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둥성의 음향기기 생산단지인 후이저우(惠州)에 ‘LG루(路)’라는 거리가 있다. 후이저우의 대표적인 문화ㆍ상업거리로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이다. 왜 이 거리에 ‘LG’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지난 1월 말 후이저우 시정부가 LG전자에 준 선물이지요. LG가 세금을 많이 내니까 고맙다는 뜻으로 명명한 겁니다. LG전자는 지난해 CD롬 드라이브를 6억5,000만달러어치 수출하는 등 후이저우에서 가장 큰 합작ㆍ투자회사입니다”. LG전자 후이저우법인 김영민 사장의 말이다.산둥성 웨이하이(威海)에는 ‘산싱루’(三星路)라는 이름의 거리가 있다. 엔타이공항에서 웨이하이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접어들면 산싱루라고 쓰인 2m 높이의 붉은색 이정표 바위를 볼 수 있다. 산싱루를 따라가면 팩스 및 프린터 생산업체인 산둥산싱(山東三星)을 만나게 된다.지난 1월 말 등장한 산싱루 역시 LG루와 비슷한 탄생 신화를 갖고 있다. 웨이하이 시정부가 삼성의 지역경제 기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작명했다. 산둥산싱은 진나해 1억600만달러의 매출액을 올려 웨이하이의 최대 외자기업으로 등장했었다.LG루와 산싱루는 한ㆍ중수교 10년 동안 이뤄진 양국간 경제협력을 상징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그만큼 가까워진 것이다.수교와 함께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중국으로 달려갔다. 지난 6월 말 현재 우리나라기업의 대중국 직접투자액은 56억8,560만달러에 달했다. 국내에서 생산비 급증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중국으로 생산설비를 이전했다.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업체들도 ‘시장에 가까운 곳으로 가야 한다’는 제조업 원칙에 따라 공장을 옮겼다.중국은 이미 우리나라의 제4대 교역국으로 등장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중국수출은 182억달러, 수입은 133억달러에 달했다. 49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한 셈. 중국으로 생산거점을 옮긴 기업들이 한국에서 원자재 기술 등을 들여오면서 무역흑자가 발생하고 있다.중국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우리나라 브랜드들도 속속 등장했다. 애니콜(삼성전자), 초코파이(동양제과), 모니터(삼성ㆍLG), 굴삭기(대우ㆍ현대), 타이어(금호ㆍ한국), 에어컨(LG), 농심라면, 서라벌(식당), 크린램….이 밖에도 중국에서 성공한 기업이나 상품은 많다. 한류로 상징되는 많은 문화상품이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고, 한국 벤처기업이 개발한 게임도 중국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또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수많은 한국 중소기업들은 중국에서 개발한 ‘Made by Korea’ 제품을 세계시장으로 수출하고 있다.그러나 모든 기업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성공한 기업보다 훨씬 더 많은 기업들이 중국에서 쓴맛을 봐야 했다. 지금도 이런저런 이유로 투자금을 몽땅 날리고 보따리를 싸고 있는 기업이 적잖다. ‘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알고 찾아온 땅, 중국은 그들에게 시련의 아픔만을 주었을 뿐이다.실패이유는 너무 많다. 파트너를 잘못 선정해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가 하면 현지 중국직원 관리에 허점을 보여 효과적인 생산 및 유통체계를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 법제를 잘못 이해해 엄청난 돈을 고스란히 중국 정부에 바쳐야 하는 사례도 있다.우선 매출이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외상거래를 하다가 한 푼도 건지지 못하기도 했다. 모두 중국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실패의 근본적인 요인을 찾아보자. 바로 ‘기술’이다.중국경제는 지난 20여 년간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그들은 선진 외국기업들이 떨어뜨려 놓은 기술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중국은 세계 선진 기업들간 시장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무림’이 되고 말았다.어지간한 기술로는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중국은 이제 고급기술을 동반하지 않는 외국투자에 대해서는 ‘노 생큐’라고 말한다. 기술이 없는 투자는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얻기 어렵게 됐다.최근 우리나라 일각에서 중국의 급성장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중국 ‘위협론’이다. 그러나 길은 있다. 중국이 ‘세계 공장’이라면 우리나라는 거대한 ‘연구개발(R&D)센터’로 만들면 된다. 한국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세계 공장’ 중국에서 생산하는 방식이다. 그 생산품을 중국과 세계시장에 내다판다면 중국과 윈윈(Win-Win)할 수 있다. 아름다운 합작이다.중국보다 먼저 해양문화를 접한 우리나라는 선진기술 습득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해외 비즈니스 경험, 디자인 능력, 젊은이들의 유연하고도 진취적인 문화, 성숙한 시민의식 등은 중국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분야다. 산업 전반의 기술은 아직 우리가 중국에 앞서 있다. 이 우위를 얼마나 오래 지켜나가느냐에 한ㆍ중경협의 미래가 달려 있다.‘세계 공장’ 중국은 우리나라 산업고도화에 없어서는 안될 고마운 존재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하드웨어 생산 분야는 과감하게 중국으로 이전하되 우리는 기술ㆍ디자인ㆍ국제 마케팅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치가 있는 상품에서 우위를 지켜야 한다. 산업구조 조정에 중국이라는 요소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한ㆍ중수교 10년의 교훈이자 앞으로의 과제다.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