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기를 앞둔 일본 청량음료 시장에 차(茶)전쟁이 화끈하게 불붙었다. 차 중에서도 녹차를 중심으로 한 무설탕 차 제품을 염두에 둔 음료업체들간의 대격전이다.일본인들은 차를 많이 마신다. 가정이나 직장, 식당에 손님이 찾아가면 맨 먼저 내오는 것이 차다. 일상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보니 음료 시장에서도 차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상품이다.주택가 골목길이건, 도심 번화가이건 자판기가 설치된 곳에서는 어디서든 차를 구해 마실 수 있다. 청량음료라는 단어를 접할 때 한국에서는 콜라, 사이다를 먼저 머리에 떠올리지만 일본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녹차, 우롱차, 홍차 같은 차 제품의 판매량이 탄산음료를 압도한다.일본 전문가들은 올해 청량음료 시장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로 녹차 등 무설탕 차 신제품의 대거 등장을 손꼽고 있다. 업체마다 약속이나 한 듯 무설탕 차의 신제품을 앞다퉈 내놓으며 시장선점 싸움에 매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일본 청량음료 시장에 새로 등장한 신제품 중 녹차를 재료로 한 것은 무려 7∼8종에 이른다. 기린, 아사히, 산토리 등 음료업계의 거인들이 녹차 싸움에 한꺼번에 뛰어들었다. 녹차뿐만이 아니다. 우롱차, 현미차, 메밀차 등에서도 대형 업체들의 신제품이 우박처럼 쏟아지며 화끈한 한판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제품개발 경쟁 못지않게 광고 전쟁도 건곤일척의 대전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주력제품 ‘주로쿠(十六)차’의 판매량이 전년대비 36%나 줄었던 아사히음료는 최근 2002년 신제품을 발매하면서 인기 절정의 톱 모델 후지와라 노리카를 캠페인 걸로 기용, 화제를 뿌렸다.후지와라 노리카는 미스 일본 출신의 탤런트로 출연하는 광고마다 해당 상품을 히트시키는 인물로 명성을 누리고 있다. 아사히음료는 주로쿠차의 생사를 걸고 마지막 도박을 하는 각오로 그녀를 내세웠다고 밝혔다.기업들 페트병에 든 무설탕차 ‘눈독’일본 시장 전문가들은 음료업체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상품으로 페트병에 든 무설탕 차 제품을 꼽고 있다. 이와 함께 페트병 차 제품이 태풍의 눈으로 주목받게 된 배경을 소비패턴과 생활양식 변화 등에서 찾고 있다. 이들이 지적하는 소비패턴 변화 중 무엇보다 두드러진 것은 젊은이들의 차 음용습관이다.일본 시장에서, 특히 자판기를 통해 팔리는 차 제품의 상당수는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캔용기에 들어 있는 것이 주종이었다. 캔 음료는 뚜껑을 따면 그 자리에서 다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 책상 옆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홀짝홀짝 마실 수 없다.하지만 페트병에 든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젊은 직장인들의 차 마시는 스타일이 달라졌다. 뚜껑을 닫아 놓고 수시로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주스, 콜라를 책상 위에 놓고 홀짝거리는 것은 주위의 눈치를 의식하게 되지만, 차는 물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일본 사회의 풍토도 젊은이들의 변화를 부추겼다.전문가들은 건강을 위해 당분이 함유된 탄산음료와 커피를 피하는 소비자들이 무설탕 차로 몰린 것도 페트병 차 제품의 인기상승에 한몫을 했다고 보고 있다. 일반 자판기에서 뜨거운 상태로 파는 페트병 차가 속속 등장한 것 역시 소비확산에 플러스 알파로 작용했다. 전문가들이 꼽은 무설탕 차 제품의 또 하나 인기요인은 차를 사서 마시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저항감이 엷어졌다는 것이다.음료업계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일본 청량음료시장은 연간 3조 4,000억엔 규모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판매증가율은 1% 안팎에 그쳐 거의 제로성장에 머물렀다. 하지만 무설탕 차와 생수가 약 10% 늘어난 가운데 특히 녹차는 30% 전후의 초고성장을 기록했다.품목별 매출 규모는 커피음료가 1조엔으로 수위를 차지한 데 이어 무설탕 차가 7,150억엔으로 2위에 올랐다. 무설탕 차 가운데 녹차 비중은 약 40%, 우롱차는 30%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