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가계부문의 부채를 놓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도 은행의 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는 은행자산의 질적 저하가 현재의 경기를 떠받치고 있는 가계부문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데서 문제의 심각성을 찾을 수 있다. 위기 이후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건전성을 한꺼번에 회복한 은행들의 수익성 추구로 자금운용 대상이 가계 부문으로 집중된 결과 은행자산의 건전성은 이제 가계부문의 자금운용 행태에 크게 의존하게 됐다.그러나 정작 가계부문의 자금운용은 부동산 등 변동성이 높은 자산시장의 동향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결국 은행자산의 건전성 여부는 자산시장의 동향에 의존하게 되는 국면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반면 위험관리 능력이 구비됐다고 자부하는 은행권의 자산운용상 위험은 위험관리 능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가계부문에 집중됐다. 정작 조그만 충격에도 민감한 자산시장에 대한 위험노출은 수치상의 호전으로 나타나는 현 선순환의 구도와는 다르게 일시에 은행권과 가계부문의 잠재적 위험을 현실화하기 쉽다.사실 과거 2년여간의 가계대출 증가는 우리 경제 회복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외부충격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유독 호전세를 구가한 배경에는 금융기능의 정상화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시장 여건은 몇 년간의 부실처리 위주의 구조조정만으로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기 어려운 처지다. 특히 가계대출 시장은 그동안 금융권에서 제대로 접근해 보지도 못한 새로운 시장으로 볼 수 있다.이러한 시장 여건 하에서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나 규모가 다소 부담스러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는 연체나 부실비율, 그리고 자산시장의 버블화 징조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버블화가 진전될 경우 지금의 선순환 구도는 일시에 악순환으로 반전되면서 가계와 금융부문의 부실화를 통해 장기 침체의 실마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지금까지는 대체로 긍정적인 효과가 우세했으나 위험처리 능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현 시장 여건상 대출의 건전성은 유지되기 어렵다. 결국 자산시장 불안과 더불어 가계부문 부실화의 직접적 원인으로 부각될 소지가 크다.문제는 이러한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는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처방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정책 처방이 과거처럼 금리수단에만 치중할 경우 선순환 구도가 일시에 붕괴되는 위험을 무시하기 어렵다.물론 경기회복 구도가 지속된다면 지금의 추세는 일시적으로 연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라도 자금배분이 특정부문에 집중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가계부문은 그동안 재산증식의 새로운 경로로 인식됐던 가계부채 증가에 대해 금리위험은 물론, 자산시장의 조정 가능성을 감안해 좀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이제는 위험관리의 주체가 은행에서 가계 부문으로 이동해야 하는 시점이다. 정작 자금공여 기능이 크게 확충된 현 상황에서 최종 소비단위인 가계 부문의 신중한 자체적 포지션 관리는 앞으로 안정적 소비와 투자패턴을 이끌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은행대출이나 신용카드 관련, 대출 관련 자산운용에서 금융기관들도 우리나라의 시장여건을 감안한 위험관리에 각별히 신중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책당국은 시장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하는 기능을 보완해 가면서 건전성 관리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결국 시장기능의 미비로 야기되는 각종 문제해결을 단기처방에만 의존할 경우 우리는 시장경제의 혜택은커녕 경기진폭 확대(Boom and bust)의 부작용만 경험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