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직장생활 10년째인 이모 과장(38)은 그동안 은행에 예금해 뒀던 2,000만원을 굴리기 위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투신사에 돈을 맡길지 결정하기 위해 이과장은 투신사별 운용실적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는 컴퓨터를 이용해 전날 어느 투신사의 펀드가 수익률을 얼마나 올렸는지 조회해 봤다.사실 이 같은 펀드정보조회는 예전에는 거의 불가능했다. 수익률 정보를 알기 위해선 투신협회에 올려진 기초 데이터를 기반으로 직접 계산해야만 순위를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번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바로 펀드정보를 조회할 수 있게 됐다.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설치하기만 하면 펀드평가회사에서 매일 수정해서 올려주는 펀드수익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각 증권사에서도 자사가 판매한 펀드를 잘 운용하고 있는지 투신사와 자산운용사를 감시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어 이런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이 새로운 시스템의 개발과 보급에는 한국펀드평가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국펀드평가가 개발한 펀드정보 조회시스템은 에이펙스 펀드 시스템(APEX FUND SYSTEM)이다. 사용자의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회사별, 유형별, 펀드별 성과 및 각종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매월 말 다양한 분석자료도 제공된다. 민주영 한국펀드평가 투자컨설팅팀 대리는 “인터넷망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일정 기간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지원한다”며 “단순히 수익률이라는 숫자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펀드시장에서의 위치를 알 수 있어 투신사의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한국펀드평가는 지난해 10월부터 이 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대표이사는 “우리나라는 펀드 성과평가의 불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증권사 등 펀드판매자들이 정확한 펀드 평가자료를 쉽게 접한다면 투자자들이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망한 펀드를 골라낼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단지 예측만으로 투신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고 검증된 자료를 바탕으로 투자자의 필요에 맞는 펀드를 선정해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에이펙스 펀드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이다.한국펀드평가는 모든 투신사의 펀드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에이펙스 펀드 시스템의 기본 서비스인 에이펙스 펀드 퍼포먼스(Performance)를 월 100만원의 사용료를 받고 제공할 계획이다. 에이펙스 펀드 퍼포먼스에는 운용사별 평가, 펀드성과 평가, 펀드의 기초 정보, 시장 보고서 등의 서비스가 포함됐다. 특히 펀드별 자산 구성비율이나 펀드 성과분석 등에 대한 정보를 한 화면에 표와 그래프로 제공해준다. 따라서 이용자가 더 쉽게 펀드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글로벌 펀드평가회사인 모닝스타(Morning Star)코리아도 6월 말 펀드맵(FundMap)이라는 이름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펀드 정보제공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모닝스타코리아는 이미 기존에 데이터랩(DataLab)이라는 영어 버전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이형근 모닝스타코리아 정보기술개발팀 차장은 “데이터랩 시스템은 영어로 돼 있다는 것 외에도 펀드평가 방법론적 측면에서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면서 “지난 두 달 동안 국내 실정에 맞게 시스템을 재정비했다”고 말했다.모닝스타코리아는 펀드유형별로 평가항목을 좀더 세분화해 기존에 4개였던 항목을 최소 9개 이상으로 분류, 한 단계 높아진 평가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차장은 “이르면 6월 말쯤 베타버전을 시장에 무료로 배포해 반응을 확인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 상용화된 제품을 8월께 내놓을 예정”이라며 “이렇게 될 경우 객관적인 펀드평가가 대중화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이 회사 이병복 팀장은 “펀드맵 시스템을 이용하면 많은 사람들이 펀드 관련 정보를 쉽게 볼 수 있다”며 “이제는 펀드판매사의 인지도가 아니라 운용사의 실적을 보고 투자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토종 펀드평가회사인 제로인은 인터넷상에서 회원들에게 일일 펀드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지금도 제로인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일반인들이 무료로 펀드정보를 볼 수 있긴 하지만 정보가 제한돼 있고 정보를 다운로드해서 이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김병철 제로인 펀드평가 사업부 팀장은 “전문가 버전을 마련해 펀드정보를 제한 없이 제공할 뿐만 아니라 리포트와 같은 자료실도 만들고 다운로드가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 초부터 준비해 현재 전문가 버전의 기본적인 설계는 끝난 상태로 7월 초부터는 증권사 등에 보급할 계획이다. 제로인은 유료화된 전문가 버전을 출시하면 월 100만원의 이용료를 받을 계획이다.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리퍼(Lipper)코리아는 현재 하인사이트(HindSight)라는 펀드성과 분석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본사에 직접 연결이 돼 국내 펀드 3,000여 개를 포함해 세계 6만개의 펀드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와 수익률을 매일 조회할 수 있다. 다만 한국어로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어 리퍼코리아는 올 초 본사에서 지역 언어 프로그램 개발에 들어갔다. 기존에 있던 ‘글로벌 펀드 데이터베이스 버전 1’(GFD1)에서 ‘GFD2’로 한 단계 올려 한국어로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내년 상반기에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다.일일 펀드평가 시스템의 도입으로 증권사 등 고객들은 편해졌지만, 투신사는 더 큰 압박을 느끼게 됐다.최근 한국펀드평가의 에이펙스 펀드 시스템을 시범적으로 사용한 한화증권 관계자는 “펀드평가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기본적인 정보밖에는 얻을 수 없었다”며 “하지만 이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펀드를 평가한 자료를 볼 수 있어 펀드를 선정하는 데 큰 도움을 얻었다”고 말했다.박성진 교보증권 투신업무부장은 “개별적인 펀드종목에 관한 정보는 아직 미흡하다”며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펀드관련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회사라면 타 펀드뿐만 아니라 시장수익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실용적”이라고 평가했다.한편 투신사와 자산운용회사들을 감시하는 눈이 많아지면서 펀드 운용 시장은 더 심한 경쟁체제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박기환 LG투신 사장은 “매일매일 성적표를 받게 된다면 이무래도 투신사 운용역들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