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시 W 부시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는 미국 최초의 경영학석사(MBA) 출신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지금 박찬호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를 역임했고, 하켄에너지란 회사의 이사회멤버이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선거를 치른 딕 체니 부통령도 할리버튼이라는 거대 에너지 기업의 CEO를 지냈고, 백악관 비서실장은 물론 4명의 현직 장관이 기업의 CEO 출신일 정도로 행정부에는 기업인 출신들이 수두룩하다.부시 대통령이 MBA 출신답게 ‘주식회사 미국의 CEO’라는 찬사를 받으며 백악관 집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백악관의 CEO드림팀이 정부의 관료 조직에 기업의 효율성과 탄력성을 접목시켜 줄 것으로 기대했다. CEO 출신이란 타이틀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증처럼 비쳐졌다.하지만 지난 연말 엔론에서 시작된 기업 회계부정 스캔들이 한바탕 몰아친 뒤에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요즘에는 CEO 출신이라는 배경이 오히려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대통령의 정부직 임명과정을 연구하는 정치학자인 폴 라이트는 “요즘 CEO 경력을 얘기하는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다”며 “탁월한 기업지도력과 기업적 마인드는 이제 탐욕과 조작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실제 백악관에서는 부시 대통령부터 과거 기업경력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백악관 공보실에서 가장 꺼려하는 질문은 이사회 멤버로 있던 하켄에너지에서 부시 대통령의 역할과 관련된 것들이다. 체니 부통령도 자신이 CEO로 있던 에너지서비스회사인 할리버튼이 증권관리위원회(SEC)의 조사를 받고 있다. 조사내용도 그가 CEO로 있을 때의 회계변경과 관련된 것이어서 결과에 따라서는 부통령 자리마저 흔들리게 할 가능성도 있다.부시 대통령이 기업사기 문제를 막기 위해 특별히 만든 태스크포스팀의 책임자인 래리 톰슨 법무부 차관도 자기가 프로비안이란 금융회사의 회장이 된 직후 주식을 내다판 문제에 대해 증언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회사의 주가는 물론 그후에 급락했다. 이런저런 기업의 경영불투명 문제를 조사하는 위치에 있는 SEC의 하비 피트 의장도 그전에는 월스트리트의 대형 투자은행이나 회계법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사 업무를 맡았었다.정부 주요 포스트에 있는 CEO 출신 관리들에 대한 회계부정 의혹이 떠오르면서 부시 행정부의 경제팀이 회계스캔들로 인해 악화된 주식시장이나 소비자심리의 경색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메이커인 알코아의 CEO를 역임한 폴 오닐 재무장관의 경우 회계부정에서 자유롭다는 점 때문에 새롭게 부각되고 있으나 함부로 내던지는 말버릇 때문에 그가 TV에 출연하는 것을 백악관에서도 꺼려할 정도다. 최근 브라질 외환위기가 고조될 때 그는 NBC 방송의 ‘언론과의 만남’이란 프로에 나가 브라질을 깔보는 식으로 얘기를 해 브라질 통화가 급락했고 외교적인 항의를 받는 등 정부 전체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물론 미 국민들은 부시 행정부가 기업과 너무 가깝다는 데 대해 불만이지 CEO 출신 정치인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백악관의 커뮤니케이션디렉터인 댄 바틀렛은 “국민들은 기업현장에서 이뤄진 교육 전문성 경험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며 “만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나 잭 웰치 전 GE 회장이 정부에서 일한다면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을 것”이라고 말한다.취임 초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CEO드림팀’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를 CEO들이 행정부에 들어가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CEO들은 일반적으로 종업원 임면권을 갖고 있고 예산집행권은 물론 재무제표 개선을 위해서는 예산집행도 과감하게 수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행정부에서는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재계의 거물로 있다가 대통령 임명직이 된 사람들에게는 의회의 까다로운 견제장치가 기다리고 있고 날로 공격적으로 되어 가고 있는 언론의 검증도 잔혹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헨리 왁스맨 민주당 하원의원은 “그들은 더 이상 CEO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누구에게도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CEO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는다.부시 행정부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내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조차 모든 일을 비밀스럽게 처리하는 CEO적인 습관 때문에 군 안팎에서 많은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클린턴 행정부시절 상무장관을 지내다가 지금은 SBC커뮤니케이션의 CEO를 맡고 있는 빌 데일리는 “정부직책은 오랫동안 CEO를 해 온 사람들에게는 아마 매우 어려운 것”이라며 “의회의 청문회나 조사소위에 출석해 실제 일어난 일보다 더 많은 얘기를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을 때는 정말 힘들고 좌절감마저 느꼈다”고 말한다.CEO 출신으로 정부에서 호평받는 사람들도 있다. 골드만삭스 회장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됐던 로버트 루빈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현 부시 행정부에서도 에너지 서비스기업인 톰 브라운의 CEO를 역임했던 에번스 상무장관이 경제팀의 대변인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등 각광받고 있다.거대 제약회사인 엘리릴리의 수석부사장을 지낸 미치 대니얼스 예산국장도 의회관계가 매끄러워 평가가 좋은 편이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백악관 정치고문으로 일하기도 했던 대니얼스 국장은 “기업의 세계와 정부의 세계는 상당히 다른데도 일부 CEO 출신 관리들이 차이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그는 “CEO 출신들은 일을 한 단계 더 진전시켜 나가기 위한 컨센서스를 모으는 인내가 없고 결과가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 데 쉽게 좌절한다”고 얘기한다.캘리포니아주지사의 최고보좌관을 역임하고, 현재 오레곤대학 경영대학장으로 있으면서 정부직과 CEO직을 모두 경험한 필립 로메로 학장은 “일반적으로 CEO가 되는 게 훨씬 쉬울 것”이라며 “부시 행정부가 그런 교육을 톡톡히 시키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한다. dongin@hankyung.com