래소 노태현 노조 부위원장은 “외부인사가 온다고 이관문제가 곧바로 해결되겠느냐”며 일단 이같은 외부 시각을 부인하면서도 “증시행정 경험이 풍부한 강력한 인사가 필요하다”고 말해 바람막이 역할을 할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노 부위원장은 특히 “선물시장 사망선고에 책임있는 인사는 이사장 감이 아니라는 게 노조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라고 말해 선물 거래이관문제와 관련, 현 경영진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증권거래소는 이같은 논란 속에서 후임 이사장을 뽑기 위한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사장 후보를 공모할 예정이라고 3월 28일 밝혔다. 그러나 박이사장의 임기만료일이 4월 7일이고 위원회 구성 → 후보 등록 → 선임 등의 절차에 상당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동안 거래소는 이사장 대행체제로 가는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금융감독원지난 3월 22일 금융감독원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항명’ 파동이 일어났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이순철 부원장보를 보직해임하고, 여의도 사무실을 떠나 종로구 통의동 옛 보험감독원으로 자리를 옮기라는 명령을 내렸다.사건의 발단은 이위원장이 이순철 부원장보를 국민은행 감사로 내려보내려고 시도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위원장은 이때 금감원의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비교적 ‘연장자’에 속하는 이부원장보를 국민은행 감사로 보내기로 하고 은행측의 협조를 받아두었다. 그런데 국민은행이 기존의 이철주 감사와 자신을 함께 선임, 복수감사제를 도입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이부원장보가 이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이부원장보는 심지어 “국민은행 감사로 가지 않겠다”는 내용증명까지 은행에 보내며 버텼다. 이부원장보는 어느 금융기관도 감사를 두 명 두는 곳이 없는 현실에서 국민은행 감사로 갈 경우 ‘식객’ 노릇을 하게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이에 대해 이위원장은 “복수 감사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얘기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무마하려 했으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이런 가운데 은행 감독을 총괄해온 금감원의 정기홍 부원장과 인사담당 임원인 강권석 부원장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의를 표명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위원장은 사태가 계속 확산되자 3월 22일 이부원장보를 따로 불러 40여분간 설득작업을 시도했지만 이부원장보의 마음을 돌리는데 실패했다.금융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정부의 인사적체 해소 방안으로 시중은행을 이용한 점을 들었다. 정부가 비록 국민은행의 주요 주주(지분율 9.6%)이므로 인사에 간여할 수는 있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지나쳤다는 지적이다.국민은행 관계자는 “이철주 현 감사는 감사관련 시스템을 개발하던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고문이나 다른 자리로 보낸 다음 이부원장보를 단독감사로 맞아들일 수가 없었다”며 금감원의 낙하산 인사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이같은 혼선 때문에 이순철 부원장보는 3월 22일 열린 국민은행 주총에서 복수감사 후보로 선임돼 한때 ‘금감원 부원장보 겸 국민은행 감사’가 되는 인사파행을 겪기도 했다.한편 금감원의 한 국장은 금감원 출신 인사의 금융기관 진출을 막는 공직자윤리법에 대한 위헌법률심사를 청구할 준비를 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상당기간 ‘낙하산 인사’를 둘러싼 파동은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