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9000억 달러’ 부양책 이어 인프라 투자 시사…시장은 이미 ‘인플레이션’ 우려

[글로벌 현장]
바이든 ‘공격적 돈 풀기’…인플레 파고 덮치나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경보음이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집권 민주당이 ‘공격적 돈 풀기’에 나서면서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 시점이 앞당겨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미 국채 금리가 급등세를 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확장적 통화·재정 정책을 타고 급등했던 기술주도 조정을 받고 있다.
‘초대형 부양책’ 또 나온다
미 상원과 하원은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1조9000억 달러(약 2100조원) 규모의 초대형 부양책을 담은 ‘미국 구조 계획’ 법안을 가결했다.

미 의회는 지난해 12월 9000억 달러 규모의 부양책을 내놓았다. 그로부터 3개월 만에 그보다 두 배에 달하는 부양책을 또 내놓은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지난 1년간 코로나19 대처에 쏟아부은 부양책은 총 5조6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2020 회계연도 미 연방정부 본예산(4조7900억 달러)보다 많다.

이게 끝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1조9000억 달러의 부양책과 별개로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위한 부양책 논의에 착수했다. 백악관은 3월 4일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하원 교통·인프라위원회 소속 민주·공화당 의원들과 만나 현대적이고 지속 가능한 인프라 투자의 필요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프라 투자는 도로·교량·수로·학교 등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인프라 투자 법안을 주도하는 민주당 소속 피터 드파지오 하원 교통·인프라위원장은 CNBC에 출연해 하원에선 올봄까지, 상원에선 올 5월 말까지 각각 인프라 부양책을 처리하길 희망한다고 ‘시간표’를 제시했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도 지난 2월 “1조9000억 달러의 부양책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추가 법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1조9000억 달러의 부양책이 상원에서 가결된 뒤 “미국인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면 또 다른 (부양) 법안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잇달아 대규모 부양책을 추진하는 것은 코로나19 대처와 함께 인프라 개선과 고용 창출, 경기 회복 등을 위해서다. 미국토목공학학회는 최근 미국의 국가 인프라 등급을 ‘C-’로 진단했다. 또 미국 경제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긴 했지만 코로나19 전과 비교할 때 여전히 1000만 명 가까운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은 상태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일으키면 인프라 개선과 함께 대규모 고용 창출 효과를 낼 수 있다.

문제는 대규모 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평소 적극적 재정 정책을 옹호해 온 민주당 성향의 경제학자들조차 경고 사인을 보내고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재무장관, 버락 오바마 행정부 국가경제위원장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서머스 교수는 지난 2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경제 규모 대비 미국의 재정 지출이 2차 세계대전 수준에 육박한다고 지적했다.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고 코로나19로 억눌린 수요가 분출할 수 있으며 Fed가 통화 정책을 대폭 완화한 상황을 고려할 때 1조9000억 달러의 부양책이 시행되면 “한 세대 동안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촉발할지 모른다”고 했다. 서머스 교수는 선진국이 저성장과 저금리가 만연한 ‘만성적 경기 부진(secular stagnation)’에 빠졌다며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해 온 학자다. 그런데도 1조9000억 달러의 부양책에 대해선 “너무 과도하다”고 한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필요한 것은 뭐든 하라”고 각국 정부에 조언했던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도 1조9000억 달러의 부양책에 대해선 “예상을 뛰어넘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는 1조9000억 달러의 부양책을 “위험한 실험”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프라 부양책 등 추가 부양책까지 더해지면 인플레이션 우려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반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1조9000억 달러 부양책) 플랜은 과도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양책 규모가 경제적 스트레스를 초래할 것이란 전문가들의 우려가 어리석은 것은 아니지만 기우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크지 않고 만약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더라도 Fed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타 고피나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도 블로그를 통해 “(인플레이션에 대해) 우려할 만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고피나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부양책으로 2022년 물가 상승률이 2.25%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국내총생산이 3년간 총 5~6%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바이든 ‘공격적 돈 풀기’…인플레 파고 덮치나

빠르게 뛰는 美 국채 금리
하지만 시장은 이미 인플레이션 우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채권 시장 벤치마크인 10년물 미 국채 금리는 작년 8월 초 연 0.5%대에서 올 초 0.9%대로 올라선데 이어 현재 1.5%대 후반(8일 기준)까지 뛰었다. 장중엔 연 1.6%를 넘기도 했다. 1년 전 0.1%대였던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3월 초 2008년 이후 최고인 2.5%로 높아졌다. 시장의 관심은 ‘국채 금리가 오르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얼마나 빨리 오르느냐’에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 투자 전략 회사 알파북의 마틴 멀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J·J쇼(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Fed 의장의 슈퍼 재정 정책과 슈퍼 통화 정책) 때문에 당분간 국채 금리 상승에 브레이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2%를 쉽게 넘어 올해 중반 연 3%를 웃돌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투자 보고서에서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3%까지 오르는 것은 Fed의 기준 금리 인상 전까지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채 금리 급등은 경기 회복의 기대감을 반영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인플레이션 우려로 Fed의 긴축 시점이 빨라질 것이란 시장의 불안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아직 Fed의 물가 목표(2%)에 못 미친다. 미국의 지난 1월 소비자 물가는 1년 전보다 1.3% 올랐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블룸버그통신 기고에서 “1960~1965년 미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연평균 1.3%였지만 1966년 3.8%, 1970년 2월 6.4%로 뛰었고 1974년엔 12%대, 1980년엔 14%로 올랐다”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 고삐가 한 번 풀리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각종 원자재 가격이 뛰고 있는 점도 인플레이션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유가가 대표적이다. 국제 원유 시장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3월 7일 2019년 5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70달러 선을 돌파했다.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지난해 4월 배럴당 19달러대까지 밀렸는데 1년도 안 돼 3배 넘게 오른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브렌트유 가격이 2분기 배럴당 75달러, 3분기 배럴당 8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파월 Fed 의장은 3월 4일 한 콘퍼런스에서 경제 회복과 함께 ‘일시적 인플레이션’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시적 인플레이션인 만큼 통화 정책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시장은 ‘일시적’이라는 말보다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는 발언에 더 주목했다.

자산 인플레이션 위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 정부와 Fed의 확장적 재정·통화 정책으로 자산 가격은 이미 한 차례 급등했다. 지금은 Fed의 조기 긴축 우려로 증시 등 위험 자산에서 자금이 빠지고 있지만 미 의회가 계속 돈을 풀고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 자산 가격이 또다시 뛸 수 있다. 그러면 부동산이나 금융 자산이 없는 서민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워싱턴(미국)=주용석 한국경제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