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피털인터내셔널·H&Q·AIG 등 4~9배에 이르는 투자수익 챙겨
‘지금 외국인 투자자의 최대 관심은 탈출 방법(How to exit)이다.’IMF 관리체제 이후 국내 투자한 외국인들이 서둘러 보따리를 싸고 있다. 올해 국내 증시가 상승하는 틈을 타고 투자자금을 회수하려는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한국 탈출을 시도하려는 이들을 ‘달뜨게’ 하는 이유는 최근 막대한 부를 거머쥐고 이미 탈출한 ‘선배’들이 있어서다. 이들은 최근 투자자금을 회수하면서 4~9배에 이르는 차익을 챙겼다.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외국계 투자자들은 하이트맥주의 캐피털인터내셔널, 굿모닝증권의 H&Q, 한솔엠닷컴의 AIG 등 3인방이다. 이들은 ▲1대 주주와 2대 주주의 경쟁 관계를 이용하거나 ▲매물 정보를 꾸준히 흘리며 인수 경쟁을 유도하고 ▲투자한 뒤 곧 매각할 수 있다는 대주주의 확인을 받은 뒤에 투자했다가 회수해 나간 것으로 분석된다.캐피털인터내셔널글로벌 펀드는 지난 98년 7월 하이트맥주에 3,000만달러를 투자, 최근 무려 9배의 이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98년 당시 하이트맥주는 증권업계에선 처음으로 신형우선주(보통주로 전환될 수 있는 우선주)를 발행했고, 캐피털인터내셔널은 주당 6,500원에 594만주(386억원)를 인수했다.이즈음 덴마크 맥주회사 칼스버그도 하이트맥주에 5,000만달러를 투자했다. 따라서 회사는 1대 주주 박문덕 하이트맥주 회장과 2대 주주 칼스버그 그리고 3대 주주인 캐피털인터내셔널로 나뉘었다.이렇듯 회사 지분에 복잡한 변화가 일어났지만 캐피털인터내셔널에겐 이익을 회수할 수 있는 좋은 구도였다. 1대 주주와 2대 주주 사이에서 캐피털인터내셔널은 3대 주주로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자리에 섰다.실제 이 회사는 투자한 지 2년 6개월 만에 양 대 주주에게 지분을 팔았다. 2001년 2월 주당 5만 4,300원에 100만주를 칼스버그에게 넘겼고, 2002년 1월 150만주(주당 5만 8,500원)를 추가로 팔았다. 이를 통해 캐피털인터내셔널은 총 1,420억원의 이익을 챙겼다. 무려 투자원금의 9배에 이르는 이익을 얻은 셈이다.1대 주주·2대 주주 지분율 이용이와 함께 이 투자회사는 178만주(주당 평균 9,000원대)를 박문덕 회장에게 되팔았다. 이는 98년 신형우선주를 발행할 때 박회장에게 되판다는 옵션계약을 맺은 데 따른 것이다. 캐피털인터내셔널은 다시 지난 2월 박회장에게 160만주를 주당 5만 3,600원대에 넘겼다.박회장이 당시 서울은행에서 300억원을 빌려가면서까지 급하게 주식을 매입한 이유는 칼스버그가 지난 1월 캐피털인터내셔널로부터 150만주를 인수하면서 박회장을 제치고 1대 주주로 올라섰기 때문.이에 하이트맥주 관계자는 “지난해초 캐피털인터내셔널로부터 160만주를 매입하겠다는 약속을 지난 2월에 지킨 것뿐”이라며 “하이트맥주는 확고한 1대 주주”라고 해명했다. 어쨌든 캐피털인터내셔널은 1대 주주와 2대 주주의 지분율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잇속을 확실히 챙겼다.지난 1월과 2월 이 회사가 칼스버그와 박회장에게 210만주를 대거 매도한 데에는 한국의 경기 상황과 맞물려 있다. 하이트맥주 관계자는 “한국 경기의 앞날을 예상하기 힘들자 펀드에 투자한 외국인들이 환매를 요구했고, 이에 캐피털인터내셔널이 적극적으로 이익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캐피털인터내셔널은 박회장에게 “외상으로라도 사 가라”고 주문하는 등 급하게 팔아치웠다.굿모닝증권의 대주주 H&Q 역시 최근 자금회수에 성공했다. 지난 4월 8일 신한금융지주회사가 굿모닝증권을 인수하면서 H&Q의 지분을 주당 7,200원에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투자 당시 주당 1,250원에 굿모닝증권 주식을 매입했으니까, H&Q는 무려 5.7배의 이익을 챙긴 셈이다.H&Q와 함께 컨소시엄으로 출자한 롬바드(Lombard, 캘리포니아 연기금의 아시아 자산운용회사)와 GIC(싱가포르 투자청의 펀드)도 거액의 차익을 챙겼다. 이들 3인의 주주는 지난 98년12월 굿모닝증권에 투자할 때 H&Q는 416억원, 롬바드는 300억원을 투자했고 GIC는 246억원을 투입했다. 이들이 투자한 금액은 총 963억원.H&Q는 투자한 지 1년 뒤부터 굿모닝증권의 주가가 오를 때마다 보유한 주식을 시장에 팔기 시작했다. 지난 4월초 신한지주가 합병하기 전 H&Q는 이미 15.96%의 지분을 시장에 내다 팔아 355억원을 회수했다. 롬바드와 GIC 역시 각각 231억원과 90억원을 회수했다. 이미 원금의 80~90%의 자금을 회수한 셈이다. 그리고 합병 뒤 이들은 4,590억원의 매각이익을 거두었다.증권가와 굿모닝증권에 따르면 이미 H&Q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지분 매각 의사를 여러 곳에 타진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쉬쉬하던 굿모닝증권 매각설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퍼지기 시작했다.굿모닝증권 관계자는 “H&Q는 언제든지 나갈 주주였다”며 “매각설이 난무해 실제 신한지주와 합병을 발표할 때는 또 굿모닝증권이냐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H&Q가 매각설을 흘리면서 인수 경쟁을 유도했다고 분석한다.일각에서는 H&Q가 굿모닝증권을 제외한 다른 국내 투자가 실패로 끝나 급히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굿모닝증권을 시장에 내놓았다고 본다. 어쨌든 증권업계 구조조정의 바람을 타고 H&Q는 신한지주에 회사를 넘겨줌으로써 막대한 매각 차익을 거뒀다.3,500억원이 1조 5,000억원으로지난 98년 미국 생명보험사 AIG는 캐나다 투자회사인 BCI와 함께 한솔엠닷컴에 투자한 뒤 지난해 여름, 대박을 터뜨리고 유유히 한국을 떴다. 총 투자금액은 3,500억원이었지만 투자 회수할 때는 무려 1조 5,000억원으로 눈덩이 구르듯 불어났다.98년 당시 AIG는 아시아 지역에만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홍콩 조직을 통해 한솔엠닷컴에 투자했다. 이들은 주당 8,000원에 보통주 401만 2,000주를 매입했다. 투자금액은 321억원. 이후 이들은 우선주로 전환될 수 있는 CB를 주당 7,200원에 733만 2,000주(528억원)를 매입했다.AIG가 투자한 총액은 849억원이었고, BCI는 2,651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5월 KTF가 한솔엠닷컴을 인수하면서 외국 투자자들의 지분을 전량 매입했고, 가격은 주당 3만 5,000원대였다. AIG 등은 투자원금의 4.5배를 챙긴 셈이다.이를 두고 업계에선 AIG가 이미 투자할 당시 한솔엠닷컴의 대주주에게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을 약속 받고 투자했다고 분석했다. AIG 측은 통신산업의 성장성을 보고 한솔엠닷컴에 투자했다고 하지만, 이를 믿기엔 힘든 구석이 많다.예컨대 IMT2000사업권을 얻지 못하면 통신서비스 업계의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민감한 시기에 하필 한솔엠닷컴에 투자했는지 설명이 안 된다. 한솔 관계자에 따르면 98년 한솔그룹은 30억원의 어음 결제를 막지 못할 정도로 부도 직전까지 갔다. 이 때문에 외자유치를 서둘렀던 것.이런 회사가 수조원이 들어가는 IMT2000 사업권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기엔 무리한 점이 많았다. 따라서 AIG는 이미 매각을 전제로 투자했다는 얘기가 성립된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AIG는 한솔엠닷컴의 장외주가가 주당 2,000원대였을 때 4배에 이르는 주당 7,000~8,000원대에 주식을 사들였다. 한솔엠닷컴 출신의 한 인사는 “한솔그룹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확약을 받지 못했다면 AIG는 이렇듯 위험한 투자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미 탈출에 성공한 이들 3인방과 함께 거론되는 외국 투자자는 외환카드의 2대 주주 올림푸스캐피털이다. 올림푸스는 지난 99년 외환비자카드에 1,000억원을 투자하면서 한국에 발을 들여놓았다. 1주당 8,500원에 1,176만 4,706주를 매입한 올림푸스는 2000년 10월 다시 380억원을 투자, 400만주(주당 9,500원)를 취득했다.이를 통해 올림푸스는 총 37.7%의 외환카드 지분을 확보했다. 최근 외환카드의 주가가 주당 3만4,000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올림푸스는 이미 4배 가까운 수익을 올린 셈이다.올림푸스는 지난해 외환은행과 씨티은행의 외환카드 매각협상을 지켜보면서 지분 매각에 기대를 걸었다.당시 씨티은행은 국내 카드사업의 미래를 보고 외환은행의 외환카드 지분과 올림푸스 지분을 모두 인수하려고 했다. 당시 매각 대금은 1조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거의 성사단계까지 갔던 협상이 무산된 이유는 지난해 9·11 테러사건 이후, 씨티은행 본사가 모든 투자를 중단하기로 결정해서다.자금 회수 기회를 놓쳤지만 올림푸스는 은행이자를 상회하는 수익을 해마다 얻고 있다. 지난 2000년 12%의 배당을 받아 95억원을, 2001년엔 25%의 배당을 받아 197억원을 챙겼다. 게다가 오는 6월 21일부터 올림푸스는 보유주식을 팔 수 있다. 보호예수의무가 그때 풀리기 때문이다. 외환카드 관계자는 “장내 매도할 경우 주가가 하락해 수익이 줄기 때문에 장외에서 해외투자자에게 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외환은행이 외환카드의 지분 45%를 보유하고 있는 마당에 단지 올림푸스의 지분을 인수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증권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지 않는다면 인수할 투자자가 없다는 얘기다.이 때문에 씨티은행도 외환카드의 지분 100%를 인수한다는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했다. 이에 외환카드 관계자는 “외국계 보험사에서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며 “이들은 경영권보다는 외환카드가 확보하고 있는 고객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는 것에 더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올림푸스는 외환카드에 투자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투자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오는 4월 30일로 예정된 미국 투자설명회에서 중점적으로 부각시킬 사항은 외환카드의 실적. 리볼빙카드를 통해 안정적인 수입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회사의 경쟁력도 강조할 계획이다.회사 관계자는 “지난해말 거래소에 상장한 뒤 아직 인지도가 낮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회사를 알리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종업계는 올림푸스가 투자설명회를 통해 해외투자자에게 지분을 팔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올림푸스가 자금 회수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전체적인 회사 분위기가 말해 주고 있다. 지난 99년 12월 자금을 투입한 뒤, 올림푸스는 부사장과 마케팅본부장 등을 파견했으나, 직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2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없다는 얘기다.최근 신용관리본부장으로 한 명의 직원이 더 파견될 예정이지만, 언제 오는지 그리고 왜 오는지 이해하는 직원이 없어 보인다. 외환카드 관계자는 “신용관리 분야에 꼭 필요해서 사람이 오기보다는 자본을 투자했으니 직원을 파견하는 정도로 이해한다”고 전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