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스 핀처는 할리우드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비록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명성을 날리던 그가 <에일리언3 designtimesp=22430> 같은 블록버스터로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이후 핀처의 행로를 보면 그가 단순히 비주얼 테크니션으로 할리우드에 안주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있지만, 핀처의 세계는 자극적인 비주얼에 담긴 반골기질이 늘 꿈틀거린다.<세븐 designtimesp=22435>같이 차가운 금속성의 공간에서도, <파이트 클럽 designtimesp=22436>처럼 빠른 속도로 흐르는 선혈 같은 공간에서도 핀처의 영화는 늘 차갑고 냉철한 태도로 무언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그 무언가란 21세기의 소돔인 현대사회의 병폐이기도 하고 겉치레로 가득 찬 도시의 허상이기도 하다.<패닉룸 designtimesp=22441>에서 역시 핀처를 자극하는 것은 바로 이 도시다. 이혼한 후 외동딸 사라와 함께 뉴욕으로 온 멕(조디 포스터)은 백만장자가 죽고 남긴 고급주택을 구입한다.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이 건물의 비밀은 바로 패닉룸. 외부로부터 위험인물이 침입했을 때 피신할 수 있는 이 작은 방은 분리된 전화선과 전원, 집안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멀티모니터, 그리고 비상식량과 식수가 구비돼 있는 그야말로 안전요새다.공교롭게도 이 방의 사용법에 대해 미처 숙지하기도 전에 멕과 사라는 이사 온 첫날 강도의 습격을 받는다. 다행히 멕과 사라는 패닉룸으로 안전하게 피신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패닉룸 안에 있다는 것.이때부터 멕과 사라, 그리고 3인조 강도들은 패닉룸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인다.멕의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진행해 가지만 핀처는 충분히 긴장감을 이끌어 내면서 이야기의 맥을 힘 있게 끌어간다.하지만 패닉룸의 안팎에 있는 멕과 강도들 사이에서 핀처는 스릴과 서스펜스 이상의 무언가를 감지해낸다.마치 <에일리언 designtimesp=22453>의 리플리를 연상시키는 강인함을 보여주지만 차가운 이미지의 ‘싱글 맘’ 멕과 무장강도치곤 어설프기 짝이 없는 3인조 강도들은 모두 간접적으로 현대 도시에 고립된 인간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위협하지 않으면 위협당한다.핀처는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개인들의 공격성을 닫힌 공간 안에서 충돌시킨다. 그리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개인을 끊임없이 고립시키는 이 현대 도시의 폐쇄성은 지극히 테크노모던한 공간인 ‘패닉룸’에서 모든 개인들을 위협하는 유령 같은 힘으로 작용한다.비록 전작에서 볼 수 있었듯이 이야기를 넘어 비주얼 자체만으로 정서적인 충격을 주던 핀처의 테크닉은 다소 중화된 느낌이 없지 않지만, 폐쇄된 공간 안을 빠르게 움직이며 심리적 공포를 만들어내는 카메라는 여전히 혀를 내두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