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부야에 사는 주부 나카무라 에리씨(39)는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데리고 지난 7월 말 도쿄 외곽의 한 유명 유원지를 찾았다 깜짝 놀랐다. 유원지 내를 오가는 사람들이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날씨도 맑았고, 한창 붐빌 시간인 낮 12시인데도 유원지 구석구석에서 텅 빈자리가 눈에 많이 띄었다. 다른 때 같으 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을 제트코스터에도 인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그녀는 의아해하며 잠시 옛 추억에 잠겼다. 나카무라씨가 친구들과 함께 이 유원지를 처음 찾은 것은 대학생이던 약 20년 전이었다. 80년대 초만 해도 유원지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평일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인파로 넘쳐 났으며 놀이기구는 한 번 타기 위해 1시간 이상씩 기다리는 것이 예사였다. 놀이기구를 한 번이라도 더 타기 위해 놀이기구에서 내리기 무섭게 쏜살같이 다른 곳으로 달려가곤 해 ‘다람쥐’라는 별명이 붙은 친구가 있을 정도였다.아들과 함께 공중그네를 타고 내린 그녀는 한 번 더 타고 싶어 줄을 섰지만 이번에는 옛날과 사정이 판이하게 달랐다. 채 10분도 기다리지 않아 자신의 차례가 돌아온 것이다.“이상하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지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그녀가 품은 의문은 금세 풀렸다. 그녀 곁을 지나가던 유원지 시설계 담당자를 붙잡고 몇 마디 나눈 대화에서 해답이 간단히 나왔기 때문이다.담당자의 답은 명쾌했다. 유원지를 찾는 사람들이 최근 수년간 격감했고, 이 같은 현상은 비단 한 군데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쿄 디즈니랜드와 오사카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등 극소수를 제외한 일본의 거의 모든 유원지가 앓고 있는 중병이라고 그는 말했다.담당자는 유원지의 입장객 감소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 없으면 이대로 가다가는 문 닫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닐 것이라고 근심을 감추지 못했다. 이와 함께 유원지를 운영하는 업체들 사이에서 위기감이 부쩍 높아져 상호 제휴와 사업다각화로 돌파구를 찾는 움직임이 부쩍 두드러졌다고 덧붙였다.실무자들이 한숨을 섞어 털어놓은 각 유원지들의 실상은 엄살이 아니었다. 나카무라씨는 귀동냥과 입소문을 통해 수도권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의 유원지들이 입장객 감소 및 그로 인한 경영난 악화의 이중고를 공통적으로 겪고 있음을 재삼 확인했다.나카무라씨가 유원지들의 환부를 생생히 확인한 곳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도쿄의 ‘도시마엔’이었다. 지난 1922년 9월 도쿄의 외곽 네리마구에서 문을 연 도시마엔은 도쿄 시민들에게 그야말로 유원지의 상징처럼 인식돼 온 명소였다.도심에서 전철이나 지하철로 그리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는데다 놀이기구와 구경거리가 아기자기하게 갖춰져 있어 서민 가구의 나들이 명소로 사랑을 듬뿍 받아온 곳이었다.그러나 도시마엔의 입장객수는 지난 92년 연간 400만명을 피크로 슬금슬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200만명을 겨우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창때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크게 줄어든 셈이다.“가장 큰 손님이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발길이 줄어든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다 보니 제트코스터와 같이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도 어느새 파리를 날릴 정도가 됐다. 예전에는 첨단 놀이기구가 새로 들어왔다는 소문이 나면 행락객들이 너도나도 몰려왔었는데….”도시마엔의 우치다 히로시 기획실장은 “놀이기구로 손님을 끌던 시절은 막을 내린 것 같다”며 “대당 수십억엔씩 하는 놀이기구를 무작정 새로 들여놓을 수도 없어 유원지마다 골치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우치다 실장은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발길이 유원지에서 멀어지게 된 결정적 이유로 게임과 휴대전화를 첫손가락에 꼽았다. 집집마다 가정용 게임기를 한두 대씩은 갖추고 있는 상태에서 어린이들이 게임소프트에만 매달리다 보니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않는다는 진단이다.이와 함께 신작 소프트웨어가 나올 때마다 유원지에 놀러가느니 새로운 게임소프트 손에 넣고 싶어 하는 풍조가 어린이들 사이에서 확산된 것도 유원지 불경기를 부추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게임문화 보급이 어린이수 절대 감소라는 사회적 현상과 맞물린 것이 유원지를 급속도로 썰렁하게 만들었다고 진단하고 있다.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15세 미만 어린이수는 지난 4월1일 현재 1,817만명으로 20년 전에 비해 3분의 2에 불과, 이 같은 분석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뒷받침하고 있다.청소년들 사이에서 필수품으로 뿌리내린 휴대전화는 청소년들이 유원지에 뿌릴 돈을 잠식하는 최대 경쟁자로 꼽히고 있다. 내각부가 2001년 4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12~29세 연령층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76.9%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 비용으로 사용하는 돈은 10대가 월평균 8,500엔으로 99년보다 500엔이 늘었으며, 20대는 600엔이 늘어난 8,400엔의 돈을 매달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유원지의 핵심 고객층인 청소년들이 휴대전화에 몰두하고, 용돈을 전화비로 날리다 보니 유원지에 놀러갈 여유가 없어졌음을 조사결과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전문가들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이탈이 유원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며 박물관, 영화관,연극전용 극장도 똑같은 몸살을 앓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전용극장으로 지난 88년 오픈해 수준 높은 명작을 무대에 올린 도쿄의 ‘글로브’는 텅 빈 객석과 적자 누적을 견디다 못해 지난 6월 말 문을 닫았다.어린이와 청소년의 이탈은 유원지들의 경영난 악화와 함께 생존 돌파구를 찾기 위한 업체간 제휴, 사업다각화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도쿄 인근의 수도권에서는 올 들어서만 요코하마, 가와사키에서 대형 유원지가 이미 문을 닫았고, 고베의 포트 아일랜드, 효고현의 다카라즈카 패밀리랜드도 곧 간판을 내릴 예정이다.센다이, 야마가타 등 일본 동북지방의 유원지들 사이에서는 업체들이 공동 이용, 할인서비스 제공 등 전략적 제휴를 통해 비상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업계 관계자들은 하지만 유원지의 고객 이탈이야말로 피하기 어려운 시대적 변화라고 지적, 사업다각화가 앞으로의 활로를 좌우할 최대변수가 될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어린이와 청소년의 이탈에 따른 공백을 성인행락객으로 메우기 위해 도시마엔, 고라쿠엔 등이 앞장서 벌이고 있는 온천휴게시설업을 대표적 예로 들고 있다.도쿄 한복판에 위치한 고라쿠엔은 연면적 1만4,000㎡의 크기에 휴게시설만도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4시간 온천을 짓기로 했다. 고라쿠엔은 온천사업의 시작시기를 내년 여름으로 잡고 있으며, 이 사업에서만 연간 600만명의 신규 입장객 확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도시마엔은 유원지의 초대형 정원 옆에 노천온천을 만들어 내년 6월 오픈할 예정이다. 탈 것과 어린이 중심의 놀이기구로 승부해 온 과거 전략에서 탈피, 성인들을 위한 레저 공간으로 본격적으로 변신하겠다는 각오다.유원지들 중 가장 먼저 유원지의 온천휴게시설업을 선보인 다마테크의 예를 통해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도쿄 인근의 히노시에 자리잡은 다마테크는 지난 98년 온천사업을 시작했으며 이후 입장객이 연간 30% 이상 늘어나는 성과를 올렸다.전문가들은 “유원지는 더 이상 어린이, 청소년만을 겨냥한 놀이터가 아니다”고 지적하면서 “온천, 쇼핑센터 등 부대사업으로 활로를 찾지 않는 한 공동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