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 한 달 용돈 80만원...한 해 3,300억원 이상이 고시촌에 뿌려져
지난 3월부터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한 김종근씨(29). 청운의 꿈을 안고 ‘먼 길’을 떠나면서 부모님께 200만원을 받아 신림동에 입성했다. 석 달은 넉넉하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한 달이 지난 현재 잔액은 0원. 고시원 보증금 100만원은 묻어둔 돈이라고 해도 한 달 생활비로 100만원을 한푼도 남김없이 다 써버린 것이다.김씨의 지출 내역은 이렇다. 방값 35만원, 학원비 15만원, 식비 14만원, 독서실비 8만원, 책값 5만원, 식료품비 3만원, 그리고 잡비 20만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렇다 할 낭비는 없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향토장학금’을 신청해야만 했다.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신림동 고시촌은 서울대생의 하숙촌에서 언제부턴가 고시생들의 엄청난 소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인터넷 고시전문 사이트 사시로닷컴(www.sasi-law.com)에서 최근 이뤄진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시생들의 절반 이상이 한 달에 80만원 이상을 소비하고 있었다.신림동 동사무소가 추정하는 4월 현재 고시생 인구는 적게 잡아도 3만 5,000명. 그렇다면 한 해 3,360억원에 이르는 돈이 신림동에서 소비되는 셈이다.여기에 서울의 다른 지역에 거주하면서 고시촌 학원을 다니는 고시생까지 합치면 신림동 고시촌의 소비시장 규모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신림9동 동사무소 관계자는 “고시촌의 인구는 20~30대 비율이 80% 이상”이라며 “관악구 27개 동에서 신림9동이 차지하는 경제비중은 10~20%”라고 밝혔다.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관련 업소들도 엄청나게 번창하고 있다. 관악구청에 따르면 4개의 대형 고시학원, 20여곳의 서점, 80개의 독서실, 380개의 고시원, 400개 넘는 식당들이 고시촌에 들어서 있다.관악구 경제 10~20% 차지신림동 고시원협회에 따르면 고시촌 내에 원룸형 건물을 포함한 고시원 수는 380여개가 있다. 고시원이 고시촌의 관악산 언덕 중턱에 처음 들어선 만큼 고시원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형국이다.신림동 고시촌의 고시원 월세도 위치와 시설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고시촌 꼭대기에 있는 한 달 방값은 14만원이지만, 최근 고시촌 입구에 신축한 원룸형 고시원의 경우엔 50만원을 호가한다. 신축 원룸엔 인터넷 전용선은 물론, 간단한 샤워실,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고시촌에 둥지를 튼 지 3년 된 고시생 문대현씨는 “최근에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의 경우엔 원룸을 선호한다”며 “하지만 고시촌에 오래 있었거나 돈이 없는 고시생들은 산꼭대기에 있는 고시원이나 하숙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라고 밝혔다.고시생들이 신림동에 모여들면서 가장 재미를 보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고시전문 학원들. 현재 신림동 고시촌엔 4곳의 대형 고시학원이 있다. 저마다 ‘100% 합격 보장’을 내세우며 고시생들을 유혹하고 있다.이들 고시학원 중 하나인 태학관의 경우 300만원을 내면 1년 동안 모든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조건으로 고시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다른 학원들도 지방에 거주하는 고시생들을 위해 명절 때는 일주일 만에 고시과목 기본강의를 들을 수 있는 패키지, 지방유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등 다양한 ‘상품’들을 고시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하지만 고시촌의 학원들이 인기를 끌면서 무엇보다 피해를 입게 된 쪽은 고시생들이다. 고시생들이 고시촌 학원가로 몰리면서 학원비도 과거에 비해 껑충 뛰어올랐기 때문이다.고시촌에는 고시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월식 밥집)이 20여개가 있다. 식당에 월 14만원을 내면 고시생들은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다. 식권 한 장엔 1,500원에서 2,000원 사이다. 한 월식 식당에서 만난 고시생은 “식당들 대부분이 가격대나 분위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식당이 조금만 맛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그곳으로 고시생들이 몰린다”고 귀띔했다.최근 고시생들의 특징은 고시원에선 잠만 자고, 공부는 독서실에 한다는 것이다. 신림동독서실협회의 추정에 따르면 고시촌내 독서실 수는 80여개. 가격대는 8만원에서 12만원 사이다. 고시촌의 고시생 중 절반이 독서실에 다닌다 하더라도 독서실에 흘러가는 돈은 200억원이 넘는다.고시생 타깃 마케팅 극성녹두거리를 포함한 고시촌 인근 유흥업소들도 기발한 마케팅으로 고시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신림동 거리 자판대에는 시내에서 보기 힘든 ‘개비담배’가 여전히 팔리고 있다. 담배 1개비에 150원. 20년째 신림동 가판대를 지키고 있는 김모씨는 “최근엔 찾는 사람이 뜸하지만 여전히 사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얼마 전에는 ‘성인물 전용 PC방’이 고시생들에게 화제가 됐다. 성인물 동영상들을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놓고 고시생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 고객들 역시 PC방에서 성인물 동영상을 거리낌없이 보고 있다.비디오방의 경우는 일인당 1,000~1,500원 사이의 가격이 눈길을 끈다. 시내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 한 편을 빌리는 것과 맞먹는 가격인 셈이다. 또 ‘홀로 찾는 고시생’들을 위해 비디오방 대부분이 1인용실을 갖추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고시촌 내의 인기업소들의 공통된 특징 중의 하나는 미모의 아르바이트생들을 기용하고 있다는 것. 고시촌에서 만난 한 고시생은 “약국이나 당구장에 얼굴이 예쁜 아르바이트생이 일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순식간에 그쪽으로 엄청나게 모인다.”고 말한다.또 최근 몇 년 사이 여가이용이나 놀이문화의 환경이 고비용 구조로 바뀌면서 이제 가난한 수험생은 쉴 곳도 마땅치 않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한 고시생은 “예전에는 수험생끼리 모여 편한 자세로 토론하고 농담을 주고받던 한적한 거리였다”며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면 커피숍, 술집을 찾아야하는 분위기다”라고 밝혔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