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그 자체를 상품의 생명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알고 보면 꽃만큼 다루기 힘든 상품도 흔치 않다. 우선 계절에 따른 수요 기복이 너무 심하다. 입학·졸업 시즌 및 가정의 달과 같은 성수기와 비수기의 판매량 차이가 현격하게 벌어진다. 또 하나는 재고처리 문제다. 팔다 남은 신선식품은 이튿날 헐값에라도 처분할 수 있다. 어차피 먹거리로 쓸 상품이니 값만 싸다면 소비자들도 큰 저항 없이 장바구니에 담아넣는다. 하지만 꽃은 사정이 다르다. 헐값에 내놓는다 해도 시든 꽃에 손길을 주는 소비자들은 거의 없다. 출하된 날이라 해도 오전과 오후 값이 다르다. 다음날은 아예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따라서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꽃 판매상들이 팔다 남은 재고 때문에 안는 손실은 엄청나다. 일본의 경우 꽃을 사고 파는 관행이 한국보다 월등히 대중화돼 있다고 하지만, 판매상들은 구입상품의 약 30%를 손실로 허공에 날려버린다는 게 정설이다.여건이 이렇다 보니 꽃 비즈니스는 대기업들이 좀처럼 뛰어들기 어려운 분야로 인식돼왔다. 다루기 힘들고 재고 손실도 커 별 재미 없는 장사라는 선입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유통업체들도 매장 한 켠을 전문업체에게 임대할지언정 독자적으로 판매망을 구축하는 사례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일본의 꽃 시장에는 그러나 변화를 알리는 바람이 몇 년 전부터 소리없이 싹트기 시작했다.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은 세이유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이자 무지루시료힝(無印良品)의 판매업체로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료힝게이카쿠(良品計劃).이 회사는 소규모 자영업 형태의 점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꽃 시장에 저가격과 다품종, 소재고의 무기를 앞세워 영업망을 급속도로 넓혀가고 있다. 과학적 관리기법을 통한 재고 최소화를 발판으로 판매가를 최대한 끌어내리고, 거미줄 같은 상품조달 네트워크를 이용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꽃을 적기에 공급한다는 것이 돌풍의 핵심이다.자회사 ‘하나(花)료힝’을 앞세워 꽃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는 료힝게이카쿠의 경쟁력은 가격 하나만 봐도 간단히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일반 꽃 가게에서 1송이에 100엔씩 파는 꽃이라면 하나료힝은 10송이에 198엔을 받는다.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초염가다. 염가의 비결은 일반 상품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산지 농가와의 직계약을 통한 대량발주, 대량구입이다. 취급하는 꽃들을 전부 이같은 방식으로 사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 코스트가 대폭 절감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강점은 선도다. 값이 싸다고 이 회사의 꽃이 선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장식해 놓은 다음날 모양이 변하거나 시들어버리면 안 된다는 점을 주목, 하나료힝은 선도 관리에 소규모 자영점들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 회사는 특별히 주문해 제작한 에어컨을 가동하면서 실내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 꽃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첨단 기법을 동원하고 있다.초염가 판매전략을 받쳐주는 힘은 물샐 틈 없는 ‘로스(Loss)’ 관리에도 바탕을 두고 있다. 하나료힝은 불필요한 재고 손실을 덜기 위해 폐기율이 최대 2%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안 그래도 마진을 최소화해 일반 꽃가게들의 5분의 1 수준 가격에 판매하는 상황에서 재고 손실까지 무작정 떠안는다면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이 회사는 꽃이 선도를 유지하는 당일 하루 동안 모두 팔아치운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매장에서는 뷔페식으로 손님들이 내부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꽃을 골라 담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점원들에게는 패스트푸드 업체처럼 매뉴얼 교육을 철저히 시켜 고객응대와 매장 관리, 포장 등에서 시간적 로스를 될 수 있는 한 줄이도록 하고 있다.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고객들의 탄탄한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하면서 료힝게이카쿠의 꽃 비즈니스는 고성장의 날개를 달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96년 첫 점포를 연 후 현재 도쿄 일대 수도권에서 모두 6개 점포를 운영 중이지만 앞으로 3, 4년 후면 50개가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외형에서도 료힝게이카쿠의 성적은 발군이다. 일본 전역에 산재한 소규모 자영점 형태의 2만 8,000여 꽃가게가 연간 3,000만엔의 매출을 올리기도 힘겨운 데 비해 하나료힝은 1개 점포당 1억엔을 넘보고 있다.외국산 꽃, 가격 낮추는 데 일조일본의 꽃 시장은 최종 소비자가격을 기준으로 할 때 연간 외형이 1조 2,000억엔에 이를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추산이 뒤따르고 있다. 꽃을 좋아하는 문화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단연 정상급이라는 외부 지적에 걸맞게 대기업들의 한 해 매출과 맞먹을 정도의 돈을 꽃을 소비하는 데 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집안에 꽃을 장식해 놓는 세대는 전체의 4할 정도에 불과, 서구 부자나라들에 비한다면 대중화의 뿌리가 아직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일본 총무청 가계 조사).아베 갠지 료힝게이카쿠 사장은 “꽃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세대가 4할 정도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미개척 시장이 6할이나 됨을 의미한다”며 “가능성을 보고 꽃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함께 “꽃 유통업계는 장례업계와 함께 외부 변화에 가장 둔감한 업종으로 소비자들의 비판을 받아왔다”고 전제,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대변화의 바람이 빠른 속도로 몰아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한편 일본 꽃 시장의 고물가 장벽을 낮추는 데는 외국산 꽃들도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알려진 장미와 카네이션, 국화의 3가지다.일본의 꽃 도매업체들은 장미의 경우 한국, 국화는 네덜란드, 카네이션은 콜롬비아에서 주로 수입해 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송 수단은 물론 시간을 가장 절약할 수 있는 비행기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세 가지 꽃은 비싼 비행기 운임을 물고도 일본에 넘겨지는 가격이 일본산의 절반 이하도 안 돼 소매업체들의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의 꽃 전문가들은 네덜란드와 콜롬비아가 현대화된 첨단 대량 재배시설을 바탕으로 뛰어난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고 지목, 이들 국가에 대한 의존현상이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한국의 경우 인건비가 싼 데다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정부 차원의 지원활동이 큰 힘이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외국산 꽃의 원산지는 3개국 외에도 인도, 남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 중국 등으로 조달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13% 수준에 머물고 있는 외국산 꽃의 일본 시장 점유율은 저가격을 무기로 계속 상승 곡선이 이어지리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꽃 전문가들은 3년 전만 해도 1송이에 100엔 정도를 호가했던 국화의 시장가격이 최근 80엔 수준으로 낮아진 것이야말로 외국산 꽃이 가져온 물가하락 효과를 대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대기업들의 신규참여와 외국산 꽃에 의한 가격하락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일본 화훼농가는 갈림길로 내몰리고 있다. 대규모 국화 산지인 아이치현 요도미초의 한 농협은 “현재로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원형이 오래 가는 싱싱한 꽃 품종을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