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증시 침체, 원천기술 가격 하락 따른 기업실적 악화의 반영

과거 전자손목시계가 유행처럼 보급됐다가 많은 사람의 관심에서 멀어진 기억이 있다. 디지털 제품인 전자시계보다 기존의 아날로그시계가 소비자시장을 다시 지배했기 때문이다. 향후 전개될 디지털시대의 출발을 손목시계처럼 가볍게 느끼고 미국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리스크가 될 수 있다.지금 미국의 근본적인 고통은 인텔과 퀄컴의 칩, 네트워크 장비, 소프트웨어 등 그동안 부를 쌓아주었던 원천기술의 가격하락에 따른 기업실적 악화에 기인한다. 원천기술 가격이 하락해 가는 것은 정상적이고 역사적으로 그래왔다. 과거에 자동차 엔진, 전자부품, 컴퓨터 부품 등의 가격이 내려오지 않았다면 자동차, 소형 카세트, 컴퓨터 등과 이를 응용한 가전제품은 널리 보급되지 않았을 것이다.미국이 그동안 부를 쌓은 것은 원천기술이 주도했지만 80년대 일본이 부유하게 된 이유는 서방국가에서 창출한 원천기술을 이용해 응용기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원천기술가격이 저렴해진다면 이를 기반으로 응용기술은 널리 보급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IT 원천기술에 이어 나타날 디지털시대의 서막이다. 원천기술가격이 내려갈수록 디지털시대의 확산은 더욱 앞당겨질 것이다.이러한 과도기에서 미국은 원천기술이 하락할수록 기업실적 악화가 주가 등 금융지표에 반영이 되는 곤혹스러운 과정이 진행 중이다. 파생된 결과로 기업은 일자리를 줄임에 따라 이어서 나타날 소비여력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또한 실적감소를 감추기 위한 회계부정이 나타나 악순환을 보이고 있다. 이를 놓고 미국을 장기불황의 시작으로 미리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 될 수 있다.더구나 우리처럼 원천기술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해 하드웨어를 만들거나 응용기술을 준비하는 국가들은 크게 불리할 것이 없다. 저렴해진 원천기술을 응용해 경쟁력 있는 핸드셋을, 디지털 TV를 비롯한 가전제품을 만들고, 저렴해진 통신장비를 활용해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면 기업들은 추가적인 부가가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중기전망도 가능하다.단기적으로 보더라도 미국의 개인소득(1년간 3.4% 상승)은 증가추세(표참조)를 보여 소비시장에 거는 기대는 7월에 나타난 지표만큼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IT 분야 가동률이 높아지고 있어 고용조건이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최소한 미국소비가 악순환의 고리를 열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에도 귀 기울이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변동성 증대로 회복세가 다소 약해지고 지연되기는 하겠지만 장기불황 주장은 성급해 보이는 면이 있으며 8월 이후의 지표들은 다시 소비와 투자 등 최종 수요 회복을 뒷받침하게 될 것이다.세계경기, 유가, 환율 등 통제 불가능한 외생변수에 대한 우리 기업의 의존도는 여전하지만 과거에 비해 약화됐다. 그것이 외환위기 이후 달라진 모습이다. 과거 우리는 중동 붐, 3저 현상, 환율 등 외생변수에 경기운명을 달리했고, 정부는 무리한 건설경기로 돌파구를 찾으면서 물가부담만 안은 채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과거 주가지수가 급등락사이클(500~1,000)로 진행되는 분명한 이유가 됐고, 외환위기를 맞아 그 이하도 경험하게 됐다. 이제 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급등락사이클(500~1,000)의 하단 회귀는 앞뒤가 맞지 않다.현재 증시는 계절적 요인에 기반한 경기순환 과정의 일시적인 속도조절 과정에 더해 심리적 불안이 만들어낸 역버블 과정의 막바지로 판단된다. 아무리 냄비증시고, 세계경기가 설사 심하게 위축됐다고 해도 버텨야 할 지지선은 있었다. 현 지수대는 그런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