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도요타자동차의 ‘렉서스’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일대 신드롬을 일으킨 데 이어 최근 일제 노트북PC 브랜드들의 공세가 눈에 띈다. 2000년까지만 해도 기업용이나 서울 용산의 전문점 중심으로 유통되던 일제 노트북들이 일제히 대중화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99년 당시 10% 미만 수준이던 일제 노트북의 한국시장 점유율은 현재20%선까지 2년새 두 배 넘게 늘어난 것으로 업계에선 추산하고 있다. 현재 후지쯔를 비롯해 소니, 도시바 등 일본계 IT(정보기술) 다국적 기업들은 국내 노트북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힘 겨루기가 한창이다.우선 지난 97년 국내에 공식적으로 진출한 후지쯔가 가장 돋보이는 일제 노트북 메이커다. 한국후지쯔는 주로 전문가용과 기업용으로 고가정책을 지켜오면서 국내 노트북 시장에서 탄탄한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말부터 가격을 7% 정도나 낮추며 일반 수요층을 포섭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대표 브랜드가 바로 ‘라이프노트북’. 200만원 남짓한 가격으로 삼성전자를 비롯해 컴팩 등 미국계 브랜드들을 엄습하고 있다. 지난해 2만 4,000대 이상을 팔아 국내 전체 노트북 시장의 6%를 차지한 데 이어 올 1분기에 1만대를 넘게 판매하는 등 연말까지 10%대(4만대 규모)의 시장점유율을 목표로 잡고 있다. 단가가 다른 브랜드보다 비싼 만큼 매출도 545억원을 넘어섰다.소니 또한 후지쯔를 위협할 만큼 만만찮은 노트북 메이커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가전, 게임 시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노트북에 적용한 이른바 ‘가전 노트북’ 영역을 개척하며 국내 시장에서 5%를 육박하는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상태다.지난해까지 세계 노트북 시장에서 가장 높은 마켓셰어(시장점유율)를 자랑하던 도시바는 올해 2월 국내에 법인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국내시장 공략을 선언했다. 그동안 용산 전자랜드를 비롯해 하이마트 등에서 시험했던 시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결과다. 무엇보다 가격 경쟁력이 도시바 노트북의 절대적인 매력이다.후지쯔·소니 선두, 도시바 약진후지쯔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컴덱스2001에서 노트북 부문 최고상을 받은 최소형 노트북 ‘라이프북 P시리즈’를 필두로 다양한 제품군으로 판매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P시리즈는 DVD/CD-RW(재생·재기록) 콤보드라이브와 2차 배터리를 제공해 최대 14시간 30분간 사용할 수 있다.한국후지쯔측은 “라이프북 시리즈는 일본 시마네현에 위치한 노트북 자동화 생산공장에서 전량 생산된다”며 “따라서 품질에서 대만, 중국 등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생산되는 타 회사의 제품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본사와 강남·강북의 고객지원센터를 비롯해 전국 7개 지사에서, 제품을 픽업해 수리한 다음 돌려주는 애프터서비스인 ‘라이프북 익스프레스’도 추진 중이다.사용자의 컴퓨팅 환경에 따라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한 것도 강점으로 내세운다.이 중 C시리즈는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윈도XP를 탑재하고 인텔의 모바일 펜티엄Ⅲ 프로세서 1GHz를 장착했다. 그밖에 다양한 디지털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재생과 편집 작업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캠코더로 촬영한 동영상을 노트북에서 직접 편집하고 이를 TV 등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DVD 타이틀에서 지원되는 돌비 디지털 서라운드 사운드로 홈시어터 시스템 구축도 가능하다고.소니코리아는 ‘바이오(VAIO)’란 브랜드의 초슬림 노트북으로 시장을 공략 중이다. 핸디캠, 디지털카메라, 오디오 등과 컴퓨터를 결합시킨 것이 특징이다. 소니가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사 윈도XP 한글판을 비롯한 각종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도 지원한다.이명우 소니코리아 사장은 “바이오 노트북은 특히 1024×768 해상도의 15인치 대형 TFT 화면이 프리젠테이션이나 웹디자인, 멀티미디어 디지털 이미지 작업 등 전문가용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기존의 25개 소니 대리점을 통해 본격적인 노트북 유통망을 구축한 상태다.세계 최대 노트북 제조업체인 도시바는 올 2월 한국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국내 노트북 시장에 공식적으로 뛰어들었다. 지난 86년 세계 최초로 노트북 PC의 개발에 성공하고 94년부터 7년 연속 세계 판매량에서 1위를 차지한 만큼 도시바의 한국 시장 진출은 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우선 초슬림형 노트북인 ‘포테제2000’을 비롯해 이미 올 초 한국 노트북 소비자층에 맞춘 저렴한 가격대의 ‘새틀라이트1800’을 출시했다. 이어 그래픽과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화한 새틀라이트3000·5100을 출시해 국내 진출 첫해인 올해 2만 4,000대를 목표로 달리고 있으며 2004년엔 10만대를 팔겠다는 야심이다.2002 FIFA 월드컵 공식 스폰서인 점을 활용해 공격적인 마케팅도 병행한다. 차인덕 도시바코리아 사장은 “이미 서울 강남과 강북에 직영 AS센터를 오픈한 데 이어 올해 말까지 전국 6대 광역 도시에 AS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이처럼 일제 노트북 메이커들이 국내시장 공략을 본격화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은 여전히 노트북을 팔 수 있는 큰 시장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노트북 시장은 연간 1조원 규모로, 2004년까지 해마다 20%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는 것이 이들 일제 메이커들의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 전체 개인용 컴퓨터(PC) 가운데 90%가 이미 노트북일 만큼 포화상태에 가까운 데 반해 한국은 아직까지 10% 정도만이 데스크톱에서 노트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이들 업체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는 것이다.삼성전자, 삼보 등 국내 업체들이 여전히 절반이 훨씬 넘는 시장점유율을 가지고는 있지만, 컴팩 같은 미국계 업체들이 눈에 띄게 매출을 올리는 것만 봐도 외산 노트북의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더구나 데스크톱 PC와는 달리 노트북만큼은 미국보다 일본이 ‘종주국’이라는 자체 판단도 한몫한다. 가격은 다소 비싼 감이 있지만, 성능에선 일제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란 이들의 확신을 국내 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주목된다.인터뷰 / 이재홍 한국후지쯔 상무성능면에서 우수 … 국내시장 잠식 기대한국후지쯔의 이재홍 상무는 “지난해 경기 침체로 PC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도 노트북 시장은 꾸준히 성장해 현재 그 시장 규모가 40만대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노트북 메이커들의 저가 공세로 주력 모델의 가격을 떨어뜨린 것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냈다고 그는 덧붙였다.특히 그동안 후지쯔, 소니 등 일제 노트북 브랜드들은 다소 높은 가격 정책을 지켜오다 지난해부터 값을 낮추는 전략을 쓴 결과 시장에서 호응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상무는 “사실 전문가들이나 기업에선 일제 노트북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다”며 “노트북의 대중화 바람이 한창 불고 있는 국내 시장에서 데스크톱PC에서 노트북으로 전환될 300만대 규모의 대체수요를 놓고 일본계 노트북 메이커들의 각축전이 시작됐다”고 밝혔다.“성능 면에서 우위를 차지한 일제 노트북들이 국내 시장에서 안정적인 진입에 성공한 이상, 계속해서 점유율 확대의 급물살을 탈 것”으로 이상무는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