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디공장.패션디자이너스 테이블웨어로 시동걸어...창립 이후 무분규 경영 앞장

김용주행남자기 회장‘전통 사기그릇’에서 ‘본 차이나’, 고강도 초정자기 ‘울트라파인’(Ultra Fine)까지. 국내 도자기산업의 대명사 ‘행남자기’(이하 행남)가 60년 동안 걸어온 길이다. 행남은 이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행남은 창립 60주년을 맞은 올해 최고급 제품을 생산하는 모디공장 준공식을 가진 데 이어 신개념 자기인 ‘패션디자이너스 테이블웨어’(식기)를 선보였다.모디공장은 21세기를 맞아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는 ‘모디파이드 행남’(modified Haengnam:개조된 행남)에서 나온 말이다.이와 함께 패션디자인 도자기는 강진영, 이광희, 이영희, 정구호, 지춘희, 진태옥씨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을 입혀 예술로 승화시킨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이 프로젝트의 선봉에 나선 사람은 김용주 행남자기 회장(61).앞서 말한 두 가지는 김회장의 ‘21세기 구상’ 맛보기에 불과하다.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끊임없는 아이디어가 김회장의 머리에서 계속 샘솟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열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기자는 6월1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행남자기 사옥 3층 김회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먼저 우리나라 도자기산업의 좌표가 궁금했다.“도자기는 브랜드산업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유럽지역의 도자기 브랜드 파워가 크고 아시아에선 일본이 앞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품 면에서 행남이 결코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브랜드 파워가 약할 뿐이죠.”행남은 1957년 국내 최초로 ‘본차이나’를 개발했다. ‘본차이나’는 영국에서 최초로 개발된 고급도자기로 젖소뼈를 태워 발생한 흰 재를 흙과 함께 섞어 만든 자기다. 백색도를 높이고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뛰어나기 때문에 고급 도자기의 대명사로 불린다.행남은 1983년 본 차이나 공장을 기공하면서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 데 이어 1985년 고부가제품인 울트라파인을 내놓아 세계적인 도자기업체로 우뚝 서 지난해 매출 738억원(수출 129억원)을 기록했다.우리나라는 고려청자, 이조백자 등으로 세계 도자기 애호가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 맥을 잇지 못했을까.“지금은 도자기의 색깔을 안료로 내지만 고려청자는 불로 색을 만들어냅니다. 이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죠. 이조백자는 흰자기로 유명합니다. 우리는 당시 도공들을 홀대했지만 일본은 임진왜란 등으로 조선을 침공해 도공들을 데려가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줬던 것으로 압니다.따라서 우리는 그 맥이 단절됐지만 일본은 그 맥을 이어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명 브랜드 도자기가 많은 것입니다. 지난 98년 서울에서 전시회를 가진 일본 심수관가 도예전이 그 예입니다.심수관가는 400년 전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 성(姓)을 그대로 가지면서 예술혼을 대물림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행남은 고려자기, 이조백자 등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자기 전통을 이어받아 최상급 자기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본격적으로 신제품 연구개발에 들어가 울트라파인을 선보였다.우리 식기와 서양 식기의 차이점은 뭘까.“서양 식기는 디너플레이트 등 양식이 표준화돼 있고 큰 게 특징입니다. 반면 여러 반찬을 조금씩 담아놓는 우리의 식기는 작습니다. 서양 식기는 단지 소장용이면 몰라도 실용적인 면에선 우리 식탁에 맞지 않습니다. 때문에 수입제품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김회장은 디자인에 관한 한 유별날 정도로 관심이 많다. 디자인과 관련된 인재나 기술이라면 누구도, 어디라도 찾아가 꼭 데려오고, 노하우를 전수받아야 직성이 풀릴 정도다.실제 일본의 세계적 도자기 업체인 노리다케의 수석디자이너를 고문으로 영입했다. 김회장이 디자인을 중시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사람이 뭔가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그 대상이 잘 디자인돼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디자인은 언제나 경계해야 합니다. 소비자의 요구와 연결되지 않은 디자인마인드는 아무리 잘된 디자인이라 하더라도 의미를 가질 수 없지요.물론 디자인의 실무적이고 기계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디자인센터를 설립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디자인과 연결된 IT 관련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비록 처음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지만 나중에는 그것의 몇 배, 몇 십 배의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김회장은 21세기를 디자인으로 승부하려 한다. 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을 담은 도자기 출시는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요즘은 토털 디자인 시대입니다. 프라다, 샤넬, 루이비통 등 세계적인 유명한 브랜드들은 옷부터 보석,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시계를 보세요.예전엔 롤렉스, 오메가 등과 같은 유명 시계메이커들의 시계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유명 브랜드들이 시계도 만들어내고 오히려 이들 제품이 더 잘 팔립니다.도자기산업도 마찬가지로 이제는 토털 디자인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도 그런 것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도하지 않은 일들을 많이 해보려고 합니다.”이 같은 김회장의 실험정신은 ‘사양산업은 있어도 사양기업은 있을 수 없다’는 회사의 모토에서 비롯됐다. 도자기산업이 사양화돼 가고 있는 요즘, 기업생존을 위한 김회장의 이런 노력은 당연한 것일는지 모른다.행남은 노사화합의 대표모델로 불리고 있다. 창립 이후 지금까지 노사분규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노조 또한 창업주가 직접 나서 1960년에 설립했다.당시만 해도 직원들이 오히려 귀찮아 할 정도로 노조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였지만 창업주가 항운 노조위원장을 초청해 노조설립을 도와달라고 부탁까지 하면서 노조를 출범시켰다고 한다.이에 창업주는 노조설립 이후 정기 대의원 대회에 한해도 거르지 않고 참석했고 김회장도 사업을 이어받은 후에도 계속하고 있다.“저는 노사협의회 때 경영 전반에 대한 사항과 재무제표 브리핑을 하고 있습니다. 투명경영만이 노사간의 불신을 막고 신뢰를 키워갈 수 있는 밑거름이기 때문이지요.그래서인지 행남은 회사가 어려울 때 노조가 먼저 나서서 생산성 향상운동, 5.5운동(5S실천, 5% 수율 향상, 5% 비용절감, 5분 일찍 출근, 5분 늦게 퇴근) 등을 벌여 함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도자기산업은 장치와 노동력이 동시에 필요한 특수한 산업이다. 특히 숙련된 노동자들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김회장은 “도자기산업은 노사화합이 안 되면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특수한 회사문화도 행남의 노사관계를 원만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행남에는 부자, 고부, 형제자매 등 가족들이 함께 근무하는 이들이 유난히 많다. 말 그대로 가족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김회장은 “사업장마다 특수한 문화가 있기 마련인데 거기서 노사화합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한다.김회장의 21세기 비전은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것이다. 그래야만 글로벌시대인 21세기에 생존할 수 있다는 얘기다.“도자기 제조기술은 이제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여기에 어떻게 새로운 옷을 입히느냐가 싸움의 관건인 셈이죠. 이것이 브랜드 파워를 결정지을 겁니다.”김회장은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김회장은 원하기만 하면 그들에게 사업을 물려줄 거라고 한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벤처 등 IT 분야에 관심이 많아 도자기사업에 대한 의욕이 없어 보인다”며 김회장은 아쉬워한다.“(자식들이 도자기사업에) 의욕이 있다고 해도 능력이 없으면 당연히 안 됩니다. 정열도 필요합니다. 예컨대 도자기사업은 정열과 능력이 동시에 필요한 사업입니다. 그런데 정열은 강제로 심어줄 수도 없어요. 현재 회사에 몸담고 있는 아이들은 없어요.”희노애락희74년 첫 수출을 한 우리는 이듬해 애틀랜틱 차이나앤드그라스 국제 도자기쇼에 스톤웨어 를 출품해 호평받았을 때로 기억합니다. 그전엔 소량주문에 그쳤는데 도자기쇼에선 주문이 폭주했거든요.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매우 어렵게 개발한 제품이었기에 더욱 생생하게 기억납니다.노 애특별하게 생각하는 게 없어요. 제 신조가 ‘항상 밝게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왔거든요.락시간만 나면 책을 읽습니다. 서점에 들려 책 고르는 게 제 유일한 낙인 셈이죠.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 10권 사가지고 오면 마치 은행에 큰 돈 예금한 것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전 다독을 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